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붕 끝단 녹이는 현상 최초 재현
기후변화의 영향에 노출된 남극 가장자리에서 얼음이 녹는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연쇄작용이 확인됐다.
극지연구소는 남극 빙붕에서 흘러나온 물이 다시 빙붕을 녹이는 과정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27일 밝혔다.
빙붕(ice shelf)은 육지에 있던 빙하가 바다로 흘러간 뒤에도 떨어지지 않고 빙하와 이어져 있는 수백미터 두께의 얼음덩어리를 말한다. 남극의 빙하가 전부 바다에 빠질 경우 지구의 해수면은 58m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빙붕은 빙하가 바다로 빠지는 것을 늦추거나 막는 역할을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따뜻해진 대기, 바닷물과 만나면서 빙붕이 녹고 있다는 것은 관측으로 알 수 있지만, 열의 이동 경로나 얼음이 녹으면서 발생하는 현상 등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빙붕과 빙하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 예측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극지연구소 이원상 박사 연구팀은 빙붕이 녹은 이후에 나타나는 2차 현상에 주목했다. 제주대·경북대 등 공동연구팀과 함께 2017년 2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로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난센 빙붕을 탐사해 빙붕이 녹아서 생성된 물의 움직임을 모델로 만들고 재현했다.
분석 결과, 빙붕 하부에서 녹은 물은 표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빠르게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열이 전달돼 빙붕의 가장자리를 녹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델에 따르면, 빙붕 가장자리 녹는 양의 약 12~25%는 하부에서 흘러나온 물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빙붕은 눈이 쌓이고 다져져서 만들어진 빙하가 기원이기 때문에 염분이 바닷물보다 적다. 빙붕 하부에서 녹은 물도 주변 바닷물보다 밀도가 낮기 때문에 강한 부력을 갖게 됐고, 빙붕 하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번 연구는 2019년부터 추진한 해양수산부 ‘서남극 스웨이트 빙하 돌발붕괴의 기작규명 및 해수면 상승 영향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됐으며, 국제적인 학술지 The Cryosphere紙에도 게재됐다.
나지성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빙붕 가장자리 주변을 매우 빠르게 흐르는 융빙수의 흐름에서 착안해 난류 모델링을 수행, 이번 연구결과를 얻었다”면서 “앞으로도 현장 관측을 토대로 보이지 않는 얼음 아래 영역을 모델로 재현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진경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 때문에 남극이 녹아내릴 때, 자연은 자정작용으로 속도를 늦추기도 하지만 연쇄작용을 거치며 더 빨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이 같은 기작 중 하나를 규명한 것으로, 남극 녹는 속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