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선마다 바뀐 현충원 참배 대상… 0.73%p 패배 후 박태준 묘역까지

김은지 기자 (kimej@dailian.co.kr)

입력 2025.04.29 04:10  수정 2025.04.29 11:36

19대 경선 후보 때 이승만·박정희 외면해

20대땐 "많은 생각하게 됐고 책임감 많아…"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묘역 참배

21대에는 대상 더 확대…"국민통합 완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21대 대선 후보가 2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대 민주당 대선 경선 승리 후 첫 공식일정으로 현충원 참배를 택했다. 이 후보는 경선을 포함 3번의 대선 정국 동안 현충원 참배 대상에 변화를 가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민주당 내에서 논란이 컸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 참배에 또 다시 나선 것 외에, 참배 대상을 박태준 전 국무총리까지로 확대했다.


이같은 변화는 지난 20대 대선 본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불과 0.73%p 차이로 패배한 것, 그렇게 당선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등이 주효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외연 확장으로 '큰 격차'로 승리해야만 정권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다. 이 후보가 중도층을 겨냥해 '실용주의'를 거듭 외치고, '중도보수 정당'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28일 국립서울현충원 방문을 시작으로 대선후보로서의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 이 후보는 기자들을 만나 "나도 한때 그랬지만, 돌아가신 분들을 두고 정쟁에 빠진 때가 있었던 것 같다"며 "망인들의 평판, 망인들의 문제는 역사가들이나 시민사회에 맡겨도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정치는 현실이고 민생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의 가장 큰 몫"이라며 "가급적이면 지나간 얘기, 이념이나 진영 등은 잠깐 곁으로 미뤄두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다 가능하다. 공과가 다 있는 것"이라며 "너무 한쪽에 몰입하지 말고 양 측면을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라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참배하는 것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발 우려에는 "물론 당내나 시민사회에서 다른 의견이 많을 것이고, 나의 행보에 의구심을 가지거나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역사적 평가에는 양 극단이 존재한다"며 "나도 마찬가지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만 갖는 것은 전혀 아니다. 양민 학살이라든지 또는 민주주의 파괴라든지 장기 독재라든지 이런 어두운 면이 분명히 있고 또 한편으로 보면 근대화의 공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 묻어두자 이런 이야기는 아니다"며 "평가는 평가대로 하고 공과는 공과대로 평가해 보되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국민통합이고 국민의 에너지를 색깔과 차이를 넘어 다 한데 모아서 희망적인 미래 세계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경제·안보·안전 등 모든 문제에서 위기이기 때문에 국민의 힘을 최대한 하나로 모아야 한다. 소위 말하는 통합의 필요성과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라며 "좌우 통합이든, 보수와 진보의 통합이든, 양측이 똑같아질 수는 없겠지만 차이는 차이대로 (인정하더라도)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찾아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지금 가장 큰 과제는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좌우나 진보·보수가 있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 후보는 전직 대통령들 묘역 참배 후 포스코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민자당 시절 민정계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박태준 전 국무총리 묘역도 참배했다. 박 전 총리는'DJP연합'에 합류한 이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다.


나아가 이 후보는 상임선대위원장에 보수 책사로 분류되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1939년생으로 전두환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비서관,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뒤 환경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이던 때에는 이회창 총재의 참모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이 후보에는 평소 조언과 고언을 해준 것이 인연이 됐다.


이 후보는 현충원 참배 이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나는 민주당의 후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온 국민의 후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배경을 언급하면서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며 "세상이 힘들고 국민들도 지쳤다. 갈가리 찢어지지 않도록 통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21대 대선 후보(왼쪽 네번째)가 28일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를 방문해 곽노정 CEO(왼쪽 세 번째) 등 관계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후보의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는 19대~20대~21대 대선을 거치며 변화를 보여왔다. 19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외면했는데, 돌연 20대 대선에서는 입장이 달라졌다. 대통령 목표를 앞두고 '국민 대표'라는 공적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이번 21대 대선을 앞두고는 박태준 전 국무총리 묘역까지 참배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 후보는 2017년 19대 대선에 도전했지만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었다. 지난 2017년 1월 성남시장 신분이자 대선 경선 후보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던 이 후보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참배하지 않는 등 선별적 참배를 했다.


그는 이와 관련 기자들을 만나 그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했던 그야말로 독재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한들 광주학살을 자행한 그를 추모할 수 없는 것처럼 친일매국 세력의 아버지,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가 19대 대선 경선에서는 내부 진보 지지층을 상대로 어필을 하는데 그쳤다면, 20대에는 '본선' 후보가 되면서 표를 호소해야 하는 유권자층이 넓어졌다.


이에 이 후보는 2022년 2월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모두 참배하고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내가 5년 전 경선 하면서 '내 양심상 독재자와 한강철교 다리 끊고 도주한 국민을 버린 대통령을 참배하기 어렵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면서도 "5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나도 더 많은 생각하게 됐고, 사회적 역할도 책임감도 많이 바뀌고 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특정 개인의 선호보다는 국민 입장에서, 국가 입장에서 어떤 게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해야 된다고 지금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21대 대선의 경우 이 후보가 대선 3수에 나선 데다, 사법리스크들이 여전히 완전 불식된 게 아닌 상황이다. 이에 지난 대선 패배를 거울로 '실용주의' '산업' 등을 강조하며 전 계층을 포섭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표출되는 모양새다.


이날 이 후보가 묘역을 참배한 박 전 총리는 우리나라 산업화와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도 평가받는데, 추가 참배는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의 제안으로 갑자기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 후보는 이날 오후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이 후보는 하이닉스에서는 'K 반도체'를 주제로 반도체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국민의 민생을 책임지는 우리 정치도 경제 성장과 발전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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