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없으면 법원이 풀어줄 텐데
반향실에 갇힌 이재명 추종자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다. 지켜보나 마나 부결될 게 뻔하다.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이 26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단호히’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정당이 하기로 들면 뭘 못하겠는가. 이미 지난 21일 의원총회에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로 결의했었다.
의총 후 박홍근 원내대표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이날 다시 조 사무총장이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죄가 없으면 법원이 풀어줄 텐데
따라서 ‘단호히’ 부결시키겠다고 한 것인데 터무니없는 체포동의안이면 법원이 어련히 알아서 풀어줄까.
조 총장은 ‘정부 검찰 공격’을, 거친 언사로 한참 동안 이어갔다. 거대정당 사무총장의 말이라는 점에서 이는 천박하고 무모한 언어폭력이다. 상대를 공격하려면 구체적으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기소권으로 일삼는 폭력’. ‘무자비한 사법 사냥’이 어떤 것인지 국민이 알아듣게 설명해 줘야 옳다. 김대중·조봉암을 불러내 이 대표 옆에 세우는 것은 황당한 무례다. 개인적 비리 혐의를 어디에 비유하는가. 피의자가 대통령을 가리켜 공공연히 ‘깡패’라고 몰아붙여도 아무 뒤탈이 없는 이 대명천지에 ‘사법살인’이라니!
불체포 특권은 강제력을 가진 측이 정치적 이유로 국회의원의 의정 참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그렇기 때문에 회기 중에만 국회의 체포 동의가 요구된다. 회기 중이라도 개인적 부패 비리 혐의라면 당사자가 감당해야 마땅하다. 그것까지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면 대의 민주정치의 입지와 명분은 크게 훼손되고 만다.
검찰의 체포 동의 요청은 효과적인 수사를 위한 것이고, 수사는 피의자의 혐의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그렇다면 피의자는 기소 후 법정에서 검찰과 다퉈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기소도 되기 전에 검찰을 협박하고 있다. 사건을 법원에 넘기지 말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이는 무모한 국가 사법 체계 파괴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를 살리기 위해 검찰뿐만 아니라 사법부까지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뭔가.
반향실에 갇힌 이재명 추종자들
핍박받는 ‘정치적 약자’의 처지와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정치적 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또한 대단히 고약한 위력 시위다. 의정을 장악하다시피 한 민주당을 약자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위세 시위로 보이기에 십상이다. 여론의 힘을 빌려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법원에 대해서도 (흔한 말로) 재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하는 인상이 짙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로 국가 사법 체계를 무시 혹은 부인하는 행위다.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 입만 열었다면 ‘국민’부터 찾던데,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는 길이 뭔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순리를 따르는 게 국민을 위한 정치다. 민주 법치국가의 입법자들이라면 누구보다 솔선해서 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입법자들 자신은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면서 국민에게 준법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체포동의안을 ‘단호히’ 부결시킬 것이 아니라 의원으로서의 체통을 지키는 선택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간 이 대표가 의원 각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비명계 의원들을 일대일로 만나 설득한 모양인데, 그것 때문에 ‘피리 부는 사나이’(독일 설화: 피리를 불면서 하멜른의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사라져버린 남자)를 따라가는 신세가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피리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시키는 길로 간다고 자신하더라도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반향실(echo chamber)안이라면 같은 목소리, 같은 논리에 휩싸여 있게 마련이다. 이 대표·당 지도부·소속 의원·개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소셜미디어가 말하자면 ‘반향실’이다. 팬덤이나 진영정치가 초래하기 쉬운 것이 ‘반향실 효과’이겠는데 오늘날의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 속에 안주하면 정치인이라고 할 수 없다. 선동가나 그 추종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거기서 벗어날 때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이 보인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