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시간강사 하다 연세대 상대 소송 제기…"모든 업무 쉴 틈 없이 수행, 정당한 보상 원해"
법조계 "비정규직 시간 강사로 일하면서 실제 수행한 주당 근무시간 입증하는 것이 중요"
"강의 준비하는데 시간 소요된다는 것, 정 작가가 재판서 충분히 밝혀야 할 것"
"일반 근로자와 다른 형태 근무자들, 정해진 근무시간 외 일했던 기록 증거로 남겨야"
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최근 11년간 시간강사로 일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 연차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조계에서는 정 작가가 연세대에서 비정규직 시간 강사로 일하면서 실제 수행한 주당 근무시간을 입증한다면 승소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강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강의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정 작가가 충분히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3단독 박용근 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소송에서 정 작가는 "저는 매일 행정 근무와 강의 준비, 학생 지도, 과제 평가 및 시험 등 모든 업무를 쉴 틈 없이 수행했다"며 "열심히 일했고,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원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지난 2010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 퇴직할 때까지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하며 러시아어1(3학점), 러시아 문학(3학점), 러시아문화체험(3학점) 등 한 학기 평균 9학점 규모의 강의를 진행했다.
학교 측은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한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2019년 8월) 이후부터 근로시간을 계산해 퇴직금 등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법 시행 이전에는 정 작가가 주(週) 15시간 미만 근무한 초단시간 근로자이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정 작가가 연세대에서 비정규직 시간 강사로 일하면서 실제 수행한 주당 근무시간을 입증한다면 승소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교사의 경우 방학 중에 수업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서 그 시간에 대해서도 급여를 지급해야 된다는 판결이 있다. 수업 준비도 실제로 업무 시간으로 본 것이다"며 "강사들도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이 근로 시간에 포함되고, 이 준비하는 시간이 중요한 만큼 충분히 근무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에선 이미 일반적인 근로자와 다른 형태로 근무 중인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가급적 확대해서 인정해주려고 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8월, 강 모씨 등 서울시립교향악단원들이 서울시향 상대로 청구한 임금(연차수당지급) 청구 소송에서 "단원이 출근하지 않고 개인연습 한 날도 출근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일반적인 근로자와 달리 시간제 강사는 다른 형태로 근무를 하고 있기에 이를 입증한다면 정 작가의 승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노동법을 전문으로 하는 김남석 변호사는 "실제 강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강의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정 작가가 충분히 입증을 해야한다"며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시간 강사는 (준비하지 않은 채) 수업에 그냥 가서 강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작가가 승소하더라도 '시간제 강사에게만 적용되는 특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윤 변호사는 "정규 강사들도 근무 시간으로 인정되는 시간에 수업만 하는 게 아니다. 일주일에 정해진 강의 시간 외의 나머지 시간은 수업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한다. 또 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을 해주고 있다"며 "기존의 교수들과 비교했을 때, 시간 강사들이 홀대 받고 제대로 노동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직장갑질 119 소속 권호현 변호사는 정 작가처럼 일반 근로자와 다른 형태로 근무하는 종사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수당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다면, 정해진 근무시간 외에도 일했다는 기록을 증거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변호사는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을 쓰든 일기장이라도 쓰든 상사들이 업무 지시를 내린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며 "언제 업무 지시를 받았고, 몇 시에 출·퇴근을 했다는 것에 대한 기록을 준비해두면 (승소)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정 작가가 재판에서 승소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안일했던 노동 시간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끔 될 것이라는 분위기이다. 김 변호사는 "예전에는 근로시간에 관한 기준을 좁게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근로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확실하게 찾아가는 편이다. 이런 추세를 본다면 기존에는 근로시간에 계산이 안 되었던 부분들이 조금 더 법의 규정에 맞게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