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알아서 복종하지 말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6.11 07:15  수정 2025.06.11 07:15

범법자는 처벌받게 하는 게 정의다

대통령이 법 가지고 공기놀이하나

제도 못 지키면 민주주의 무너진다

ⓒ 데일리안DB

“세상에, 이런 일이 21세기 민주국가에서도 일어날 수 있구나!”


예감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놀랐다. 지금도 그 충격의 도는 줄어들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범법자는 처벌받게 하는 게 정의다

도무지 믿기지 않지만 이건 현실이다. 그렇다고 다른 특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야 한다는 생각은 선거전에도 후에도 한 바가 없다. 그렇지만 이재명 후보(당시)만은 아닐 수 있기를 희망했다. 워낙 ‘대세’라고들 하는 분위기에서 그의 당선은 기정사실로 되고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대중매체들이 ‘이재명 당선인’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대서특필하는 상황을 인지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법을 어긴 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법치주의의 요구다.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법이 달리 적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건 법치의 제1원칙이고 국민적 상식이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군주가 법 위의 존재였지만 민주주의는 ‘법 앞의 평등’을 불변의 원칙으로 한다. 대통령이 형사소추나 재판에 있어서 특권과 특혜를 요구한다면 그건 민주주의 파괴행위다. 또 그게 검·경과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이는 민주주의 포기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때부터 이미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추종자들의 충성심도 커졌다. 조직 구성원들은 충성심을 명시적으로 소리 내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을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발적 참여와 충성이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지나친 충성심이 초래할 민심 이반이 아니라 조직으로부터의 배제였다. 민주당 내의 ‘수박’ 색출작업이 이탈 방지에 대단히 효과적인 처방이었을 수 있는 이유가 달리 있었을까.


대통령직을 마지노선 삼아 버티고 있던 국민의힘 정권은 윤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제풀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입법 권력뿐만 아니라 행정 권력까지 이 대통령에게 미리 넘어가 버렸다. 대통령 탄핵 이후 60일 안에 치러질 선거의 결과는 그때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법부까지 그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재판이 5월 15일에서 이달 18일로 미뤄졌다가 지난 9일 아예 무기한 연기가 돼 버렸다. 임기 중에는 재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는 게 서울고등법원의 설명이었다. 그다음 날 그러니까 어제는 대장동 등에 대한 재판도 같은 이유로 그렇게 미뤄졌다.


대법원이 지난 5월 1일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에 대해 파기환송을 한 다음부터 민주당의 사법부 공격과 협박은 공공연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파기환송 찬성 대법관 11명, 수석재판연구관 등 법원 관계자 4명을 상대로 하는 청문회를 강행(대법원 측 모두가 불참했지만)했다.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하고 비법조인의 대법관 진입을 허용하겠다고 압박했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특검·국정조사 카드도 흔들어댔다.

대통령이 법 가지고 공기놀이하나

서울고법, 서울중앙지법의 재판 연기 결정이 이와 무관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까? 나머지 3개의 재판도 같은 절차와 배경 설명을 거쳐 무기한 연기될 게 확실하다. 이 대통령은 이로써 재임 중 형사 법정에 서야 하는 부담, 유죄 판결이 날 때 대통령직 유지에 대한 위협 등에서 완전히 해방되게 됐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만, 대통령은 초법적 신분을 갖는다고 법원이 선언해 준 것이다.


이 대통령 재판은 계속돼야 한다는 응답이 60%를 넘어섰다고 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속속 밝혀졌지만,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시간이 지나면 풍향이 바뀌듯 여론도 바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을 법하다. 이런 여론이 지속된다고 이 대통령의 입장이 바뀔 리도 없다. 어쩌면 이는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당 정권의 최종 목표는 이 대통령의 완전한 면죄와 사법부 장악이 아닐까?


그런데 법을 잘 알아서 법관이 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헌법 제103조)할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무엇에 구애되어 특정인에 대한 재판권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는 걸까?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과 임기 중 형사 재판 면제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84조 1항).


