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11년만에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
"오만·불통·무책임만 있는 불통령"
"국민대표 만날 용기조차 없는 쫄보"
이재명 1심 선고 앞두고 지탄 강화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예산안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국무총리를 통한 대독을 택했다. 현직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국무총리가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것은 11년 만에 처음이다.
참석이 곧 대통령의 책무임을 강조해왔던 민주당과 야권은 앞다퉈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현실화 여부가 코 앞이라는 점에서 '시정연설 불참'을 내건 지탄은 오는 7일로 예고된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기자회견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정연설은 국회 새해 예산안 심의에 앞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예산안 내용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접 설명하며 국회의 협조를 구하는 자리다.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야권의 도움도 필수적인 만큼,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온 게 관례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3년(2014년도 예산안)부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대통령이 매해 직접 연설했고, 윤 대통령도 2022년과 지난해에 시정연설에 나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내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다.
대통령실의 '불참 결정'은 어느 정도 예고됐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할 예정이냐"라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국무총리가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련 특검법 등이 추진되는 등 야당의 정부를 향한 정치적 공세가 거칠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 직접 참석할 필요가 있냐는 기류도 전해졌다.
지난해 시정연설 당시 윤 대통령이 야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협조를 부탁했는데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손만 잡는 '노룩 악수'를 행했던 점이나,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시정연설 뒤 윤 대통령 면전에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독설한 전례도 불참 추측에 힘을 실었다.
결국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시정연설 대독에 나서면서 야권 내 비판 목소리가 격렬히 쏟아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 총리의 시정연설 시작에 앞서 국회 본회의장 로텐더홀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앞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 시정연설 불참을 두고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을 이렇게 운영하겠다는 것을 입법기관이자 예산심사 권한을 가진 국회에 보고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당연하다"며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이 책임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민주화 이후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 한마디로 오만·불통·무책임만 있는 불통령"이라며, 과거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윤 대통령을 '장님 무사'라고 칭했던 표현을 빌려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 '장님 무사'는 그 칼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포기했다. 국정도 총리에게 대신 시킬 작정인가"라고 되물으며 "대통령은 포기해도 우리(민주당)는 의석에서 국정을 지키겠다"고 장담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 윤 대통령을 향해 "앞서 국회 개원식에도 오지 않았다"며 "국민의 대표자를 만날 용기조차 없는 쫄보"라고 노골적으로 비꼬았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라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 수장으로서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힘을 실었다.
우 의장은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국회에 대한 존중이다. 국민의 인식이 그렇다"며 "불가피한 사유 없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마다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국민도 크게 실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생 위기가 국민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국민이 편안해질 수 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며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고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야권의 '불통'을 매개로 한 윤 대통령 공격이 이달 내내 수위를 올려가며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야권의 최대주주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오는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 오는 25일에는 최대 분수령으로 여겨지는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어 대(對)정부 극한 투쟁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시정연설에 불참한 대신 7일 대국민담화 겸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정국 현안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하기로 했지만, 야권은 '불통'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야당의 공세가 집중되고 국민의 의구심이 누적되고 있는 '여사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어떻게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쇄신안을 제시해 민심을 어루만지느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 어떤 내용이 담기든 야당은 '불통'이었다고 공격할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수순"이라면서도 "판단은 결국 국민께서 하시는 것이다. 야당의 공격대로 '역시 불통이었구나'라고 한탄하실지, 아니면 '이것은 불통까지는 아닌데 야당이 너무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든 것은 이제 윤 대통령에게 달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