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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㉕]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들려주는 눈물의 고래사냥법


입력 2022.08.01 08:13 수정 2022.08.01 11:3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6화 엔딩 일러스트. 계향심이 딸과 함께 고래를 타고 날고 있다. 이를 보며 우영우는 자신의 엄마를 생각한다 ⓒ정다은 작가 그림(KT Y아티스트 레이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연출 유인식, 극본 문지원)가 장안의 화제다. 송출사가 ENA라는 생소한 이름의 신생 채널인데 시청률이 15%를 넘어서만도 아니다. 한 번 보면 자꾸만 보고 싶어지고,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우영우를 보고 있고, 밥 먹으며 술 마시며 우영우를 얘기한다. 자꾸 손이 가는 ‘새우깡’ 같은 드라마에 대한민국이 빠졌다.


지독하게 빠졌지만, 중독은 아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독이 아니라 힐링이다. 힐링에 빠지는 것도 독일까 싶게 한 번 보면 멈출 수 없고, 방영일을 기다리는 게 일각이 여삼추로 도통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배우 박은빈이 탄생시킨 캐릭터, 앞으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ENA 제공

매회 이야깃거리로 삼는 소재도 좋고, 표현해내는 방식과 주제가 좋은 건 기본.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우영우를 최선을 다해 설득력 있게 연기 중인 배우 박은빈에 관한 칭찬은 길게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대한민국이 극찬 중이다. 과하지 않게, 그러나 자폐인을 가까이 겪지 않은 대다수 우리가 사실적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진짜와 얼마나 똑같은가의 차원과 별개로, 적어도 장애인이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고 기피의 대상은 더더군다나 아니며 우리가 알든 모르든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있다.


박은빈뿐인가. 원작 웹툰을 찢고 나온 듯 훈훈한 외모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이준호 역의 강태오, 빌런인가 했더니 은근히 따뜻하게 우영우를 지켜주는 전명석 역의 강기영이 주연으로서 드라마를 이끈다. 박은빈과 이준호의 투샷은 달달 하고, 강기영의 연기는 쫀득하다.


톱스타 아닌 배우들로 주연이 가능한 건 스스로 잘하고 연출이 잘 보듬은 영향도 있지만, 베테랑 배우들이 뒤를 받쳐 올려줘서다. 전배수, 백지원, 진경, 그들의 표정과 딕션(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을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정과 좌절 사이를 오가면서도 결국은 우정과 인간미로 기우는 최수연 역의 하윤경, 이준호에게는 친구지만 우영우에게는 악당인 ‘현실적 두 얼굴’을 얄밉게 보여주는 권민우 역의 주종혁, 우영우보다 우당탕탕 오늘을 살아가는 절친 동그라미 역의 주현영이 극에 젊은 에너지를 드리운다.


계향심 역의 배우 김히어라 ⓒ출처=네이버 블로그 lyj0088

1회차씩 모두 소개하고 싶을 만큼 재미난 드라마지만, 6회 ‘내가 고래였다면’을 선택했다. 우영우가 좋아 마지않는 고래 얘기가 주제와 연관하여 부상하는 데다 탈북자 계향심을 연기한 김히어라가 특출나게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우영우와 생모에 관한 이야기가 뭉클했다. 매회 먹먹한 대목들이 있었지만, 6회에서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드라마를 참조하자면 모성은 처벌 감경 사유가 되지 않는다. 돈을 받아내겠다고 남의 집의 들어가 소란을 피우고 육탄전을 벌여 강도상해죄 혐의를 받은 계향심은 당시엔 도주했지만 5년 뒤에 처벌을 자처했다.


5년 전엔 딸 아이가 세 살이어서 그때 헤어지면 엄마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 우려돼 도피 생활을 했고, 지금은 수감 생활을 하더라도 여덟 살이 된 딸이 자신을 기억하고 결국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고 제 발로 사법당국을 찾은 것이다. 사회뉴스 속 탈북자의 5년 도주 행각, 그 획일화된 상상 뒤에 있었을지 모르는 각별한 사정이 드라마로 그려졌다.