이 조문 어느 대목에 “대통령이 된 자는 그 이전의 모든 죄까지 사하노라”라는 뜻이 내재돼 있는가? 재임 중의 행위가 형사 재판 사유가 되어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뜻의 규정임이 분명한데도 법관이라는 사람들이 확대해석해 주는 까닭은 뭔가? 명확한 구분을 위해 ‘재판’이라 하지 않고 ‘소추’라고 명기한 것을 굳이 재판으로 확대해 주는 것이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적 심판’인가?


대통령은 법 아래 있기로 서약·선서하고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그랬으면 법을 가지고 추종자들과 함께 공기놀이하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법을, 이 대통령 개인을 위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사문서(私文書)로 여기는 것인지 의아하다. 이렇게 재판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퇴임 후의 재판이라고 감당하려 할 것인지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걸 피하는 데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① 영구집권을 꾀하거나, ② 대통령은 재임 중에는 물론, 임기 후에도 모든 형사적 책임(내란 및 외환의 죄를 제외한)을 면하도록 법을 바꾸는 것이다. 당사자로서는 ‘영구집권’이 명쾌하고 부담은 오히려 적은 방법이다. 개헌을 통해 임기 제한 규정을 아예 삭제해 버리면 된다. 그 자신 “중요한 것은 국민의 뜻”이라며 임기 조항 개정의 효과가 자신에게도 미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제도 못 지키면 민주주의 무너진다

설마! 민주주의의 역사가 77년에 이른 나라에서, 정치 민주화(1987년 개헌 이후) 역사가 38년이나 되는 대한민국에서 독재자가 등장하는 일이 가능키나 하냐고 말하려는 사람들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까지 이 대통령의 품 안으로 뛰어드는 형국이지 않은가(조 대법원장 등이 이런 분위기에서 얼마나 ‘사법부 독립’의 기치를 지킬 수 있을까).


“우리는 민주주의의 유산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잘못된 생각이다.……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티머시 스나이더, 폭정, 조행복 역).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의 『폭정』 머리말 한 부분이다. 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권 경쟁에 뛰어들어서 보인 행태들에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래서 ‘20세기로부터 얻은 스무 가지 교훈’을 이 소책자에서 제시했다. 말하자면 민주시민의 행동 강령 같은 것이다.


첫 번째는 ‘미리 복종하지 말라’이다. ‘예측 복종은 정치적 비극’이라고 그는 말한다. 겪어보고 판단한 후에 태도를 정해도 늦지 않을 텐데 미리 알아서 순응하고 복종함으로써 폭정을 초래한 경험을 세계는 공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제도를 보호하라’이다. 제도는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자유민주적 제도의 일각이라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우리가 제도의 도움으로 민주시민일 수 있지만 제도 또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지금 민주당은 입법 폭주를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인상이다. 이들이 이제부터라도 의회민주주의의 본령으로 회귀할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관성은 쉽게 멈춰지는 게 아니다. 다만 당장 급한 불은 껐으니 이 대통령과 새 정권의 이미지 개선에 신경 쓰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법원에서 기일을 연기한 것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한 게 아니고, 우리 법치주의의 불완전성과 무리한 해석의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인식을 고려하면 개정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이를 감안해 새 원내지도부가 판단할 듯하다.”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표가 10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이재명식 정치가 어떤 궤적을 그리게 될지 짐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걱정스럽다. 정치가 끝나고 통치가 시작될 것 같아서.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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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수괴 윤석렬의 국가전복시도와 북한과의 전쟁도발을 도모할 때는 유유자적 관망하다 검찰정권에 온갖 성립하지 않는 범죄혐의점으로 3년간 조사받고 결국 무혐의된 이대통령이 집권하니 걱정스럽다?? 언론이라면 언론의 역할을 하던가...권력의 해바라기가 되고싶어 발버둥치는 들판의 코스모스만도 못하다.
    2025.06.1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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