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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죽창가’ 부르고 싶나


입력 2023.08.21 07:07 수정 2023.08.21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우리군의 전략적 자율성 훼손?

중국의 종주국 지위 추구는 여전

핵모험주의는 북한체제 DNA

함께 번영하는 미래 위한 결속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멀쩡한 한미동맹’을 놔두고 일본과 ‘준군사동맹’을 맺는 것이 국익에 어떠한 도움이 되나.”

더불어민주당의 한미일 3국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공식 논평이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이었으니 ‘공식’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재명 대표가 한 마디 할 법도 한데 아직은 조용하다.


“일본과의 준군사동맹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명확히 설명하라. 오히려 안보공동체 참여로 국민 부담이 늘어나고, 심지어 일본 위기 발생 시 우리나라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등 우리 군의 ‘전략적 자율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군의 전략적 자율성 훼손?

“한국과 미국, 일본의 국익 구조는 다르다. 그런데도 이번 3자 협의에 대한 공약은 미국의 국익을 우리 것처럼 일치시켰다.”

같은 당 박성준 대변인도 거들고 나섰다.


“(이번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대한민국에 돌아온 결과는 수출 감소와 경제 위기뿐이다. 중국 때리기에 열중하면서 대(對)중국 수출은 회복될 기회를 찾기 어렵게 됐고, 미국이 반도체·배터리라는 미래 먹거리를 빼앗아 가는데, 받은 것은 전무하다. 대한민국 외교가 언제부터 ‘들러리 외교’가 됐나?”

야당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야 문제될 것이 없다. 야당의 존재 의의는 ‘NO’에 있다. 정부의 정책과 이의 수행 과정에 대해 찬사만 보내는 야당은 이미 야당이 아니다. 이를 전제로 말하려 한다. 3국 정상회의 결과와 성과에 대해 다른 정당이나 단체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민주당의 평가는 좀 달라야 한다. 비판에 앞서 직전 정부의 실패에 대한 자성을 앞세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멀쩡한 한·미동맹’이라고 했는데, 민주당 대변인이 그런 표현을 쓴 게 생경(生硬: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하고 거북하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을 멀쩡하게 유지하기 위한 안보외교정책을 어떻게 전개했는지부터 밝혀줄 일이다. 문 전 대통령의 눈과 머리에는 북한 김정은 체제만 있었던 것 아닌가? 미국의 역할은 ‘김정은 돕기’의 지렛대로만 한정지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해였나?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와 운용에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중국에는 ‘3불1한’인가 하는 해괴한 각서를, 부끄러움도 없는 양 바쳤다. △미국 MD체계에 참여 △사드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등 3가지를 하지 않는다는 게 3불(不)이다. 여기에다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의 운용을 제한한다는 1한(限)까지 보탰다. 정부 측은 우리의 입장 표명이었을 뿐 약속이나 합의는 아니었다고 우겼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그 ‘입장’이라는 것을 정말 충실하게 지켰다.

중국의 종주국 지위 추구는 여전

‘전략적 자율성’ 운운은 문 정부와 민주당의 상투어다. 군사안보 측면의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워 ‘전시 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 부터 받아내야 한다고 노무현 정권 때부터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이다. 군사동맹 체제는 일정한 자기제한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만 전략적 자율성을 온전히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동맹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문 정권은 그 의지를 과시하려는 듯 온 세상에 대고 ‘종전선언’이라는 것을 선전하고 호소했다. 그게 자율성의 확대이고 그 의의인가?


“미국의 국익을 우리 것처럼 일치시켰다”는 주장은 또 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미국의 이익 확보에 우리가 들러리서고 이용당했다는 뜻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우리 이익만 챙겼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런 국가 간 협력구조에 누가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어깃장도 정도껏 놓을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과 일본이 한편 먹고,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 이런 구도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말은 바로 하자. 중국은 역사적으로 영토 확장과 지배력 강화의 욕구를 포기했던 적이 없다. 경제적으로 우리와 상호의존적 관계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시 및 희망일 뿐 중국의 지배자 의식은 여전하다. 성주 골프장을 사드기지로 내주고 남양주 부지를 받은 것 때문에 롯데그룹의 중국내 기업체들이 어떤 핍박을 받고 어떻게 추방당하듯 철수했는지를,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사람들도 함께 지켜봤었다.


