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마일리지 손댈 권한 없지만…항공업계 '저승사자' 무시 못 해
元 "가르치는 자세 틀렸다" 호통에…전면 재검토·시행시기 연기 불가피
대한항공 "고객 의견 수렴, 전반적 개선 대책 신중히 검토"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공세가 이어지며 대한항공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의도가 곡해된 부분은 안타깝다는 입장이지만, 항공산업 주무부처의 수장이 나선 상황이라 개편안을 대폭 뜯어고치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거리’로 바꾸는 내용의 마일리지 제도 개편안의 내용 및 시행 시기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마일리지 제도 개편과 관련해 현제 제기되는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반적인 개선 대책을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소비자 여론이 좋지 못한 데다, 정부·정치권에서도 연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기존 개편안을 고수하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항공사 마일리지는 적립은 어렵고 쓸 곳은 없는 소위 ‘빛 좋은 개살구’”라고 비판하고 나선 데 이어 17일에는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민이 낸 혈세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것을 잊고 소비자를 우롱하면 되겠나”라며 마일리지 제도 재검토를 요구했다.
19일에는 원 장관이 재차 압박에 나섰다. 그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간담회를 마친 이후 기자들과 만나 “대한항공은 코로나 때 고용유지 지원금과 국책 금융을 통해 국민들의 성원 속 생존을 이어왔다”며 “고객들에게 코로나 기간 살아남게 해줘 감사하다는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장기간 동안의 마일리지 적립 환경 변화, 해외 항공사 트렌드 변화 등을 감안하면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고, 개편을 통해 다수의 단거리 이용 승객들의 혜택이 더 커진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오히려 핀잔만 더 들었다. 원 장관은 “국민들에게 유리하다고 가르치는 자세로 나온다면 자세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 마일리지 제도가 국토부 소관은 아니다. 굳이 정부에서 손을 댄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할 일이다. 그럼에도 원 장관이 나선 데는 일종의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차기 대권 주자 중 하나로 꼽히는 원 장관인 만큼 국민 여론이 들끓는 이슈에 뛰어들어 ‘해결사’ 역할을 한다면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치적 의도가 반영됐다면 적정선에서 봉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희룡이 기업을 압박해 국민 불만을 해소해줬다’는 상징적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국토부가 마일리지 제도 자체를 놓고 항공사를 규제할 권한은 없지만, 대한항공으로서는 항공 산업 주무부처인 국토부 수장의 노골적인 의견 표명을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운수권 배분이나 각종 규제 등 국토부가 항공사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를 감안하면 대한항공이 예정했던 대로 4월 1일부로 기존 공개된 방식의 마일리지 개편안을 시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당 기업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국토부가 항공사들에게는 저승사자인지라 (원 장관의) 입장을 반영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원 장관의 발언은 제도 자체를 다시 고민하라는 식인지라, 기존 개편안의 틀을 유지하며 고객 혜택 추가 등으로 보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거나 시행 시기를 늦추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