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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3>] 천막 농성


입력 2022.12.07 14:01 수정 2022.12.07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

제63화 천막 농성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민정호는 언론을 통해 담뱃값 인상에 대한 여론 떠보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식통에 의하면 금연 주무부처인 복지부를 배제하고 재정부에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담뱃값 인상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서기관님.”


전화상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글맞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우환 행정관이었다. 민정호는 또 무슨 일로 전화를 하는가 싶어 신경이 잔뜩 쓰였다.


“김석규가 정책 자문으로 위촉되어 있죠?”


“네, 그렇습니다만.”


“해촉하세요.”


“해촉이라뇨?”


“이번에도 못 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게 알고 전화 끊습니다.”


민정호는 지난 번 담뱃값 인상과 관련하여 김우환에게 미운 털이 박혀 있어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사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김우환도 잊었고 김석규도 잊었다. ‘공무원이 그런 거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오죽하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까지 있겠어?’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김석규가 SNS와 저작물을 통해 금주운동을 재점화시키며 전면에 등장한 것이었다.


민정호는 뜨거운 김석규의 연설에 열광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문득 자신이 외딴 섬처럼 느껴졌다. 누구보다도 금주문제에 있어서는 열정적이어야 할 자신이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민정호는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처음 임용 받을 때만 해도 패기만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처량하고 초라한 몰골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민정호는 집회가 끝나기를 기다려 저녁 늦게 인근 커피숍에서 김석규를 만났다.


“고맙습니다, 서기관님. 마음고생이 심하셨겠군요.”


민정호의 말을 듣고 난 김석규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보단 김 선생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죠.”


“아닙니다. 공무원 조직을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요, 뭐.”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민정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잔을 들었다.


“제가 먼저 제보자를 밝히진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언젠가는 알려질 텐데요. 그러면 서기관님 신분상 불이익은 불을 보듯 뻔하고…. 지금이라도 제보를 철회하신다면 저 역시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이렇게 저를 믿고 말씀해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김석규는 진심으로 민정호를 걱정해서 말해주었다.


“불이익은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금주운동의 주무부처에서 도와드리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는다는 게 내심 죄송했었는데 차라리 홀가분합니다. 부에서 징계를 주겠다면 받아야죠.”


민정호가 결의를 다지듯 미간에 잔뜩 힘을 주었다. 이튿날 김석규는 보건복지위 소속 야당 국회의원인 금주성을 통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어제 민정호에게서 전해들은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에서는 금주정책에 대한 비전도 의지도 없다는 게 이번에 밝혀졌습니다. 저 김석규의 퇴출에 청와대 모 행정관이 개입되어 있고, 또한 담뱃값 인상에 대한 저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저와 금주운동을 역이용했습니다. 무엇보다 금연정책의 일환이라며 추진한 담뱃값인상이 사실은 흡연자들의 금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꼼수 증세’가 목적이라는 게 모 국책연구기관의 시뮬레이션에서도 밝혀진 바 있습니다.”


김석규는 언론에 보도된 시뮬레이션 기사를 오른손으로 높이 들고 찰찰 흔들었다.


“여기 보면 담뱃값이 최소 8천원 이상은 되어야 실질적인 금연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세수를 최대한 거둬들일 수 있는 2천원 인상안을 밀어붙였습니다. 세수 증대를 위해 담뱃값을 인상시키는 정부에 무슨 국민건강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금주성 의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금주운동이 국민건강과 화목한 가정을 견인해 낸다는데 동의하지 못하는 분은 안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금주운동이 세입감소로 이어진다는 부수적인 문제를 가지고 저 김석규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음주가 경기부양의 일정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방치하고 조장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기부양은 유능한 경제전문가들이 정책으로 일궈내는 것이지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아 이끌어내겠다는 건 발상 자체부터가 조금 아니지 않습니까?”


김석규의 기자회견 후 정부를 대하는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팽배해졌고 대규모 집회가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서민들은 아무리 경제 살리기도 좋지만 국민들 술 먹여서까지 부양시킨다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를 성토했고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즉각적인 금주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정부여당을 겨냥해 무기한 장외 금주투쟁을 선포했다. 급기야 주식시장이 얼어붙었고 경제지표는 뚜렷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정부여당은 경제를 위협하는 금주투쟁을 중지하고 국회에 등원해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자며 야당에 간곡히 요청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야당이 장외투쟁을 포기하고 등원을 결정할 리 만무했다. 야당은 시청 광장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김석규를 최대한 활용하며 금주투쟁 국면을 이끌었다. 김석규는 뜻하지 않게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고 언론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보도했다.


김석규를 취재하는 언론엔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AP, 로이터 등 세계적인 통신사는 물론 중국의 신화통신, 러시아의 이타르타스통신, 그리고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아사히, 산케이 같은 미국과 일본의 언론사까지 망라하고 있었다. 심지어 영국의 BBC에서는 김석규의 금주운동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고 있었다.


김석규는 야당의 천막당사 한쪽에서 농성하며 금주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금주특별법은 크게 다섯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①정규교육과정에 금주교육 포함, ②술 광고․판매 및 음주구역 규제, ③음주 범죄행위 가중처벌, ④금주운동 동참 시 세제 혜택, ⑤알코올중독환자의 의료비․생계비 지원 등이었다. 음주와 비평사 강용태 사장은 그 와중에도 농성장 옆에 김석규의 저작 코너를 마련해 두고 홍보와 판매에 열을 올렸다.


추석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한여름의 폭염이 지나고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으나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김석규의 아내 박미옥이 가을 옷과 속옷 등속을 챙겨들고 농성장을 찾아왔다. 박미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상경하여 농성장을 방문했다. 박미옥이 그 사이 많이 수척해진 김석규의 얼굴을 보고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김석규는 덥수룩한 수염에 초췌한 얼굴을 하고서도 박미옥의 걱정을 덜어주느라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박미옥이 한동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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