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지사, 17일 경기도 국정감사서 김혜경 법카 유용 의혹 증폭시키는 발언
상세한 수치까지 직접 말해...사실상 이재명과 선긋기?
민주당, 당혹스러움 넘어 경악 "실수가 아니라 의도 된 발언으로 봐야"
경기도 해명 자료 "김동연 지사 발언은 작년 4월 취임 전에 끝난 감사 결과 말한 것 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7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아내 김혜경씨의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을 증폭시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민주당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논란이 불거지자 경기도 측은 해명자료를 내고 "김동연 지사의 발언은 작년 4월 취임 전에 끝난 감사 결과를 말할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19일 조선일보 등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지사는 경기도 국감에서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취임 이후 법인 카드 사용에 대해 자체 감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감사를 하고 수사 의뢰했다”고 답했다. 정 의원이 김혜경씨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법인 카드 감사’라고만 했는데도, 김 지사는 김씨 사건을 상정하고 '수사 의뢰'까지 답변한 것이다.
이어 '감사 결과 (부정 사용은) 얼마나 나왔나'라는 질문에 김 지사는 “감사 결과 최소 61건에서 최대 100건까지 사적 사용이 의심된다”며 “그래서 업무상 횡령·배임으로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감사는 제가 취임하기 전 이미 다 이뤄졌다”고도 했다.
김 지사의 이런 발언에 민주당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경악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을 처음 폭로한 제보자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국민의힘을 막아서는 등 의혹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같은 당 소속인 김 지사가 의혹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는 모범답안을 놔두고 직접 숫자까지 언급한 것은 분명히 김 지사의 의도된 발언"이라며 "김 지사가 이재명 대표와 확실하게 선을 긋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당 내에서는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김 지사가 전임자였던 이 대표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생긴 불편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혜경씨의 법인 카드 유용 의혹은, 이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아내 김씨가 비서 배모씨를 시켜 초밥·샌드위치·과일 등 사적 물품을 관사나 자택으로 사 오게 하면서 경기도 법인 카드를 썼다는 것이다. 배씨는 김씨가 당 관련 인사들과 한 오찬 비용을 경기도 법인 카드로 결제한 혐의 등으로 작년 8월 1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김씨에 대한 수사는 진행 중이다.
논란이 커지자 경기도는 18일 해명 자료를 내고, 김 지사의 발언은 작년 4월 취임 전에 끝난 감사 결과를 말한 것 뿐이라고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 지사가 국감에서 말한 내용은 경기도 홈페이지에 이미 다 공개돼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감사보고서에는 사건 당사자 이름은 물론 유용 건수나 금액 등 모든 정보가 비공개 처리돼 있었다. 김 지사가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사적 사용 61~100건’도 알 수 없었던 내용인 셈이다.
민주당 안에선 이번 논란 배경에 작년 지방선거 이후 계속된 김 지사와 이 대표의 껄끄러운 관계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 지사는 작년 6월 당선 뒤 인수위 때부터 이 대표 측이 추천한 인사들을 쓰지 않았고 정책 면에서도 이 대표가 추진한 것들을 중지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등 ‘이재명 지우기’를 진행했다. 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김 지사가 이 대표를 경쟁자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긴 것 아니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