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증식 억제・호흡기 건강에 탁월
인삼법 개정으로 흑삼 신뢰도 회복
홍삼위주 인삼시장 새 콘텐츠로 기대
#. 新농사직썰은 조선시대 편찬한 농서인 ‘농사직설’에 착안한 미래 농업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다. 지난 2021년 7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50회 시리즈로 시즌1을 마무리했다. 시즌2는 그동안 시즌1에서 다뤘던 농촌진흥청이 연구개발한 기술들이 실제 농가와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효과는 있는지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위해 구성됐다. 시즌2 부재는 ‘월령가’로 정했다. 월령가는 ‘달의 순서에 따라 한 해 동안 기후변화나 의식 및 행사 따위를 읆는 노래다. 이번 시리즈가 월령가와 같이 매달 농촌진흥청과 농업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현장에서 만나는 ‘新농사직썰-월령가’가 농업인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인삼은 우리나라 농산물 수출에서 ‘효자’ 품목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랫동안 인삼은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자리 잡았다. 인삼 수출액은 2017년 1억5800만 달러에서 2021년에는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인 2억6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4년 새 69%가 성장한 셈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건강기능성 식품 수요가 늘면서 인산 수출 규모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동안 일본을 중심으로 수출하던 인삼은 최근 중국, 미국, 베트남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특히 중국 시장은 2017년 이후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 인삼의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같은 수출 호재에도 불구하고 홍삼 위주의 단조로운 상품은 다른 건강기능성 식품과 경쟁이 버거운 상태다. 실제로 인삼 국내 소비는 10년 새 35%가 줄었다. 수삼 가격 역시 평년 대비 12% 하락했다. 농가에서 확실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흑삼의 등장은 정체된 국내 인삼 시장의 반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흑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새로운 기능성 효과가 입증됐고, 제조 방법도 단순해져 성장 가능성이 높아졌다.
▶︎위기의 인삼시장…흑삼에 기대를 거는 이유
흑삼을 이야기하기 전에 인삼은 제조 방식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기본적인, 아무것도 가공하지 않은 인삼이 바로 ‘수삼’이다. 즉 인삼을 처음 수확한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보면 된다.
백삼은 수삼을 햇볕・열풍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익히지 않고 말린 것이다. 우리가 인삼에서 제일 많이 소비하는 ‘홍삼’은 수삼을 증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쪄서 익혀 말린 것이다. 담적갈색부터 농다갈색을 띤다.
태극삼은 수삼을 물 등으로 익힌 인삼이다. 담황색부터 담갈색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흑삼은 수삼을 증기 등으로 3번 이상 쪄서 말린 것이다.
이런 인삼 제조 과정을 보면, 흑삼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다. 이전까지 보통 7~9회 찌고 말려서 만들 정도로 정성이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 농촌진흥청이 흑삼을 3~4회만 쪄서 말리는 안전하고 경제적인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또 새 제조법으로 만든 흑삼이 호흡기 건강 개선에 효과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했다.
흑삼은 인삼(수삼, 백삼)을 3회 이상 찌고 건조하는 과정(증숙)을 반복해 만든다. 1회 쪄서 붉은색을 띠는 홍삼처럼 면역력 향상, 피로 해소 등의 효능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흑삼을 만들 때 업체마다 찌는 횟수가 제각각이고, 대부분 7~9회 찌는 경우가 많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가격 차이도 18만원에서 80만원(300g)에 이르는 등 큰 편이다.
이에 어느 정도 온도에서 얼마 동안 찔 것인지, 건조는 어떻게, 얼마나 할 것인지 등 표준화된 제조 공정 확립과 함께 새로운 효능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농진청이 새로 개발한 흑삼 제조 방법은 인삼을 세척하고 예비 건조한 뒤, 90~95℃에서 3~5시간 찌고 45~55℃에서 5~6시간 건조하는 증숙 과정을 총 3~4차례 반복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흑삼을 만드는데 8일 정도가 걸려 기존 9회 증숙 시 18일 걸리던 것보다 시간과 비용, 인건비 등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특히 3~4회 찌고 말렸을 때 소실을 최소화하면서 기능성분 함량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 효능이 우수한 흑삼 제조가 가능하다.
한편 농진청은 지난 2021년 새 제조법으로 만든 흑삼 기능성 및 안전성 검증을 위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천연물의약전문연구단과 지표성분 분석실험, 동물실험 등을 진행했다.
분석결과 인삼류에 있는 기능 성분인 진세노사이드 39종 중 새 기술로 만든 흑삼에는 알지쓰리(Rg3), 알케이원(Rk1), 알지파이브(Rg5), 3개 성분이 특히 많이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성분은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에 탁월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인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다. 홍삼에는 이들 성분이 아주 적게 들어 있다.