문 전 대통령이 진사(陳謝) 성격의 국빈방문을 했다가 열 끼 가운데 여덟 끼를 ‘혼밥’하고, 수행기자 두 명이 중국 측 경호원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일을 아무도 잊지 않았다. 방문 첫날 만찬과 귀국 날 오찬이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식사대접의 전부였다. 그 오찬은 충칭시 당서기 천민얼이 주최했다. 중앙정부의 고위층은 아무도 (공식만찬 이외에) ‘국빈’을 위한 식사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핵모험주의는 북한체제 DNA

중국 정부의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싱하이밍 주한 대사의 교만한 칙사 행세다. 그는 지난 6월 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해 놓고 15분 동안 한국정부를 성토했다. 옛날 중국 황제의 칙사가 보였던 행티를 재연한 것이다. 최근 중국의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이 6년 5개월 만에 재개됐지만,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선의’에 따른 조치가 아니다. 중국이 그만큼 어려움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많은 국회의원들이 번갈아 드나들며 성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보복조치라고 여겨지는 (우리가 보기엔) 행패를 부렸다. 그러다가 눈 똑바로 뜨고 자기들을 마주 대하는 윤석열 정부에 들어 오히려 유화적 제스처로 돌아섰다. 일관된 원칙에 따른 태도 변화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기합주기를 멈춘다는 의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는 체제가 다르다. 통치자의 기분이나 의지에 따라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전체주의적 독재국가의 특성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고도화 속도가 빨라져 미국까지 제쳐버린다고 할 때 지구촌이 맞닥뜨려야 할 정치 경제적 현실이 얼마나 가혹할 지는 상상하기 어렵잖다. 한미일 남방 3각 안보체제의 강화가 중국·러시아·북한의 북방 3각 안보체제 부활과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제고·확산에는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우리부터 중국 없이 사는 길(그렇게까지는 아니라도 중국 의존도를 낮춰 사는 길)을 찾아내야 하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더 막무가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 역대 진보·좌파 정권들은 햇볕과 웃음을 앞세우고 다가가면 같은 표정의 응답이 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어림없는 망상이었다(사실은 이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김·노·문 3대 정부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핵모험주의 행진은 계속된다. 그게 북한 정권이 태생적 한계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독재자 김정은에게 “거기서 내려올 때 진정한 안전과 평화가 실현된다” 따위의 말을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 호랑이 등에서 내리는 순간 그의 운명은 끝나기 때문이다.

함께 번영하는 미래 위한 결속을

중국과 북한은 친애의 대상이고(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도), 미국은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내기엔 버거운 상대다. 그렇다면 주변 4대 강국과 북한 가운데서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원한이 국민의 가슴 속에 여전히 응어리져 있다. 북한 대신 ‘주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상대로 일본이 적격이라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문 정부는 국방백서에서 ‘주적=북한’ 개념을 아예 삭제해버렸다. 대신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일반론으로 바꿨다. 국민의 적대감을 일본 쪽으로 돌리기 용이하게 만든 셈이다. 문재인의 민족만능주의 정부는, 일본과의 갈등을 고조시키다가 끝내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의 배 열두척’을 선창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이 ‘죽창가’로 추임새를 넣는 상황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탈외교적·반외교적 선동이었다.


문 정권의 주축 가운데 하나였던 민주당이 3국 정상회의와 관련, 다시 일본에 대한 국민의 경계·거부감을 자극하고 나섰다. “일본에 대해서는 막 대해도 된다. 민심은 언제나 ‘반일’이다”라고 여긴다는 뜻이다. 집단안보가 세계 각국의 보편적 생존전략이 된지 오래다. 국가들의 외교안보정책은 역사적 은원(恩怨)이 아니라 현실적 국익과 안전을 바탕으로 수립되고 수행된다. 민주당식의 인식이라면 EU나 NATO는 애초에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민주당의 외교안보에 대한 인식은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는 인상이다. 이념의 고착성이 사고의 유연성을 가로막은 탓일까? 어떤 때는 이념과 인식의 화석(化石)을 대하는 느낌마저 든다. 핵무기와 미사일로 날마다 위협해 대는 북한에는 살가운 미소를 보내면서 정치 안보 경제 문화 등에서 협력하자는 일본은 백안시하는 의식의 근저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원한을 갚는 길은 우리가 그들보다 더 발전하는 것이다. 과거엔 불가능할 것 같던 그 일이 지금은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죽창을 들고 싸워서 얻은 성과가 아니다. 공동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 협력해 온 결과다. 민주당은 한미일 3국의 결속 강화에 딴죽 걸기를 하더라도 정도껏·양심껏 해야 옳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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