우영우 역의 배우 박은빈과 최수연 역의 배우 하윤경(왼쪽부터) ⓒ출처=네이버 블로그 ghkdlxmtlem

변호사 우영우와 최수연은 어떻게든 집행유예를 받아 향심 모녀가 계속해서 함께 살게 해 주고 싶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강도상해죄의 최소 형량이 7년으로 5년인 살인죄보다 높고, 여러 감형 요인에 판사의 재량까지 더해도 7년의 절반인 3.5년이 최선인데, 징역 3년을 넘으면 집행유예가 불가하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왜 살인죄보다 강도상해죄의 최소 형량이 왜 더 높은가의 법리적 부분보다 왜 모성은 감경 사유가 되지 못하는지에 분통이 터진다. 당연히 그것이 허용되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해 악용될 소지가 커서겠지만, 법이라는 이름의 사회 기본 규칙조차 인정하고 보호해 주지 않는 모성에 제 모든 것을 거는 세상의 엄마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오는 갑갑함이 분통을 불렀다.


매회 우영우에게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다양한 고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꿀재미 ⓒ이하 출처=네이버 블로그 lyj0088

이 대목에서 우영우는 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 가지 한다.


“고래 사냥법 중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야.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져 새끼가 고통스러워하며 맴돌면 어미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대. 아파하는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거야. 그때 최종 표적인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지는 거야.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그 순간, 계향심이 강도상해죄의 피의자가 아니라 새끼를 버리지 않는 어미 고래와 겹친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딸을 놓지 않은 엄마. 제 자식을 버리는 부모,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부모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세태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미 고래’보다 나은 ‘엄마 사람’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다. 고래들의 법에서는 모성이 대우받을까, 엉뚱한 상상을 하다 법이 필요한 건 인간 세상일 뿐이라는 자각에 부딪힌다.


사실 우영우의 고래 사냥법 이야기는 저기서 끝이 아니다. 한 문장이 더 있다.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버리지 않았을까?”


착한 우영우는 자신이 고래가 아니어서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왔나 보다. 고래의 모성만도 못한 태수미(진경 분)의 인성이 빚은 비극일 뿐, 앞으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왜 나는 엄마가 없어?’, 어쩌면 우영우는 내게만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듯 고래에 집착했던 건 아닐까. 우영우가 고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큰 몫이 어렴풋이 보이는 말이었다.


우영우의 매정한 엄마 태수미, 그 우연한 만남. 정리벽은 유전이었나 ⓒ

어미 고래와 겹쳐 보였던 가난이 죄인 엄마 계향심, 이미 가진 게 많지만 많아서 더욱 하나도 잃기 싫은 이기적 인간 태수미. 우영우가 딸임을 알게 된 뒤 취하는 행동, 저 멀리 미국 보스톤으로 보내‘버리려는’ 행태를 봐도 엄마이기를 끝까지 거부하고 자신만 중요하다. 고래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일례다.


최수연과 우영우는 계향심을 결코 감옥에 보내지 않고 딸과 함께 살게 할 수 있을까. 강도상해 미수죄로 해서 감형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해 집행유예의 희망도 생길 수 있다. 다만 강도 미수가 아니라 상해 미수여야 강도상해 미수죄인데, 계향심은 돈을 받아내지 못해 강도가 미수이고 상대에게 상처를 냈으므로 상해 미수가 아니다. 북한법까지 끌어와 반전을 시도하지만, 계향심의 솔직함이 이를 막는다.


권민우, 우영우, 최수연 '한바다즈'. 경해도 소덕동 팽나무 언덕을 오르는 이준호와 우영우의 모습도 작게 보인다, 두 사람의 심장박동이 뜨거워 나는 새들도 하트색이다^^ ⓒ정다은 작가 그림(KT Y아티스트 레이블)

시민 7명이 배심원으로 참가한 국민참여재판, 그들도 계향심의 편은 아니다. 판결은 주심판사(이기영 분)에게 달려 있다. 본관 물어보고, 학연에 지연 온갖 인연 따지는 ‘꼰대’인 줄 알았던 그가 해답을 찾는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듯, 해답도 이미 눈앞에 있었다. 매직아이를 띄워 올리는 비법, 눈앞에 뻔히 있지만 찾기 힘든 윌리를 찾아내는 비법은 ‘내공’에 있다. 천재성과 열정으로도 범접하기 힘든 경지, 한 분야에서 한 가지를 줄곧 해 온 경력이 헛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결말이 짜릿하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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