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간 쌓인 시설물유지 '기술·전문성' 소멸, 시설물 안전 불안
국토부, 권익위 "업종 폐지 유예" 의견 불수용…"행정편의적"
"업종 전환 후 영세업체 전망 어두워…시장서 도태 될 가능성"
"정부는 시설물유지관리업계와는 전혀 논의없이 업종 폐지를 결정했다. 이대로 폐지가 된다면 시설물유지관리업계가 30여년간 쌓아온 실적과 전문성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는 국민의 안전 보호라는 공익 목적에 절대 부합하지 않는다."
황현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회장은 지난 18일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시설물유지관리업종 폐지 정책과 관련해 단호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시설물유지관리업종은 시한부 상태다. 유효기간이 2023년 12월31일부로 만료되기 때문인데, 수명이 1년여 남은 셈이다. 폐지는 돌연 결정됐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0년 29개 건설업 전문업종을 14개 대업종으로 줄이면서 시설물유지관리업을 폐지하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시행령을 개정, 이듬해인 2021년 1월 시행에 들어갔다.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간 업무영역과 중복돼 잦은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시설물유지관리업계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황현 회장은 지적한다. 황 회장은 "업종 폐지 과정에서 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권익위도 이 같은 이유로 폐지를 유예하라고 권고했다"고 했다.
앞서 시설물협회는 권익위에 구제를 신청했는데, 지난해 6월 권익위는 시설물업 폐지를 2029년까지 유예하라는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업계와 충분히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고, 업종 폐지에 대한 이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권익위의 판단이다.
이후 국토부는 이런 판단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의결의 취소를 구하는 재심의를 신청했으나 지난 2월 권익위는 재심의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시설물업체의 업종 전환이 상당부분 진행된 상황에서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며 불수용 입장을 권익위에 최종 전달했다.
황 회장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미 업종 폐지와 관련해 절차적 문제점이 권익위를 통해서도 두 차례나 지적이 됐지만, 국토부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며 "행정 편의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국토부, 업종 전환 위해 '꼼수'…"국민 안전 무시한 처사"
정부의 업종전환 유도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2021년 사전 신청한 업체에 대해선 업종 전환시 해당 공사의 실적 50%를, 2022년에 신청하는 사업자에게는 30%, 2023년 신청자는 10% 가산해주기로 했다. 공사 실적이 부풀려지게 된다는 뜻인데, 기존대로 라면 참여하지 못할 공사도 혜택을 받은 업체에선 따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역량이 부족한 업체가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황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국토부에선 실적 부풀리기를 금지하고 있다"며 "업종전환을 위해서 실적에 가산을 준다는 것은 꼼수이며, 공사과정에서의 안전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공공공사 입찰에 시설물유지관리업 참가를 배제토록 하는 등의 방식을 동원해 어쩔 수 없이 전환하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전환 이후 시설물유지관리 업체들의 전망은 어둡다고 전망했다. 그는 "영세업체들은 업종 전환 후 종합건설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결국 경쟁력 상실로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
황 회장은 시설물유지관리 관련 기술이 퇴보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계기로 업종이 도입된 후 30여년간 구축해 온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안전 공백으로 이어질 것이라 강조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그간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라며 "국민 안전이 불안해지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업계의 의견이 관철될 때 까지 지속적인 대정부 대응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현재 위헌, 위법성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집단 규탄대회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