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00원 초읽기…원자재 및 해외 투자 비용 상승 불가피
달러 결제 많은 항공사 등 산업계 타격…원자재 수급 관리로 비용 상승 최소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진입을 목전에 두면서 산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전 보다 원자재 비용이 늘어나고 해외 현지 투자금액도 상승하는 등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의 고강도 금융긴축 속 경기침체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기업들은 수요 감소로 경영 사정이 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이 같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수급 안정화 방안 등으로 원가 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에게 있어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호재 보다는 악재에 가깝다. 이전에는 제품을 같은 달러화 가격에 팔아도 원화로는 이익이 늘어나는 효과가 뚜렷했지만 현재는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이 급격히 상승해 비용 부담이 더 커진 상황이다.
실제 원자재 수입 비용은 올해 초부터 고공행진 중이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동시 상승하면 비용 부담은 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겨 소비를 줄이고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항공업계는 이미 고환율로 타격을 입고 있다. 유류비를 비롯해 항공기 대여(리스)료, 영공 통과료 등을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로, 환율 상승분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한항공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환손실이 350억원 발생한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환율이 10% 상승하면 세전순이익이 3586억원 감소하며, 제주항공은 환율 5% 상승시 외화금융부채가 166억원 늘어난다.
대한항공은 원화, 엔화 등으로 차입 통화를 다변화해 달러화 차입금 비중을 축소시키는 등 환율변동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도 환율, 유가 등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위험과리위원회를 운영중이다.
항공업계는 다만 고환율로 해외여행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수요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항공사들의 운항 확대 정책도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에서 벗어나 여객수요 회복 단계로 접어든 상태에서 고환율, 유가 상승등으로 인한 영업비용 증가가 우려된다"면서 "이는 해외여행 심리 위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원유를 달러로 수입하는 정유업계도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이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한다. SK이노베이션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환율 5% 상승 시 법인세차감전 순이익이 303억원 감소한다고 밝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유를 달러로 수입하기 때문에 원화가치 하락은 외화자산과 부채 가치가 변해 정유업계에 환차손을 야기한다"면서 "다만 원유 수입 중 40%를 수출하기 때문에 환차손 영향은 일부 상쇄된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석유화학업계 부담도 늘고 있다. 석유화학 관계자는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시 원화 표시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나프타 등 원자재 수입 비중이 늘어나고 있어 긍정적인 요소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주요 배터리사들도 환율로 인한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환율 10% 상승 시 법인세차감전순손실은 1638억원이라고 밝혔다. SK온도 환율 5%가 오르면 세전손실이 72억원 늘어난다.
철강사들도 철광석, 석탄 등 주요 원재료를 달러로 결재하고 있어 이익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수출로 어느 정도 매출 증가 효과가 생기지만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등 비용 부담도 동반 증가한다.
자동차·조선업계 등도 환율 변동에 대응해 환헷지(Hedge) 등 위험회피 장치를 두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이 워낙 가파른 탓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진단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들은 건조대금을 달러로 받고 환헷지를 하기 때문에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선박 발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늘어나는 원자재 부담 외에 현지에 투자하는 설비 등의 비용 상승으로 수익이 악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그룹들은 배터리, 전기차 등을 중심으로 설비 신증설에 나서는 상황으로 환율이 오르는 만큼 추가 자금 투입이 예상된다. 국내에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도 수입 원자재 가격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같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수급 관리 등에 업계가 보다 전사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원가 상승 압력을 최소화하는 한편 시장 전략을 재점검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장상식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당분간 달러 가치가 올라가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수출 비중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해외에서 원자재를 조달하는 경우 제조원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하하는 방안 등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