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 마지막 시즌, 협력안무 및 앙상블로 참여
10월 23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공연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사람들은 보통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물론 타인과의 비교에 사로잡혀 열등감 속에서 자란 욕심은 끝내 비극적인 결론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적당한 욕심은 삶에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뮤지컬 배우 겸 안무가 심새인의 욕심은 후자에 가깝다. 자신의 욕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직하게 노력하면서 말이다.
심새인은 지난달 12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서편제’의 협력안무 및 앙상블 배우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그는 ‘어린왕자’(2022) ‘곤 투모로우’(2021) ‘파우스트 엔딩’(2021) ‘최후진술’(2020) ‘뜨거운 여름’(2019) ‘B클래스’(2018) 등을 통해 안무가로, 또 배우로, 그리고 연출자의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서편제’의 마지막 시즌에 함께 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이라서 더 의미가 클 것 같아요.
‘서편제’의 지난 시즌에서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니 아쉬워요.
-연습 과정, 혹은 무대 위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이 작품에서 쓰이는 안무는 한국무용이 주를 이루는데, 배우들 중 한국무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말고 없어서 작품 연습 초반에는 배우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기초부터 하느라 힘들었고, 한국 장단도 많이 나와서 안무시간에 장단 세는 법도 함께 연습 했었어요.
-작품을 어떻게 분석했나요.
‘서편제’는 참 특별한 작품입니다. 요즘은 뮤지컬에서 한국 문화를 다루는 작품도 많이 없고 다루더라도 현대적인 기법으로 만들어지는데, ‘서편제’는 한국전통을 그대로 살린 부분이 많아서 좋습니다. 그래서 더 어렵죠. 배우들이 소리도 배우고, 장단도 배우고, 북도 배우고, 한국무용도 배워야 하니까요. 평소에 익숙하게 하거나 잘하는 것들을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성했을 때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작품과도 닮은 것 같습니다. ‘한국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만나 조화를 이뤄 특별해지는 이야기’라는 점이요.
-앙상블 배우로서의 고충은 없나요?
극중에서 힘든 점은 없지만, 앙상블은 매일같이 무대에 서야하기 때문에 항상 체력이 문제예요. 그리고 특히 이번 ‘서편제’에서는 ‘송화’ 역의 배우가 여섯 명이어서 저희는 6배로 런스루와 드레스 리허설을 해야 했어요. 물론 그만큼 더 많이 연습하고 개막을 맞이해서 좋은 점도 있죠.
-이번 작품에서 앙상블은 물론 협력안무로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서편제’의 안무를 만듦에 있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해요.
작품에서 한국무용이 나오기 때문에, 한국무용을 한국무용답게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설프게 흉내 내는 건 아무래도 부끄럽잖아요(웃음).
-‘서편제’는 극 안에 판소리부터 팝, 록, 발라드 등 다양한 음악 장르가 담겨 있는 만큼, 안무를 짤 때도 ‘조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요.
뮤지컬 안무라는 것이 그저 멋진 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장면이 표현하는 바를 춤으로 다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편제’도 각 장면마다 다양해서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드라마를 안무로 풀어내기도 하고, 전통적인 멋을 풀어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작품의 중심을 관통하는 ‘조화로움’으로 마무리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안무는 단연, 상여씬(#28 ‘부양가’)인데요. 앙상블의 군무 속에서 독무를 하는 것에 큰 에너지가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일단 굉장히 압축된 에너지를 한 번에 쏟아 내게 되어서 이 장면이 끝나고 나면 쓰러집니다. 이제 저도 나이가 조금 있는지라, 하하.
-이번 작품엔 앞서 ‘곤투모로우’ 때 함께 했던 앙상블 배우들이 다수 포함 됐죠. 그래서인지 앙상블의 호흡이 더 완벽하게 느껴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앙상블 호흡’의 비결은 기계처럼 박자와 각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안무의 흐름을 똑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호흡이 맞아지면서 표현도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극중 가장 애정하는 장면(혹은 넘버)이 있다면?
‘서편제’의 열 여섯 번째 넘버인 ‘한이 쌓일 시간’부터 1막 마지막 장면까지입니다. 정말 감정의 소용돌이가 멈추지 않아서, 숨이 막힐 정도로 몰입하게 됩니다.
-‘서편제’라는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에게 ‘서편제’는 ‘기다림’ 입니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서편제’ 뿐만 아니라 그간 다수 작품에서 안무를 선보였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고르자면?
아무래도 ‘곤 투모로우’입니다. 초연 때부터 너무 많이 고생하면서 만들기도 했고, 이 작품의 연출을 맡으셨던 이지나 연출가님께도 제가 고집을 많이 부려서 죄송하기도 했어요.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다 추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 뮤지컬 배우 정원철 씨의 인터뷰를 했는데, 심새인 배우가 자신의 뮤지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답하시더라고요. 후배 배우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싫어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그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로 인해 그 사람이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항상 그 부분이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부담과 감정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또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더라고요. 그 친구들 중 하나가 정원철 배우예요. 너무 열심히 해서 안 봐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서로 최선을 다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원철이의 그런 마음이 너무 고맙죠(웃음).
-과거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요, 전공은 무용이었죠.
네, 뮤지컬은 2004년 서울예술단에 공연에 객원으로 참여했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사실 그 때까지는 뮤지컬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정말 뮤지컬을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참여한 첫 작품은 2010년에 참여한 조광화 연출가님의 연출작인 ‘남한산성’입니다. 뮤지컬 안무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무용만 했기 때문에 뮤지컬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무작정 오디션을 봐서 앙상블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렇게 합류하게 된 ‘남한산성’에서 조광화 연출가님께 많이 배웠어요.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라도 있었나요?
우연히 창작 뮤지컬에 댄서가 필요하다고 제의를 받아서 출연을 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심새인 배우의 뮤지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혹은 사건이 있을까요?
제 뮤지컬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인물은 세 분이 있는데요, 조광화 선생님, 이지나 연출가님과 극단 ‘간다’의 민준호 연출가님입니다. 조광화 선생님께 처음으로 ‘공연예술’을 배웠고, 이지나 연출가님은 저를 시련에 빠뜨리기도 하며 성장시켜 주셨고, 민준호 연출가님은 제가 만들고 싶은 공연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셨죠.
-뮤지컬 배우로, 안무가로 활동하시면서 슬럼프도 있었나요?
뮤지컬 안무를 맡아 일을 하다가 몇 년 전 잠시 뮤지컬 안무하는 것을 중단했었습니다. 저 스스로의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요. 고민하다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에 연극에 출연하면서 2년 정도 배우로만 살았습니다. 연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야 안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다시 뮤지컬 안무를 시작했을 때 정말 스스로 좀 더 성장했다고 느껴졌습니다.
-심새인 배우의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도 궁금합니다.
다 잘하고 싶습니다(웃음). 안무도, 연기도, 노래도요. 하나씩, 하나씩 제가 정한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중이라 즐겁습니다.
-심새인 배우의 최종 목표는?
가끔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앞으로 안무를 할 것인지, 연출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배우를 할 것인지요. 뭔가를 하나만 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제가 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동시에 잘 해내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