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늦은 현대차그룹, 결국 '엔비디아' 손 잡은 이유

편은지 기자 (silver@dailian.co.kr)

입력 2026.03.18 15:06  수정 2026.03.18 15:06

현대차그룹, 엔비디아 '하이페리온' 도입키로

자체 통합 OS 구축 늦어…속도전으로 '선회'

데이터 쌓고 향후 내재화로…구조적 종속은 우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 10월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행사에서 무대에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자율주행 경쟁에서 뒤처진 속도를 만회하기 위해 결국 외부 플랫폼을 택했다. 독자 개발을 고수해온 전략에서 한 발 물러나, 엔비디아의 차량용 통합 플랫폼으로 '빠른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시간과 비용, 기술 리스크를 감안할 때 ‘완전 내재화’보다 ‘속도 확보’가 우선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7일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을 도입해 자율주행 레벨 2부터 레벨 4까지 확장 가능한 통합 아키텍처(설계구조)를 새롭게 구축한다고 밝혔다.


하이페리온은 엔비디아가 완성차 업체에 제공하는 일종의 '자율주행 플랫폼 패키지'다. 차량용 칩, 센서 구성,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운영체제 등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으로, 완성차 업체가 이를 활용하면 개발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이미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 볼보, BYD 등 글로벌 주요 업체들도 이를 채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이번 결정은 그간 추진해왔던 그룹 자율주행 전략이 일부 수정됐음을 의미한다.


현대차그룹은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테슬라처럼 '자체 플랫폼'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차량 운영체제(OS)부터 자율주행 알고리즘, 데이터 수집·학습 체계까지 자체적인 수직 통합 구조를 직접 구축해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쌓는 것이 숙제였다. 자체 플랫폼 구축은 천문학적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구축에 성공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수년간 포티투닷과 AVP(첨단차플랫폼) 본부, 모셔널을 중심으로 수조원의 투자를 이어왔지만, 예상보다 비용·시간 등 리스크가 커지자 차선책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네이버 개발자 출신 송창현 전 현대차그룹 AVP본부장 사장은 3년간 OS 구축 임무를 맡아 추진하다가 지난해 말 돌연 사임했다.


시간과 비용을 쏟는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속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위기감도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이미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고, 주요 완성차 업체들 역시 빅테크 업체들와 협력을 확대하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자체 플랫폼 구축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차그룹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율주행 기술 경쟁이 ‘선점 싸움’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자체 개발에만 매달릴 경우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하이페리온 도입을 계기로 데이터 기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영상·언어·행동 등 차량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 수집 ▲AI 학습 및 성능 개선 ▲실제 차량 적용 ▲데이터 품질 고도화로 이어지는 ‘데이터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엔비디아가 보유한 AI 기술과 대규모 학습 인프라를 활용해 그룹 전반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하나의 학습 파이프라인으로 통합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이는 단순히 플랫폼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 기술 내재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초기에는 외부 기술을 활용해 속도를 확보하되,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자체 기술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고성능 AI가 실제 도로 데이터를 스스로 수집·학습·구조화하는 체계를 구축하면, 이후에는 플랫폼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다만 구조적 딜레마도 안고 있다. 외부 플랫폼에 의존할수록 개발 편의성과 속도는 확보되지만, 동시에 핵심 기술 주도권은 약화될 수밖에 없어서다. 과거 스마트폰 산업에서 하드웨어 업체들이 플랫폼 기업에 종속됐던 전철을 자동차 산업이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자율주행 업계 전문가는 "이번 결정은 '쉬운 길'이라기보다 '현실적인 타협'에 가깝다"며 "자율주행은 먼저 달리는 쪽이 데이터를 쌓고, 데이터가 다시 격차를 벌리는 구조다. 뒤처진 상태에서 자체 개발만 고집하는 건 오히려 더 큰 리스크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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