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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ICK] 감독 하정우, 세 번째 연출작으로 달라진 것들 “관객의 속도가 중요”


입력 2025.04.07 19:07 수정 2025.04.07 19:0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로비’ 감독 하정우 ⓒ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영화가 나왔다. 누구 한 명의 원맨쇼가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인, 관객에게 인물별 서사를 상상하게 하는, 감독 하정우가 연출한 ‘로비’이다.


‘도둑들’(감독 최동훈, 2012)년 이후 오랜만에 ‘멀티캐스팅’이라는 수식어가 제격인 영화, 감독이 배우를 겸하는 영화인이어서 가능했던 걸까. 지난 2일 서울 도산대로 쇼박스 회의실에서 진행된 영화 ‘로비’(감독 하정우, 제작 워크하우스컴퍼니‧필름모멘텀, 배급 ㈜쇼박스) 감독 겸 주연배우 하정우 인터뷰에서 사건과 상황을 발생시키고 이야기의 수레를 굴리는 캐릭터들을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골프 라운딩에 나가면 가식이 되게 많아요. 골프 시작 전 아침 식사에서 모두가 똑같이 하는 말이 있는데요. 몸이 좋지 않다, 감기로 근육통이 왔다, 공이 잘 맞을지 모르겠다, 밑밥을 엄청 깔아요. 치기 시작하면 그건 다 밑밥이었고(웃음), 각자의 플레이를 하기 시작하는 거죠.”


“평상시에 인간적으로 좋은, 인품 좋은 사람이 골프장에서는 ‘어, 저런 면모가 있었나’ 싶은 모습이 나와요. 예를 들어 온순한 분이 거친 말투를 쓰고 거칠던 분이 소녀처럼 골프 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러한 이면들을 마주하면서, 동반자들의 캐릭터를 느끼면서 ‘코미디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떤 사람 샷 실수를 했다, 겉으로는 걱정하지만 속으로는 신나 하고, 누군가 잘 치면 ‘나이스샷~’ 외치지만 ‘제발 죽기를, 공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너무나 표면적으로 드러나요. 비즈니스 관계에서, 회사 다닐 때는 잘 숨기고 숨겨지는데 골프장에서는 스멀스멀 잘 나오더라고요. 너무나 흥미로운 지점이었어요.”


“골프를 어렸을 때부터 쳤다면 문화에 적응돼 쇼크로 오지 않았을 텐데, 나이 들어서 골프장 들어섰을 때 뭐랄까 독특함? 쇼크까지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한 거죠. 골프장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다, 생각한 게 ‘로비’의 시작이었습니다.”


배우 하정우이 표현한 인물 윤창욱 ⓒ

질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어졌다. 국토미래산업부 조향숙 장관(강말금 분)과 이혼소송 중인 남편이자 전문성을 갖춘 관료로 4조원이 소요되는 국책 프로젝트 ‘전기차 무선 주차장’을 담당할 기업을 결정하는 실세로 등장하는 최우현 실장(김의성 분). 공정성을 추구하는 인물이면서도 프로 골퍼 진세빈(강해림 분)에게는 ‘구토유발자’인 최 실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것도 제 실 경험에서 나왔습니다. 비단 골프를 떠나서, 여러 매체나 주변 사람이나 ‘최악의 사람’을 떠올리며 그들에게서 뽑은 요소들을 ‘짬뽕시켜’ 구상했어요. 정말 재수가 없고 보기 싫은 거는 본인은 무슨 행동인지 모르면서 하는 거잖아요. 최 실장 스스로는 나이스 하고 세련됐다고 ‘매력적 아저씨’라 생각하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너무 불편하고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죠. 빌런 아닌 빌런을 만들려고 어렸을 때부터 만난 주변의 ‘개저씨’들. 물론 저도 아저씨고 개저씨지만요, 어떻게 하면 진 프로를 당황케 할 것인가, 허구에 MSG(인공감미료) 몇 스푼 쳐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왜 김의성이었어야 하는가를 묻자) 실제론 그런 분이 아니라서, 그 반대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또, 배우로서는 어떻게 하면 재수 없고 더럽고 비호감일지 아시는 것 같아서(웃음) 누구보다 잘할 것이다, 영화적으로 표현하면 잘할 것이다, 판단해서… 믿고 캐릭터 전체를 맡겼어요. 대사와 상황만 세팅해 드렸지, 그 외의 모든 것은 의성이 형이 표현한 겁니다.”


2025년 감독 행보를 이어가는 하정우 ⓒ

영화 ‘로비’는 감독 하정우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 이후 10년 만에 감독으로서 작품에 임했다. 색과 향은 다르지만 ‘코미디영화’라는 결은 같다.


