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코인 공습③]트럼프, CBDC 아닌 스테이블코인에 꽂힌 이유

황지현 기자 (yellowpaper@dailian.co.kr)

입력 2025.05.26 06:00  수정 2025.05.26 06:00

美 부채 규모 37조 달러 수준…CBDC로는 국채 수요 한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美 국채 주요 수요자

가상자산 시장 선점해 산업 주도까지 노림수…法 뒷받침도

가상자산 거래소 내 '코인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한 스테이블코인이 이제 거래소 밖으로 나와 실생활로 확장됐다. 특히 달러와 연동된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투자·송금 수단으로 자리잡아가며 기존 금융 질서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이 우리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잡게 될지 주목된다. 스테이블코인의 개념부터 활용, 정책 쟁점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미국의 국가 부채 금액을 보여주는 시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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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질서가 빠르게 디지털로 재편되는 가운데 미국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보다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활성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단순한 기술 경쟁 차원이 아닌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유지를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예상된다.


미국, 부채 위기·채권 시장 이중고
지난 23일 기준 미국 연방 정부의 부채는 36조2138억 달러(약 4경9765조원)로 집계됐다. 미국 재무부 홈페이지 캡처

미국은 최근 전례 없는 부채 규모에 직면해 있다.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는 사실상 꽉 찬 상태이며, 기존에 빌린 돈의 상환 시기가 도래하면서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미국 연방 정부 부채는 36조2138억 달러(약 4경9765조원)로 집계됐다.


2023년 8월, 신용평가사 Fitch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최근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과도한 국가채무를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로 한 단계 강등했다. 그 여파로 중장기 국채의 투자 매력은 하락했고, 재무부는 초단기 국채를 중심으로 발행 전략을 변경했다.


그러나 단기 국채는 시장의 현금 유동성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제한적이다. 미국은 통화량을 줄이기(유동성 흡수) 위해 국채를 팔고 싶지만, 시장이 반응하지 않으면 수단이 없다. 이 상황에서 의외의 해법으로 등장한 게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져
테터가 발행한 스테이블코인 'USDT' ⓒ연합뉴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한 디지털 자산으로, 발행 시 달러나 미국 국채를 준비금으로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중 80% 이상이 달러 기반인 만큼, 그 확산은 곧 달러에 대한 글로벌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많이 발행될수록 미국 국채나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이는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의 매수 기반을 넓혀주고, 궁극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채권 정책에도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낸다.


특히 테더(Tether)와 서클(Circle) 같은 주요 발행사들은 수백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를 담보로 보유하고 있다. 테더는 2025년 기준 약 1200억 달러(약 166조원), 서클은 약 150억 달러(약 21조원) 상당의 국채를 보유 중이다. 이는 단일 민간 주체로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올해 3월 말 한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1258억 달러·174조원) 보다 많다. 웬만한 국가보다 더 큰 규모의 미국 채권 고객인 셈이다.


국채 수요 원하는 美, CBDC는 '낙제'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BDC 개발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합뉴스

CBDC는 정부 주도로 발행되는 만큼 자본 통제력은 강하지만, 확산 속도와 글로벌 사용성에서는 한계가 있다. 이미 연방의 막대한 부채를 감당해야 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주도의 디지털 달러가 달러 수요를 회복시킬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고, 정부가 화폐 흐름을 통제한다는 CBDC의 기본 구조 역시 미국 시장과는 맞지 않다.


반면 민간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시장에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고, 신흥국 이체·결제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에 따라 달러 접근성이 여의치 않은 개발도상국에도 미국 국채를 담보로 하는 달러를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또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하는 경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가상자산 시장 주도권까지 확보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은 직접 발행을 우선으로 하는 CBDC보다는 민간, 비 달러 사용 국가의 구매력까지 활용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선택했다. 최근 달러는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채 수요를 다른 데서 끌어오겠다는 발상으로 풀이된다. 달러를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 사용성이 좋아질 수록 그 담보인 미국 국채 수요도 오르게 되고, 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달러 패권의 수명도 다소 늘어날 수 있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특정 기관이 CBDC 발행 또는 홍보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CBDC 발행을 금지하는 법안(HR 1919)이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 찬성 27표, 반대 22표로 통과되기도 했다.


美 의회서 제도적 뒷받침까지
지난 3월 3일(현지시각) 데이비드 삭스 가상자산·인공지능(AI) 책임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 상원은 20일(이하 현지시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최초의 연방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 법(GENIUS Act)'를 66대 32의 표결로 통과시켰다 . 토론 종결 투표에서 60표 이상을 획득하면 필리버스터 없이 곧바로 법안 통과를 위한 표결을 할 수 있다. 상원 전체 회의 통과를 위한 핵심 관문을 넘은 것이다. 전체 회의에서는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공화당 내에서는 늦어도 미국 현충일(26일) 이전에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명확한 규제 기준을 제시하고,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디지털 자산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1대 1 준비금 보유를 의무화하고, 월별 준비금 공개 및 연간 회계 감사 등을 요구한다.


또한, 자금세탁방지(AML) 및 제재 준수 프로그램을 포함한 법 집행 요건을 강화하며, 비준수 외국 발행자의 미국 시장 접근을 제한한다. 이러한 규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미국 달러의 디지털 통화로서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지니어스 법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미국이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1일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인공지능(AI) 책임자 데이비드 삭스는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2000억 달러(약 267조원)를 넘는다. 단지 관련 규제가 없었을 뿐"이라며 "법적 명확성과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면 하룻밤 새 수조 달러의 미 국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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