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호남서 "지역민 민주당에 실망 많아"
당내서 이재명 체제 향한 '쓴소리' 낸것 분석
지역인사 100여명 동행…'세력 결집'도 성공
"이재명 흔들리면 그 자리 간다 포석 던진 것"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이재명 체제를 향한 쓴소리와 함께 세 결집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당내가 요동치고 있다. 이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전 대표가 대체재로 급부상하고 있어서다. 당의 어른인 이 전 대표가 분열을 원치 않을 것인 만큼 의사 표현을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던 당내 인사들도 이번 발언에 대해서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이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따라 당의 진동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황희 민주당 의원은 3일 SBS라디오에 출연해 이낙연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두 분(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이 대선 때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고, 지금 어느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다 한다"며 "민주당에 혁신이 필요하고 변화가 필요하단 얘기는 이 전 대표 뿐 아니라 모든 민주당 당직자와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의원이 언급한 건 전날 호남을 찾은 이 전 대표가 던진 메시지다. 이 전 대표는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역민들이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기대를 건 민주당에도 많이 실망한 것 같다"며 "민주당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가치를 찾는 정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민주당의 방향에 대해 입을 연 건 귀국 후 처음이다. 귀국 당시 공항에서 "못 다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발언 이후 처음으로 낸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 이 전 대표가 방문한 곳이 자신의 연고지이자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인만큼, 해당 지역에서의 실망은 곧 이 대표를 향한 것이며 현 체제가 민심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단 점을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의 현 체제에 비판의 날을 날카롭게 세울수록 이재명 대표와의 대립이 재연될 공산은 커진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 간의 갈등은 일찌감치 예고된 측면도 있다. 친낙계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SBS라디오에 나와 이 전 대표와 이 대표에 대해 "우선은 두 분 사이에 신뢰가 복원이 돼야 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대선이 끝나고나서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선에 협조하지 않아서 이재명 후보가 졌다'고 엄청난 비판을 받았지 않느냐. 세상 모든 선거엔 다 주역이 있는데 주역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가 없고 조력자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이상한 논리들이 만연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이 전 대표에 대한 악마화(가 계속되는) 식으로는 정말 신뢰를 회복하기가 쉽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대선 패배 책임'을 주연인 대선후보가 아닌 조연에게 돌리며 '악마화'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친명계는 급소를 찔린 듯 펄쩍 뛰고 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YTN에 출연해 "신뢰 회복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윤영찬 의원이 가진 피해의식이 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전 대표(이낙연)와 현 대표(이재명)는 그런 앙금이 있지 않을 것 같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이런 식으로 지나간 일들을 시시콜콜 따지기 시작하면 우리 민주당 내부의 단합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았다.
아울러 이 같은 갈등은 이 전 대표를 고리로 한 친명과 비명 간의 대립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당내에선 이번 묘역 참배에 이개호 민주당 의원과 박시종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 100명 이상이 집결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가 '세 결집'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 전 대표와 같이 간 인원이 100명이 넘었다는 건 누가 봐도 세력을 결집해서 이를 바깥에 보여준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명의 결집력엔 금이 가고 있는데 이 정도로 큰 세력을 보여줬다면 일각에서의 전망처럼 비명계의 구심점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들도 이 전 대표와 이 대표가 갈라질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달 26~28일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귀국한 이 전 총리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여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로 나서야 한다'는 답변은 36.6%였던 반면, '이 대표에게 힘을 보태야 한다'는 답변은 31.5%에 불과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낙연 전 대표의 '이재명 체제' 쓴소리에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험한 말이 난무하는 모양새다. 소위 '개딸(개혁의딸)'로 불리는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은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이낙연도 철수(안철수 의원)처럼 국짐(국민의힘을 비하하는 말)행 될 것" "이낙연씨…이제 그만 스스로 정계 은퇴 선언을 해주길 바란다" "이낙연을 선택의 조건 없이 버려야한다"는 등의 글을 다수 게재하면서 이 전 대표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이 진짜 분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또 막아야 하지만 심리적 분당 상태가 계속될 우려는 막을 수 없다"며 "총선 전까지 이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전 대표의 발언은 실제로 민주당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지지자들의 심정을 대변하기 위한 의도와 이재명 대표와 각을 세우기 위한 의도가 같이 있을 것"이라며 "이 대표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가 대신 그 자리로 갈 수 있다는 포석을 던지는 메시지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전 대표는 이르면 이번 주 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있는 양산 평산마을을 예방한다. 연장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도 찾아 참배한다. 다만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