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미국 주도 ‘칩4’ 가입 불가피
반도체 설계·원천기술 개발 기회
최대 교역국 중국 무역 보복 가능성
전문가 “공급망 다원화·안정화 필수”
정부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동맹 ‘칩4(chip4)’ 가입을 사실상 결정함에 따라 중국의 무역 보복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연구 기관에서는 이번 기회에 특정 국가에 편중된 반도체 산업 공급망을 다변·다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칩4 참여는 우리 경제에 실보다는 득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과 정책적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의 지원 정책과 주요 반도체 기업의 투자 계획 등을 종합하면 대략 2025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지금까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메모리반도체를 대체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없어 양국(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지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된 이후에는 애매한 중립 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다수의 반도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자국 기술 통제로 외국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미국 반도체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최악의 경우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과거 번성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무역 보복 등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이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에 대한 참여는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연구원은 또 다른 보고서 ‘첨단기술의 미·중 블록화 전개 양상과 시사점’을 통해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향후 미·중 양국의 공급망, 기술, 표준, 시장, 생태계가 상당 기간 블록화해 경쟁할 것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산업연구원은 “경쟁우위에 있거나 혹은 향후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 및 산업을 발굴해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통상 측면에서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형성될 새로운 가치사슬에 주목하고, 우리의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대외협력 강화전략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산업연구원 분석처럼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칩4 참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이 가진 힘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3.2%(814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수출액 15.7%(549억 달러)보다 54% 이상 많다.
반도체 부문에 국한할 경우 수출 비중은 더 높아진다. 중국 39%에 홍콩까지 포함하면 60%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공장까지 두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 반도체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상에서 반도체 소비 시장 역할을 할 뿐 제조와 관련된 모든 핵심 기술은 미국과 미국 동맹국에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중국 기업의 높은 대외 의존도는 중국 자국의 반도체 산업 자립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자체적인 원천기술 개발 노력과 함께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우리나라, 일본, EU 등 기술 선진국과 협력을 시도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또한 미국 제재를 우회하면서 한·중 간 협력 가능한 분야의 발굴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각국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 분석 ▲인재유출 방지 및 적극적인 인재 확보 ▲전략적인 R&D 투자로 비교우위 분야의 초격차 유지 ▲새로운 선도적 핵심 기술·공정 개발을 통한 경쟁력 유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리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가치사슬 전환 시대에 직면해 있고 공급망의 다원화와 중복은 필수 사안”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자체 공급망 안정과 함께 특정 국가에 편중된 공급망을 분산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을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9일 편찬한 ‘대중 무역적자 원인과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장기적으로 중국에 편중된 원자재·중간재 공급망 다변화 등을 이뤄내지 못하면 중국 산업 경쟁력 상승으로 교역 구조는 더욱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성우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대중 무역적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반도체·배터리 소재 등은 중국산이 가성비가 뛰어나 공급처를 다각화하는 게 쉽지 않다”며 “수입 다변화와 기술력 확보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