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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98)] 코뿔소 ‘노든’의 품처럼 따뜻한 ‘리차드파커스’의 음악


입력 2022.05.04 14:17 수정 2022.05.04 14:17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소설 '긴긴밤'서 영감 받아 쓴 동명의 신곡 4월25일 발매

활자에 기반을 둔 이야기들에 음악이 입혀진다. 서점 리스본에서 추천하는 여러 권의 책 중에 뮤지션이 직접 한 권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앨범을 발매하는 프로젝트 ‘언어 그 이상’을 통해서다. 데뷔 10년차를 맞은 싱어송라이터 리차드파커스는 루리 작가의 소설 ‘긴긴밤’을 읽고, 책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신곡을 지난달 25일 발매했다.


리차드파커스가 쓴 ‘긴긴밤’은 소설 속 주인공 ‘노든’의 품처럼 따뜻하다. 아기 펭귄이 노든을 통해 안정감을 느낀 것처럼 그의 음악을 통해 누군가는 안정감과 위로를 받는다. 특히 그가 쓴 가사에서는 청각은 물론 시각과 후각까지 자극하는 듯 생생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 음악이 끝난 이후에도 그 여운이 더 깊고, 길게 남는다.


ⓒ레이블 임

-‘리차드파커스’란 활동명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주 오래 전 읽었던 책 ‘파이 이야기’(라이프 오브 파이) 속에 등장하는 벵갈호랑이 ‘리차드 파커’(Richard Parker)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름이에요. 이야기 속 호랑이 ‘리차드 파커’가 주인공 ‘파이’의 표류에서부터 구조까지 긴 여정에서의 생존에 있어서 그에게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깨달음에 굉장히 매료 되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거나 또는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리차드 파커’ 뒤에 복수동사 ‘s’를 붙여서 만든 이름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주 심오하고 비장한 활동명이네요. 하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과 음악을 오랜 기간 업으로 삼으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4살부터 고등학교 진학하기 전까지 클래식피아노를 쳤어요. 어릴 적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자작곡을 만들기 시작했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최고의 음악가가 될 거야!’ 같은 목표나 청사진은 없었는데 20대 초반, 아무런 기대 없이 유통사 미러볼뮤직에 데모곡 5개를 보내면서, 그리고 당시 유통사 이사직을 맡고 계셨던 현재 대표님께 채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는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햇수로는 벌써 데뷔 10년차가 됐어요.


데뷔 당시엔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첫 싱글 앨범 ‘자러간다’가 발표되던 날 실망감이 더 컸던 기억이 납니다. 반응이 아주 조용했거든요(웃음). 그 당시엔 아무런 팬도 없었고요. 심지어 쑥스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홍보도 없이 정말 ‘0’에서 시작된 데뷔였으니 이제 와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죠. 오히려 저의 첫 곡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 당시 아직 세상을 잘 몰랐던 저는 데뷔하면 바로 대박 날거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아주 순진한 친구였죠. 하하.


-데뷔 당시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선 20대에서 30대가 되면서 제 겉과 속이 많이 달라졌을 테고요(웃음). 변함없이 저를, 제 음악을 기다려주시는 팬들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약10년의 시간동안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도 있나요?


재미있는 놀이였던 창작이 어느새 직업이 되면서, 음악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 압박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신 차려보면 앨범이 발매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면 또 행복감을 느끼고, 음악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만들고 싶은데 또 곡이 나오지 않고, 거기서 또 압박감에 스트레스 받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데, 결국은 다시 음악을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면요?


창작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노,애,락’과 결과물을 발표한 후에 ‘희’가 선사해주는 짜릿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느끼는 뿌듯함. 그 순간들만큼은 제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마 이런 기분이 저를 다시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10년간 꾸준히 음악을 내놓고 있는데,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한결 같은 애정과 관심으로 기다리고 기대해주시는 팬분들과 기획사의 합작이랄까요? 하하. 저 혼자였다면 절대 지금까지 꾸준히 음악을 발표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 기회를 빌어 그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레이블 임

-이번 신곡 ‘긴긴밤’은 조금 특별한 기획으로 제작하게 됐죠.


네, 서점 리스본이 도서를 추천하고 레이블임과 미러볼뮤직에서 제작·유통하는 프로젝트 ‘언어 그 이상’의 일환으로 만든 곡이에요. 이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당시에도 저는 여러 데모곡을 쓰려고 노력하던 중이었어요. 그때도 스트레스가 심했었기에 ‘지금 내 곡도 못쓰고 있는데 콜라보 곡을 어떻게 만들어?’라는 생각에 조금은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제가 평소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직 발표되지 않은 저의 첫 자작곡도 독서 후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추억이 생각나서 나름 큰 결심하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 곡이 생각한대로 잘 나온 것 같아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신곡 ‘긴긴밤’은 어떤 곡인가요.


‘긴긴밤’은 동명의 도서 ‘긴긴밤’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예요. 지구상의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아기 펭귄이 서로에게 의지해 함께 길고 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죠. 신곡 ‘긴긴밤’을 들으실 때 마치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의 엔딩에서 흘러나오는 OST처럼,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의 그 깊고 잔잔한 여운을 음악으로 느껴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작업했습니다.


