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유죄 선고에 총선 출마로 응수
정치의 장에서 사라져버린 도덕성
이재명 깃발 아래 모이는 게 소명?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오는 13일 부산에 가서 총선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하루 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평산마을 자택을 예방한다는데 이에 앞서 김해 봉하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할 계획이라고 한다(동아일보, 2. 11).
지난 8일,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 받은 그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사과 대신 상고 의지와 함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 길이 ‘총선 출마’일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거나 완화하고 검찰(나아가 법원까지)을 비웃을 수 있는 방안으로 이만한 게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일 터이다.
예전엔 지성을 조금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후안무치의 전형으로 여겼을 법한 행위다. 그런데 지금은 특히 좌파정치세력 안에서는 사회적 상식과 상궤에 대한 용기 있는 되치기쯤으로 인식되는 인상이 짙다. 이런 황당한 인식의 연원 가운데 하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이었다고 여겨진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 전 대통령이 장례식 사흘째였던 2008년 6월 1일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조국, 유죄 선고에 총선 출마로 응수
“당시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은 정 비서관이 받았다는 3억원과 100만 달러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다. 하지만 이후에 돈의 성격이라든지 점점 사실관계를 아시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도덕적인 책임을 통절하게 느끼게 됐다. 그 돈이 그냥 빚 갚는 데 쓰인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집 사는 데 쓰인 것을 알고 충격이 굉장히 크셨다. 그런데도 홈페이지에는 수사를 정치적 음모로 보고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호하는 글들이 올라오니까 ‘그건 아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셨다”(한겨레, 08. 6. 2).
이 말만으로도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정치적 타살’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시의 야당 정치인들 중 많은 수가 그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선동이 거세게 일었다. 언제부터인가는 좌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도 이 시나리오가 스며들고 부풀어 올랐다.
정작 자살로 등 떠밀려 간 사람은 따로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11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을 겨냥해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이제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에서 그 회견을 지켜보던 남 전 사장은 그길로 한강에 가서 투신했다. 이런 걸 “자살 당했다”고 하는 거다.
좌파 정치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기소로 검찰의 효용은 다했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해야 할 정치적·심리적 의무감이 있었다. 그는 검찰에 대한 복수심에 이끌리는 인상을 줬다. 그가 내건 ‘검찰 개혁’은 ‘수사권 박탈’의 다른 이름이었다. 호응이 없지 않았지만 너무 성급했다. 게다가 방법이 교활하고 비열했다. 소신과 과단성, 그리고 리더십이 남다른 윤석열 검사에게 선봉장 역할을 맡기려 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문 전 대통령과 조 전 장관은 대전 고검 검사이던 윤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으로, 다시 검찰총장으로 숨 가쁘게 승진시켰다. 그 갚음으로라도 윤 총장이 검찰을 잘 설득해서 수사권 조정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오산이었다. ‘윤석열 검찰’은 조국 씨와 그 일가의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문 전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조 씨 감싸기가 상황을 악화시켰고 민주당 정권엔 이미 낙조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정치의 장에서 사라져버린 도덕성
민주당은 정권까지 넘어가자 절대다수 의석을 앞세워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기도했다. 온갖 꼼수를 동원해 마침내 검찰을 제도적으로 무력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다. 졸속으로 만들었던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동안 검찰은 비리 부패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착착 진행시켰다. 야당이 된 데다 전력이 떳떳하지 못한 이재명 전 대선후보가 당 대표직에 오름으로써 민주당은 검찰과의 전면전으로 끌려들어갔다.
이 분위기에 조국 씨도 편승했다. 그는 문 정부 때부터 검찰의 악마화를 이끌었었다. 그 후임이었던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재임 전 기간을 통해 ‘윤석열 검찰’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그 와중에 장관 직할의 검사대가 대두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을 산하에 둔 법무장관이 검찰 죽이기 선봉에 선 것이다. 훗날 ‘한국 정치의 기이한 풍속도’ 상위에 랭크될 개연성이 아주 높은 장면이라고 하겠다.
조 씨와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어 있는 민주당 소속의 아주 많은 정치인들(탈당한 의원들 포함)은 하나같이 ‘정치수사’ ‘야당탄압’ ‘검사독재’의 구호를 외치며 수사에 저항하고 있다. 이 대표의 모범을 따라서! 7개 사건 10개의 혐의로 재판을 받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는 검찰에 대한 비난 조롱을 멈추지 않았고, 고의적인 수사 지연 및 방해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송철호 전 울산시장, 황운하 전 대전경찰청장, 최강욱 전 의원 등은 기소를 당한 상태에서 21대 총선 출마를 강행했다. 공천 결정 이후에 기소되긴 했지만 무소속 윤미향 의원도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서 국회의원직을 차지했다. 이들 가운데 최 전 의원만 형의 확정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을 뿐 황·윤 두 의원은 1심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으로 건재하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봉투 사건’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던 무소속 윤관석 의원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구치소에서도 국회의원 세비는 꼬박꼬박 받고 있다. 국회가 범법자들의 소도(蘇塗: 삼한시대 천신에 제사지내던 성역)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 전엔 모두가 무죄다. 선거 전에 기소되어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대법원까지 거치는 동안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다. 범죄 혐의자들이 이 좋은 ‘무죄 추정’의 권리를 왜 포기하려 하겠는가. 민주당 이 대표부터, 전과가 있거나 전력이 의심스러운 사람일수록 더 총선 출마에 매달리기 마련이다.
이재명 깃발 아래 모이는 게 소명?
이러니 별별 해괴한 풍속도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전과를 가진데다 법정에 불려나가기에 바쁜 민주당 이 대표가 22대 총선에 출마할 뿐만 아니라 당의 공천 작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공천 심사와 관련, 자신은 셀프 사면하면서 다른 사람은 엄정히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물론 친명은 우대한다는 원칙하에!). 그의 뻔뻔 정치 문하생들이 왜 안 따르겠는가.
민주당뿐만 아니라 좌파진영 안에 이런 기류가 급속히 퍼져나가 지금은 만연된 상태로 보인다. 조국 씨가 출마를 결심한 이유가 달리 있을까. 그게 사법리스크를 줄이거나 해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 대표를 롤 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지만 총선 전에 대법원 판결이 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재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더 이상 주눅들 것도 없는 처지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주당 공관위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이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의 탄생에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문 정권 유력자들의 출마포기를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조 씨와 함께 재수사의 대상이 된 그는 총선 출마와 국회진입 말고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달리 없다고 여길 법하다.
이들로 인해 한국 정치에서 ‘도덕적 의무’는 퇴색되고 말았다. 디오게네스 흉내를 내며 대낮에 등불을 들고 ‘도덕성’을 찾아 나서야 할 모양이다. 특히 민주당 주변에서 주요 정치덕목으로 ‘도덕’을 말하는 사람은 아예 없어 보인다. 이 대표에게 찍히기 싫으면, 적어도 이 조건에 관한한 입을 닫는 게 정치적 생존조건일 테니까. 이 대표, 조 씨, 임 씨 등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는 무엇일까?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가치는? 이 당의 주변에서는 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더 궁금해진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려는 겁니까? 여러분의 국가관은 무엇입니까? 어떤 가치를 추구합니까? 여러분이 국민을 인도해가고자 하는 미래의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아마 이들에게서 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검찰과의 전쟁에 너무 바쁘기 때문에!
이 대표는 9일 페이스북에 “친명(친이재명), 비명(비이재명) 나누는 것은 소명을 외면하는 죄악”이라며 당내 단합과 통합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내 깃발 아래 다 모이라”는 압박일 수도 있다. 이재명 식 정치가 주는 느낌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