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차 베테랑 방송인이라는 이경실이 방송 중 발언으로 성희롱 고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최근 연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 ‘탤런트 이경실 통신매체이용음란 서울 본청 고발’이라는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 A 씨는 “이경실을 성범죄자로 만들고 고발 후기를 올리겠다”며 ‘라디오라는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함으로써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의 기수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사건은 지난 17일에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벌어졌다. 그날의 출연자는 이제훈, 표예진과 스페셜DJ 이경실이었다. 대화 도중 이제훈의 근육질 상체 사진이 화제에 올랐다. 그때 이경실이 "가슴과 가슴 사이 골 파인 거 보이냐. 저런 골에는 물을 떨어뜨려 밑에서 받아먹지 않냐. 그게 바로 약수다"라며 "그냥 정수가 된다. 목젖에서부터 정수가 돼 우리가 받아먹으면 약수"라고 했다.
이 발언 때문에 대학생 A씨가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로 고발하고 나섰고, 다른 시민들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접수했다고 한다. 이경실이 베테랑 방송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고, 스페셜 DJ로 방송국이 초빙할 정도로 방송계의 신망이 두터운 상황인데도 이해하기 힘든 실언을 했다.
이번 발언은 방송계의 전통적인 관행이다. 보통 여성을 상대로는 성적인 발언도 안 하고, 몸에 대해서도 묘사나 품평을 자제한다. 특히 여성의 가슴에 대한 언급, 묘사는 절대 금기다. 반면에 남성을 상대로는 방송에서 종종 성적인 발언을 해왔다. 정력이 강해 보인다는 말 정도는 남성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다. 남성의 몸에 대한 묘사, 품평도 자유로웠다. 남성의 근육질 가슴에 대해서도 묘사, 영상 표현, 직접적 접촉까지 다반사였다.
그런 관행 속에서 남성에게 성적으로 ‘들이대는’ 것이 전형적인 예능 코드로 활용됐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세바퀴’이고, 그 프로그램의 중심인물이 이경실이었다. 그 시절의 개그를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이번에 또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해졌고, 남녀 차별에 대해선 더 예민해졌다. 만약 남성 연예인이 여성 연예인의 가슴골로 물을 흘려 받아먹겠다는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즉시 방송 퇴출, 매장될 것이다. 남성은 해선 안 되는 일을 왜 여성은 자유롭게 하냐는 게 문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고발한 A씨는 “남녀평등이 강조되는 사회적 인식에 미루어볼 때 누구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온라인에서 타인으로부터 성적인 언행을 들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요즘은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에 적용되는 잣대도 차등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보편화됐다. 누군가에 대해 일방적으로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성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각심이 커졌다. 이경실이 이런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세바퀴’ 때는 남성 출연자의 몸에 여성 출연자들이 손을 대는 일도 많았다. 그런 감각을 아직도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기존 방송 관행의 측면도 있고, 정작 당사자인 이제훈의 입장도 불분명하고, 남성의 근육질 가슴은 여성의 가슴보다 사회적으로 성적인 의미가 더 작게 통용되기 때문에 범죄라고까지 단정 짓기는 힘들다. 다만 시대가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것, 여성이 남성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해도 면죄부가 발급되는 분위기는 끝났다는 것, 그 정도는 방송인으로서 숙지해야 이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