-서점 리스본이 추천한 여러 도서 중에 ‘긴긴밤’을 택해 작업한 이유가 있나요?


추천받은 도서 모두 각각의 메리트가 있었는데 ‘긴긴밤’을 선택한 이유는 첫째로 북 커버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고, 둘째로는 줄거리를 찾아본 후 ‘지금 바로 당장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지 않고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힐링’이었어요. 책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심각했다가 먹먹했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그 풍경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고요. 저의 긴긴밤을 노든과 아기 펭귄이 함께 걸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책을 읽기 전에는 다소 무거웠던 마음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결 가벼워졌던 것 같습니다.


-이 감상을 곡으로 옮기는 과정에선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을까요?


이 음악을 재생시킴과 동시에 리스너의 눈앞에 마치 빔 프로젝터를 쏜 것 같이 책의 내용이 펼쳐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가사에 ‘그늘 위 나뭇잎 사이로 비친 하늘은 아주 잘 익은 망고 열매 색 같아 / 따스한 노을빛에 물든 너의 얼굴은 향기 가득한 아카시아 잎 같아 / 새까만 밤하늘 빛나는 별들, 그 보다 더 밝게 빛나던 너의 눈 / 오늘도 내 발자국 옆엔 너의 발자국’ 등의 표현을 사용해서 청각과 시각, 후각을 동시에 자극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해진 주제 안에서 음악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사실 저의 경우는 주제가 정해져 있었기에 오히려 제 개인 곡 작업 할 때보다 훨씬 수월했던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정해진 주제 안에도 여러 등장인물이 있고 각각의 캐릭터가 지닌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인물의 이야기로 풀어갈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죠. 하나,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거든요.


-글이 음악으로 옮겨졌을 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을 읽을 때 어쩌면 놓쳤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감정이나 분위기를 음악을 통해서 새롭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곡을 듣고 , 대중들이 어떤 메시지(혹은 느낌)를 얻어가길 바라실까요?


이 곡을 들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 어쩌면 현실에 치여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것. 돌아보면 내 옆에서 혹은 뒤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는 사람 또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만약 진짜 없는 것 같다면 이 노래에서 그것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레이블 임

-또 한 번 책을 음악으로 옮길 기회가 된다면, 어떤 책을 선택할까요?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읽는 편이에요. 만약 또 한 번 책을 음악으로 옮겨본다면, 서정적인 발라드와는 또 다른 스타일로 도전 해보고 싶은데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어서 현재는 그 책 밖에는 떠오르지 않네요.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판타지 소설인데 아직 초반부를 읽고 있지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이 책으로는 어떤 곡이 만들어질지 궁금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궁금해요.


미래를 길게 내다보며 활동하는 편이 아니라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추후에 또 하나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이 나올 예정입니다.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뭔가가 진행되고 있으니 기대 부탁드립니다(웃음).


-그간 여러 가수들과의 콜라보도 진행했는데요, 또 함께 하고 싶은 가수가 있다면?


성시경 님이요! 앞서 말씀드렸던 저의 첫 자작곡은 사실 가수 성시경님의 보이스를 생각하며 남자 음역대로 만들었던 곡이었거든요. 언젠가 꼭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현재까지 발표한 곡들 중에 대중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2019년 12월에 발표했던 EP앨범 ‘보고 싶어’의 수록곡인 ‘버스’라는 곡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곡들과 다르게 ‘버스’라는 곡은 저라는 사람을 그대로 담은 자전적인 곡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보고 싶어’ 앨범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생각나실 때 꼭 한번 들어보시길 추천 드려요.


-긴 시간 가수로서 활동하면서 가장 후회됐던 순간,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몇 해 전 클럽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 건물 바깥 주차장에서 밴드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공연을 보러 와준 두 소녀팬(이었던 것으로 기억 하고 있습니다)이 저 멀리 건물 귀퉁이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을 보았어요. 저에게 인사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는데 아마 쑥스러워서인지 그냥 돌아가시는 것 같았죠. 눈도 몇 번 마주쳤었는데, 그때 제가 다가가서 먼저 인사할걸. 요즘도 종종 그 순간을 생각하며 후회합니다. 그리고 종종 팬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받을 때 보람을 느껴요. 제 음악을 들으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러면 저는 앞으로 제 음악 듣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혹시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되살아날까봐서요.


-요즘 리차드파커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다면?


제 나이 33세.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답은 제 안에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최근 음악 외에 가장 흥미를 느끼고 있는 일은?


플랜테리어요! 예전부터 식물 키우기랑 농작물 재배에 취미가 있고 또 잘 하기도 해서 요즘은 각종 채소, 허브, 토마토 모종 심고 비료 뿌리고 실내식물 분갈이 하느라고 바쁜데, 또 지금 계절이 봄인지라 화원에 예쁜 식물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최근엔 선인장이랑 고사리식물에 관심이 많아져서 식물식구가 늘어가는 중입니다.


-리차드파커스의 최종 목표도 들려주세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잔잔하게 천천히, 가늘고 길게, 오래도록 팬분들의 귀를 두드릴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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