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47>] 술은 힘이 세다


입력 2022.10.12 14:16 수정 2022.10.12 14:16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47화 술은 힘이 세다


한종탁은 문득 힘이 되어주는 여인을 곁에 둔 이철백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보며 구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이왕이면 독자층을 겨냥해서 확인사살 하듯이 제대로 구성을 해보자고. 우리 친구들 중에 그래도 제대로 된 술꾼은 석규잖아. 물론 제대로 되었다고 내가 말하는 건 석규가 술을 제대로 마실 줄 아는 주당이라는 말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술꾼정도는 된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술과 나’ 같은 건 다음에 철백이 네 이름이 알려진 후에나 쓰고 이번엔 석규 이야기로 한번 나가보자고.”


“석규는 술에 관한 한 국가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술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내 생각하고는 많이 다른데?”


“내 말은 석규의 술에 관한 견해, 철학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석규의 에피소드만 따오자는 거야. 안 되겠다. 맥주로 문학을 말하긴 싱거우니까 소주로 바꾸자.”


한종탁은 불끈 의욕이 샘솟는지 방선희에게 소주와 안주를 부탁했다. 그러자 방선희가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다가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너, 장가 잘 갔다. 선희 씨, 보통내기가 아닌데?”


“장가는 무슨, 그냥 동거하는 거지.”


“네 얼굴이 많이 펴졌어. 모텔 생활할 때는 노숙자가 따로 없더니.”


“그래, 선희 덕분에 모텔에서 난 용이 됐다. 내가 글 쓸 생각을 다 하다니.”

이철백이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맥주잔을 비우더니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왔다. 그리고 한종탁에게 술을 따라주며 ‘석규의 에피소드만 따오자는 말까지 했지?’ 하고 운을 띄웠다.


“나 역시 석규 도플갱어란 소릴 들을 정도로 술 먹으면 개가 되지만 석규 주장엔 동의하지 않아. 사람에게는 술을 자제할 의지가 있고, 만약 술주정이 심했다 하면 술 깬 후에 성찰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데 술에 휘둘린다는 건 본인에게 문제가 많다는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지만 술과 관련한 불미스런 일들은 개인의 잘못이라고 봐야지, 그걸 국가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건 좀 오버라고 봐.”


“내 말이!”


이철백이 뜻밖의 동조자를 만나 기쁜 나머지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문학이란 건 저자의 메시지가 너무 강해선 안 되잖아.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둬야지, 마치 강요하듯 몰아붙이면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든. 그러니까 석규에게선 에피소드만 차용하는 거야. 가령 정신병원에 들어간 얘기라든지, 그 전에 철백이 너한테 간디라는 소설을 헌정한 거라든지. 참 희한하긴 희한해. 술 처먹는 걸 무슨 수행씩이나 추켜올리고. 어쨌든 문학적 상상력이 기발한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의사 말로는 그게 문학적으로 기발한 거라기보다는 술을 먹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던데?”

두 사람이 서로의 잔을 채우는 사이 방선희가 두툼한 계란말이를 만들어 왔다. 둘은 목청 높이 건배를 외치며 계란말이 한쪽씩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때 손님들이 들어와서 테이블 하나에 자리 잡고 앉자 방선희가 재바르게 달려가 그들 곁에 엉덩이를 걸쳤다.


“저런 거 보면 질투 나지 않냐?”


한종탁이 손님들과 희희덕대는 방선희를 가리켰다.


“아니, 전혀. 선희와 난 동거하기 전 서로에게 구속 아닌 자유를 보장하자고 약속했어.”


“완전 신세대구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진도 나가자. 아까 얘기나 계속 해봐라.”


이철백은 오로지 글 구성에만 생각이 꽂혀 있어 다른 얘기가 끼어들면 대화가 오염될까 조바심을 냈다.


“석규의 소설 간디, 그리고 술을 주적으로 전쟁을 치른 편집망상과 정신병원 입원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석규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지를 희화화한다고.”


“있는 그대론데 뭐. 거기다 술과 관련한 문단의 일화나 기행들, 이백이나 두보야 워낙 많이 알려져서 신선한 맛이 없으니 가급적이면 유명 문인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집어넣어.”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인터넷을 뒤적이든지 문단 말석이라도 기웃거리든지 어쨌든 그건 작자의 몫이야. 거기다가 고관대작의 술 에피소드도 좀 찾아서 넣고. 한 가지 알려주자면 박정희 말이야.”


“박정희 대통령?”


“그래 박통. 박통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알아? 바로 술 때문이야. 술이 아니었으면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한종탁이 소주 한잔을 탁 털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5.16 전날에 말이야. 박통은 밤 10시까지 거사 본부로 정해 놓은 6관구 사령부, 그러니까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어. 그래서 밤 9시 반쯤 신당동 집을 나서려는데 6관구 참모장에게서 전화가 와. 밀고로 쿠데타 계획이 탄로 났다는 거지. 집 앞엔 방첩대 지프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고, 6관구 사령부엔 장도영 참모총장이 보낸 헌병대가 와 있다는 거야. 박통은 다급해져서 육사 동기 한웅진이 유숙하는 청진동 여관으로 일단 몸을 피했어. 여관방에 쭈그리고 앉은 박통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과 초조 속에 가슴이 타들어 갔어. ‘이미 탄로 났는데 6관구에 가면 뭐해.’ 하다가 ‘그래도 동지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박통은 결단을 못 내리고 흔들리고 있었지. 그때 딱 떠오른 게 바로 이거야.”


한종탁이 소주잔을 치켜 올리더니 시원하게 쭉 들이켰다.


“대포나 한잔 하면서 생각해 보자며 동지 두 사람과 청진동 대폿집으로 향했어. 거기서 박통은 벌컥벌컥 술을 마신 거야. 거나하게 취하자 대담해지기 시작했어. 그걸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라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간이 엄청 커진 거야. 원래 술 취하면 다들 그렇잖아. 완전 이판사판이 된 거지. 어차피 5월 말이면 강제로 옷을 벗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성공한 거야, 쿠데타가.”


“이야, 그런 일도 있었어? 역시 술의 힘이 세긴 세구나.”


“술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더라.”


“차라리 종탁이 네가 글을 써라. 네가 쓰면 훨씬 재밌겠다.”


“네가 구상한 걸 내가 뺏어 쓸 수 있냐? 어쨌든 참고해서 한번 잘 써봐라.”


한종탁과 이철백은 밤늦은 줄 모르고 술과 문학 이야기로 마음껏 회포를 풀었다. 방선희는 블랙&화이트의 영업시간이 끝난 후에도 두 사람을 위해 술과 안주를 한없이 내어주었다. 최근 들어 계속되는 이철백의 활기 넘치고 의욕에 찬 모습이 방선희를 흡족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