새 기술로 만든 흑삼은 호흡기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조사됐다. 천식 동물 모델에 흑삼 추출물을 저농도(50mg/kg/일)와 고농도(200mg/kg/일)로 5일간 투여한 결과, 염증인자인 인터루킨과 면역글로블린 이(E) 분비가 모두 감소했다. 특히 면역글로블린 이(E)는 대조 집단을 100%로 봤을 때, 저농도는 39%, 고농도에서는 62% 줄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 동물 모델 또한 흑삼 추출물(100mg/kg/일)을 6일간 투여한 결과, 대조 집단을 100%로 봤을 때 염증인자 분비가 흑삼 추출물 투여군에서 43% 억제됐다. 이는 함께 실험에 사용한 천식 치료제, 만성폐쇄성 폐 질환 치료제와 비슷한 효과다.
김경미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특작부장은 “홍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저평가된 흑삼이 면역력과 함께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되면 인삼 소비에도 크게 보탬이 될 것”이라며 “흑삼의 기능성 연구에 매진해 또 다른 효능을 발굴하고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등록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송화수 홍삼(전북 진안) 송인생 대표는 “흑삼을 가공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이 애로사항이었는데, 새 기술을 적용하니 시간도 단축되고 기능 성분도 늘어 만족스럽다”며 “이 기술을 적용한 흑삼은 호흡기 건강에 좋다고 하니 앞으로 흑삼 수요가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역 수익창출 선점… ‘흑삼의 메카’ 전북 진안군
전북 진안군은 흑삼을 지역의 핵심 산업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이미 홍삼 등 연구집적단지 조성이 한창인 진안군 입장에서는 확실한 ‘킬러콘텐츠’로 흑삼을 선택한 것이다.
진안군의 흑삼 사랑은 남다르다. 군수를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흑삼 관련 연구소 유치 등 분위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지역특화소득작목 신기술 선도단지 육성 사업을 구체화 하는 간담회도 열었다.지역특화소득작목 신기술 선도단지 육성 사업은 홍삼특구 지역인 진안군이 과거 9증9포로 제조하던 흑삼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기술 이전받아 새로운 흑삼 신기술 선도단지로 도약하고자 공모했다. 현재 3억원 사업비를 확보해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진안군은 사업장 별로 과제를 부여해 유해물질인 벤조피렌이 발생하지 않는 특허 제조법을 현장지도하고 있다. 또 지난해 하반기 시제품 품평회를 진행하는 등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진안군 관계자는 “진안흑삼이 품질・경제성에 차별화를 두고 홍삼특구 명성을 이어갈 것”이라며 “선도단지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진안군에서 3대째 홍삼을 생산하는 송화수 홍삼의 경우 흑삼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4~5년근 인삼을 활용하기에 흑삼이 좋기 때문이다. 일단 성분도 차별화 돼 있어 시장 잠재력이 높다. 재배 농가도 그렇고 가공 업체도 흑삼에 거는 기대감이 큰 이유다.
송인생 대표는 “진안군이 홍삼특구 20년째인데 국내 인삼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며 “이런 시기에 흑삼이라는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특히 농촌진흥청에서 기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이 흑삼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다. 이렇게 흑삼에 대한 첫 발을 땐 것은 굉장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인삼법 개정으로 흑삼 시대 성큼
흑삼은 그동안 모호한 성분기준으로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다. 이렇다보니 음성적으로 고가에 판매되는 등 부작용이 심했다. 더구나 제조 방법이 까다로워 가공 업체에서도 선뜻 흑삼을 선택하는데 부담이 뒤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3월 인삼산업법(이하 인삼법) 일부개정안을 시행했다. 흑삼의 신뢰 회복과 시장 활성화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예상대로 이번 인삼법 개정은 ‘흑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분기준 설정과 제도 개선이 골자다. 흑삼은 지난 2012년 인삼산업법령을 개정해 인삼의 한 종류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업계의 다양한 의견, 과학적 근거 미비 등으로 제조기준만을 정하고 성분기준을 미설정해 소비자 혼동이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이전까지 흑삼은 정의・제조방법(수삼을 3번 이상 쪄서 건조)만 있고 성분기준이 없었다. 엑기스 등 제품 제조 시 홍삼 기준 준용(제품명 흑삼 / 규격라벨 홍삼)으로 소비자 혼란이 가중됐다.
농식품부는 농진청과 협업으로 흑삼 표준화실증연구(2018-2022) 및 업계 의견수렴 등을 거쳐 흑삼에 대한 성분기준을 이번에 새롭게 설정했다. 또 흑삼 안전성에 문제가 되었던 벤조피렌 저감을 위한 제조기준 개선(건조온도 60℃ 이하)도 같이 진행했다.
벤조피렌은 국제암연구소 1급 발암물질로 구분된 성분이다. 고온 가열 과정에서 탄수화물,단백질이 탄화에 의해 발생한다.
농식품부는 앞으로 제품 원료로 주로 사용되는 흑삼 성분기준을 설정한 만큼 현재 농진청에서 진행중인 흑삼 효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건강기능식품 상 흑삼 규격 신설을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를 진행해나갈 계획이다.
김종구 농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흑삼 성분기준 설정으로 새로운 형태의 인삼시장 발굴을 지원해 전체 인삼시장의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에도 인삼 소비 촉진과 인삼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 발굴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월 25일 [新농사직썰-월령가⑤]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