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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박수는 치지 못할망정


입력 2023.05.27 07:07 수정 2023.05.27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 영화 '인어공주' 포스터.ⓒ

제작되기 전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실사판 ‘인어공주’가 마침내 개봉됐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비난이 더욱 강하게 폭주하면서 별점 테러 현상까지 나타났다. 제작 전부터 비난이 터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엄청난 반발은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일어났다. 바로 주인공 캐스팅이 문제였다. 흑인이라서 안 된다는 것이다.


흑인 인어공주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각자의 자유다. 흑인의 모습을 한 인어공주를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 이 정도에서 더 나아가 흑인 캐스팅이 마치 도덕적 잘못이라도 되는 듯 공분하며 질타하는 상황까지 간 것이 황당하다. 흑인 캐스팅이 과연 한국인이 별점 테러를 가할 정도로 잘못된 행동일까?


제국주의 시대 이래 백인중심주의가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대해 세계적으로 줄기찬 문제 제기가 있었고 마침내 백인 중심 판타지의 총본산격인 디즈니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대해 식민지 출신 황인종의 나라인 한국에서 왜 질타한단 말인가?


그동안 디즈니의 백인 중심 판타지에 길들여져 온 것만 해도 원통한데, 디즈니가 시정하겠다는 데도 굳이 한국인이 나서서 그런 판타지를 계속 하라고 요구하는 판이니 납득이 안 된다.


이번 반발은 주인공 인종 문제와 별개로 외모 문제로부터도 비롯됐다. 인어공주가 못 생겨서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외모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동시에 객관적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뛰어나다고 느끼는 외모가 분명히 있다. 바로 그래서 외모로 추앙받는 유명 광고 모델이나 영화 스타 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뛰어난 외모를 매우 선호한다. 그래서 영화에도 미녀미남이 나오길 바란다. 특히 디즈니 공주 영화 주인공은 대를 이어 미녀들이 도맡아왔다. 이렇게 대중문화 작품에서 미남미녀를 내세우면서 안 그래도 뛰어난 외모를 강하게 선망하는 심리에 더욱 불을 질렀다. 이러다보니 외모지상주의가 강해지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구조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면에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큰 특혜를 누린다.


이런 상황에서 디즈니가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외모가 아닌 주인공을 내세웠다면 그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선택에 박수는 쳐주지 못할망정 질타라니?


대중은 뛰어난 외모를 선호하기 때문에 예쁜 주인공을 내세워야 돈을 벌 수 있다. 회사가 예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그런 점에서, 제작 전부터 질타를 받아서 상업적 불이익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캐스팅을 밀어붙인 디즈니의 선택이 놀랍다.


이런 선택에 대해 디즈니의 소유주라면 비난할 수 있겠다. 왜 수익 극대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질타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각자의 자유다. 주인공 외모가 마음에 안 들 순 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그냥 각자 자연스럽게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디즈니가 잘못했다며 준엄하게 공분하는 모양새다. 대중이 동의하는 예쁜 사람을 캐스팅하지 않은 건 잘못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외모차별적인 발언을, 그것이 마치 극히 정당한 사회적 당위라도 되는 양 공공연히 주장하는 세태가 놀랍다. 안 예뻐서 싫다는 말은 혼자 속으로 느끼거나 사석에서 나눌 정도의 얘기지 사회적으로 공분하며 주장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인어공주 관련해서 황당한 주장이 또 있다. 일각에서 앞에서 설명한 주장을 하면서 동시에 디즈니가 유색인은 못 생긴 사람을 뽑고 백인은 예쁜 사람을 뽑아서 백인을 돋보이게 만든다는 주장도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논리가 뒤죽박죽이 된다. 유색인 인어공주가 잘못됐다는 건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백인을 돋보이게 해서 문제라고 하는 건 PC를 하라는 이야기다. ‘인어공주’와 관련된 반감이 너무 커서 모든 불만을 격정토로하다보니 논리적 연결성마저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까지 격분할 일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에 대해 실망하고 싫어할 순 있다. 그걸 넘어 옳고 그름의 차원으로까지 주장하면서 옳지 않은 디즈니를 징벌하려고 한다는 점이 문제다. 백인도 아니고 디즈니 소유주도 아닌, 식민지 출신 한국의 황인종이 왜 이렇게까지?

ⓒ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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