폭풍이라는 자연재해를 만나 활주로를 코앞에 두고 착륙하지 못하고 제주-일본 하네다-김포-인천으로 공중을 헤매는 여객기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극 ‘롤러코스터’. 제 새끼인 줄 알고 뻐꾸기 알을 정성스레 품어온 오목눈이가 둥지마저 빼앗기듯 애지중지 키운 장남 일락(남다름 분)이가 남의 자식임을 알게 된 허삼관(하정우 분)이 겪게 되는 파란만장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감동 코미디극 ‘허삼관’.


연구만 알던 스타트업 기업 대표 윤창욱(하정우 분)이 인생의 주요 변곡점마다 뒤통수를 치고 태클을 거는 손광우(박병은 분)의 더러운 수작에 맞서 ‘골프 접대’라는 로비에 나서며 벌어지는 해프닝과 깨달음의 순간을 그린 블랙코미디 ‘로비’. 감독 하정우는 두 번째 연출작에서 10년이 걸리게 된 이유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했다.


“계속해서 생각과 시도는 있었어요. (예를 들어) 2018년, 앙드레 김을 주인공으로 한 ‘서울 타임즈’를 시나리오 3고까지 집필했어요. 3고를 보며 딱 그런 느낌, ‘이게 진짜 잘할 수 있는 작품인가, 알고 있는 작품인가’ 고민이 들었어요. 100% 딱, 답을 못하겠더라고요. 확실한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보자! 참다가 ‘로비’를 만났어요. 2021년, 2022년부터 마음속으로 슬슬 그려 넣기 시작했죠. 2022년 골프를 처음 해보면서 이 배경과 이 환경과 사람들을 한 데 묶어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 강하게 밀려왔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밭에서 자갈을 고르고 잡초를 뽑으며 옥토를 만들 듯, 10년의 세월은 감독 하정우의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다. 혹자는 순해졌다, 혹자는 조금 느려졌다고 말하는데 보다 정확히는 세 번째 연출작에 이르러 ‘감독 하정우의 결’이 선명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유머는 타이밍과 템포라고 생각해요. ‘롤러코스터’ 당시에는 김우일 편집기사와 같이 편집했어요. 제 템포를 올곧이 다 쓰고 반영했어요. 그때의 제 기준으로는 그게 맞았고, 최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서, 최근에도 다시 보면서 ‘너무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허삼관’ 때부터 했던 생각인데, 물론 ‘허삼관’은 애초 그런(빠른) 템포 영화도 아니었지만, 내 속도가 아니라 ‘관객의 속도’를 중시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로비’ 때는 김상범 편집감독께 ‘전반적 템포를 조절해 달라’ 말씀드렸어요. 저는 촬영현장에서부터 가편집을 보고 (스토리와 장면을) 다 알고 있으니까 템포들이 빨라져요, 빨라도 빠르게 느껴지지 않아요. 해서, 이번엔 현장편집본을 만들어 놓기는 했으되 편집실에는 어떠한 멘트도 하지 않았어요. 편집감독께 모든 소스 드리고 ‘만들어 주십시오!’ 했어요. 그렇게 편집감독님의 편집본이 나오고, 최종적으로 저와 편집감독님과 스태프와 함께 그것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정답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편집본의 속도가 맞는 것인지 다시 현장편집본을 보며 이게 맞는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관객 여러분께서 보고 계신 게 여러 의견을 모아 베스트로 조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독 하정우와 10인의 배우들이 표현한 캐릭터 10 ⓒ사진=이상 ㈜쇼박스

욕설이 줄고, 내기하듯 속사포를 쏟아내는 캐릭터도 줄었지만 블랙코미디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골계미는 깊어졌고 웃음의 포인트들은 명확해졌다. 무엇보다 배우를 겸하는 감독의 장점, 캐릭터의 특징과 개성이 선명해졌고 명배우들이 펼치는 캐릭터 플레이는 잘 차려진 잔칫상 같아 흡족하고 흥겨운 파티처럼 즐겁다.


김의성, 강말금, 박병은, 이동휘, 곽선영, 차주영, 최시원, 강해림 등 함께한 배우들은 입을 모아 감독 하정우의 연출방식에 ‘좋아요’를 표했다. 믿고 맡겨주는 자율성, 자신도 미처 몰랐던 가능성과 새 얼굴을 끌어 올려준 연출력, 온화한 리더십, 촬영이 없어도 가고 싶었던 즐거운 현장을 감독 하정우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한 풍경이 영화 포스터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치 감독 하정우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캐릭터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뛰어노는 것 같은 장면. 보통 감독은 영화 포스터에 들어가지 않는데 ‘이례적으로’ 감독이 포스터의 바탕에 자리 잡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문득 나 홀로 상상에 미소 짓는다, 감독 하정우의 세계관 속 인물들이 다 함께 하나의 영화에서 만나면 어떨까.


감독 하정우는 이번 영화 ‘로비’를 통해 “연출 노선이 확정됐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진 그가 펼쳐낸 코미디의 결, 연내 개봉 예정인 네 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이 벌써 보고 싶다. 우선 촉망되는 감독, 하정우의 머릿속을 스크린으로 옮긴 ‘로비’를 즐길 타이밍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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