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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30년 피고 소주 4병 음주습관…뇌출혈 사망해도 산재 인정 안 돼 [디케의 눈물 126]


입력 2023.10.19 05:03 수정 2023.10.19 05:03        김현경 기자 (khk@dailian.co.kr)

유족 "업무와 사망 인과관계 있다, 근무 중 고온주방과 냉동창고 오갔다" 소송

재판부 "업무과중 없었고 부적절한 건강관리…노동부 질병인정 기준 못 미치고 인과관계 없어"

법조계 "혈관 터지는 이유 복합적, 일정한 산재 기준 만들어…업무시간, 업무부담 요인 증명 중요"

"과로 인한 업무상 질병 승인율 현저히 낮아…회사에서 업무했던 기록들 모두 모아놓는게 좋아"

ⓒ게티이미지뱅크

근무 중 뇌출혈로 사망했더라도 업무와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면 산업재해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혈관이 터지는 이유는 복합적이고 개인의 건강상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일정한 산재 기준을 만들고 있다"며 "업무시간을 체크하고 업무부담 요인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뇌출혈로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비만·고혈압·당뇨병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는 데다 적절한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업무로 인한 과로 내지 스트레스와 뇌출혈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흡연력이 30년에 이르고 한달에 한번 음주할 때 소주 4병 이상을 마시는 음주 습관 등 적절한 건강관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조리부에서 8년간 일한 A씨는 2020년 7월 4일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유족은 넉달 뒤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결과에 따라 거부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근무 시간 중 1000도가 넘는 고온의 주방과 식자재가 있는 냉동창고를 오가며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회사 권유로 휴일에도 학원에 다니며 기능장 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사망과 업무 사이의 인과 관계가 있어 보상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의 업무가 동종 업무 종사자의 통상 업무보다 부담이 과중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업무 환경과 관련해선, 주방이 1000도에 달하는 고온에 상시로 노출되는 환경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조리 기능장 시험 준비는 회사가 자기 계발을 지원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판단했다.


뇌출혈 발병 전 A씨의 1주 업무시간은 37시간 50분이었고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은 34시간 16분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A씨의 업무시간이 주 52∼60시간에 미치지 못하고, 급격히 업무가 증가했다고도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고용노동부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에 따라 만성과로로 인정을 받기 위해선 쓰러지기 직전 12주간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을 넘겨야 한다. 52시간만 넘는 경우엔 소음 상시 노출이나 열악한 작업환경 같은 가중요인이 있어야 한다. 과로사 직전 일주일간 근무시간이 평소보다 30% 증가한 경우엔 급성과로로 승인받을 수 있다.


ⓒ뉴시스

법조계 전문가들은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업무시간 기준에 맞는지, 또한 업무부담 요인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 위원을 역임한 안치현 한국노사관계진흥원 대표노무사는 "업무시간만 보고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인 게 시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며 "근로계약서상 시간이 아닌 실제 근무시간 동안의 차량 출차 기록, 지문 인식 출퇴근 기록, 재택근무 시 노트북 로그인 온오프 기록, 회사 전사자원관리(ERP) 접속 기록, 구글 동선 위치추적 같은 전반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 노무사는 특히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강조하고 "과로나 스트레스가 심혈계에 영향을 준다는 의학적 논문, 과학적 근거가 나와 있지만, 근본적으로 혈관이 터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라서 얼마나 부담이 있어야 병이 생기는지는 개인적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며 "이 때문에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이에 부합하는 사람에 인정을 해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겸 법무법인 두율 변호사 역시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과로를 측정하는 게 썩 쉬운 게 아니라, 주로 사건 발생 전 근로시간 길이로 판단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대해 어떤 식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입장내는가에 따라 판단이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무상 과로는 보통 뇌출혈 같은 뇌질환이나 심근경색, 심정지 같은 심혈관계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심적·육체적 부담이 커지면 관상동맥에 여러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가중 요인들을 갖고 판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과로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상 질병 승인율 30%대로 다른 업무상 질병과 비교해 현저히 낮다. 실제 근로복지공단의 직종별 뇌심혈관계질병 과로사 승인현황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산재신청은 총 2012건인데 반해 승인이 난 건수는 784건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의 38.9%다. 같은 기간 총 신청건수 41만6510 중 37만7119건이 승인되면서 90%를 넘긴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전문가들은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 승인율 수치가 낮은 것에 대해 증거 부족을 원인으로 꼽으며 기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산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김위정 법무법인 마중 부대표변호사는 "사안이나 질병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적어도 회사에서 업무했던 기록을 모두 모아놓는게 좋다"며 "보통 회사에선 근로자가 쓰러지거나 병에 걸리게 됐을 때 협조도 잘 안해주고, 산재 신청이 어렵도록 막아 놓는게 다반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기본적으로 업무가 상당히 과로했다고 입증하는 건 원고에 주어져서 평소 얼마나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부담을 받았는지 증거를 수집하면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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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기자 (kh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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