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인기몰이를 하던 손석구가 얼마 전 TV 뉴스에서 사과를 했다. 이른바 ‘가짜 연기’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9년 만에 연극으로 복귀하면서 지난 6월 27일에 관련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거기에서 과거 자신이 연극에서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옮겨간 계기를 설명하면서 문제의 그 발언을 했다.
“(연극 대본에선) 사랑을 속삭이라고 하는데, 그럴 거면 마이크를 붙여주든지 무대에선 속삭이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가짜 연기를 시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극을 그만두고 매체로 오게 됐어요. 다시 무대로 돌아오면서 내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에서도 되는지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여기서 중반부에 나온 “가짜 연기를 시키는 것 같았다”는 대목 때문에 큰 논란이 일었다. 언론, 인터넷 커뮤니티 등 여러 곳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당연히 손석구는 크게 놀랐을 것이다.
결국 TV 뉴스에 출연했을 때 ”제가 평소에 배우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 쉽게 쉽게 내뱉는 미숙한 언어, ‘야 너 왜 이렇게 가짜 연기를 하냐’ 이런 것들이 섞여지면서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문장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라며 사과했다.
애초에 손석구가 했던 가짜 연기라는 말은 연극 연기 자체가 가짜라는 뜻이 아니었다. 속삭이는 장면에서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 게 가짜처럼 느껴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말로 속삭일 수 있는 영상 연기로 옮겼다는 자신의 사례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건 손석구의 느낌이고 그의 연기관, 또는 취향이다. 속삭이는 장면에선 속삭이고 싶다는 것이다. 다른 연기자는 다른 연기관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에겐 컷을 나눠 촬영하고, 잘못하면 재촬영하는 영상 연기가 가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연극은 관객이 보는 앞에서 해당 내용이 실제로 실연되는데 반해 영상에선 내용이 뒤죽박죽으로 촬영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에선 톰 크루즈의 절벽 액션 장면을 극중 이야기 전개와 상관없이 무조건 맨 먼저 찍었다고 한다. 사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상물에선 내용과 별개로 촬영이 이루어진다. 문을 여는 장면은 서울에서 찍고 문 밖으로 나온 장면은 3일 후 부산에서 찍을 수도 있다. 커플이 헤어지는 장면을 먼저 찍고 만나는 장면은 나중에 찍을 수도 있다. 그래픽 합성으로 인위적 장면을 만들기도 한다. 컷을 잘게 쪼개면 연기자의 연기보다는 감독의 편집에 의해 내용이 흘러갈 수도 있다.
이런 영상물의 특징 때문에 영상 연기는 가짜고 무대 위에서의 실연이야말로 진정한 연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각자의 연기관 또는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손석구가 속삭이는 장면에선 진짜로 속삭이고 싶다고 하면, “아 저 사람은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가짜 연기’라는 단어 하나에 꽂혀서 많은 이들이 손석구가 연극 연기를 매도했다는 식으로 공격했다.
말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풍경이다.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을 트집 잡아 공격한다. 물론 표현도 중요하지만, 너무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표현을 문제 삼기보단 그 사람이 말하고자 했던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문화판마저 정치판처럼 단어 하나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현 상황이 아쉽다.
누군가의 생각을 관대하게 봐주지 않는 사회기풍도 문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손석구가 연기를 하면서 그렇게 느꼈다면, ‘저 사람은 그렇게 느꼈구나’하면 될 일인데 그걸 굳이 바로잡고야 말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분위기가 숨 막힌다. 속삭일 때 큰 소리로 말해야 해서 가짜 연기처럼 느껴졌다는 말이 과연 사과까지 하도록 압박할 일이었을까? 우리 공론장에 너무 여유가 없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