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폐허된 통일부 재건"…4대 과제로 본 李정부 대북정책 방향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5.07.26 06:05  수정 2025.07.26 07:40

통일부 복원·역할 회복 시대적 과제로 규정

남북 간 연락 채널 복구가 가장 시급한 과제

사회적 대화 기구 출범 예고…국회 협력 강조

北 항해 진달래꽃 100년 공동행사 제안하기도

정동영 신임 통일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관계는 완전히 무너졌고, 통일부는 왜곡됐다"


20년 만에 다시 통일부 수장을 맡은 정동영 장관의 취임 일성은 뚜렷한 현실 인식과 강한 문제의식으로 시작됐다.


정 장관은 25일 취임사에서 통일부의 복원과 역할 회복을 시대적 과제로 규정하며 이를 위한 정책 대전환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취임사는 감성적인 회고로 시작했지만, 구체적인 통일정책 과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방향성을 제시했다.


정 장관이 언급한 통일부의 과제는 크게 △남북관계 복원 △평화경제 실현 △국민주권 기반 대북정책 △통일부 조직 정상화 등 네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강대강'에서 '선대선' 전환…평화가 밥이고 경제

정 장관은 취임 후 첫 일정으로 판문점 방문을 언급하며 "직통전화는 벨이 울려도 받지 않았다. 먹통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를 분단과 단절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며, 남북 간 연락 채널 복구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정 장관은 "해묵은 냉전의 언어를 거부하고, 적대와 대결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편에 서 달라"며 국민의 동참도 호소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등으로 조성됐던 협력 분위기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 속에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정 장관은 북한을 향해 "강대강의 시간은 끝내고, 선대선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취임식 전 취재진과 만나 "하루빨리 (남북) 연락 채널을 복구하고 대화를 복원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남북 간의 일체의 대화가 중단된 지 6년, 너무나 긴 세월이었다"고 밝혔다.


통일부 명칭 변경 논란에 대해선 "뭐든지 우선순위가 있는데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유의 북진이 아닌 평화의 확장으로, 적대와 대결이 아닌 평화와 협력으로 가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며 "멈춰 서버린 1단계 화해 협력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과 북측의 전파방해 송출이 동시에 중단된 사례를 '선대선의 조치'로 해석하며 신뢰 회복을 위한 점진적 조치들을 주고받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동영 신임 통일부 장관이 25일 취임식을 앞두고 판문점을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통일부

'평화가 밥이다'라는 언급은 정 장관 특유의 평화경제 철학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개성공단 재개 등 기존 남북경협의 복원을 넘어, '한반도 인공지능(AI) 모델'과 같은 첨단 협력 모델을 언급하며 미래지향적 경제 협력을 구상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과거 대북정책에서 경제 논리는 '교류의 수단'이었다면, 정 장관은 평화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기반으로서의 경제를 강조했다.


국제사회와의 협력도 언급하며, 기존 제재 환경에서도 실용적 모델을 발굴하겠다는 구상도 덧붙였다.


오는 10월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미북 정상의 만남 계기로 추진하자는 아이디에 관해 정 장관은 "너무 촉박하다"며 "불과 3개월 뒤인데 남과 북이 미동도 않고 있어 우선 대화부터 시동하는 것이 급선무다. 차근차근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 24일 APEC 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정할지에 관해 "논의 중인 사항이 없다"며 "APEC 정상회의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APEC 회원국이 아니지만 최근 관례에 따르면 의장국이 주도해 비회원을 초청해 공식대화를 개최할 수 있다.


정 정관은 지난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황, 북미 관계 단절, 김 위원장의 다자 외교무대 기피 등으로 초청한다해도 김 위원장이 경주 APEC에 참석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미미하다.

국민 참여형 대북정책…'비정상 조직' 회복 선언

정 장관은 '국민주권'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는 "통일부는 가장 시민친화적이고 시민참여적인 부처로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통일 이슈에 대한 국민 참여 플랫폼인 '사회적 대화 기구'의 출범을 예고했고, 국회와의 초당적 협력도 강조했다. 대북정책에서 시민사회의 여론과 역할을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지금의 통일부는 비정상"이라며 구조조정으로 인해 축소된 조직 기능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교류협력국과 남북회담본부 폐지를 문제 삼으며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정상화하고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되돌려 놓는 것이 먼저 할 일"이라며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만나 감축하기 전에 (정원을) 회복시켜달라는 요청을 이미 해 놓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행안부 등으로 이관하는 조직 개편안에 대해선 "탈북민에 대한 정부의 서비스도, 탈북민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윤석열 정부에서 통폐합됐던 남북교류·협력과 회담 업무 조직은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통일부를 '평화를 재건하는 평화부,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부, 통합을 선도하는 통합부'로 재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통일부의 위상 회복과 역할 확대를 천명했다.


정동영 신임 통일부 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정 장관은 후보자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빼는 변경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한반도부' 등을 대안으로 거론한 바 있다.


정 장관은 과거에도 "인내가 대북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20년 전 침묵 속에서 차관급 회담을 성사시켰던 경험을 되짚으며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엉킨 실타래를 풀되, 푸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옷 한 벌을 지어 입자"며 "이것은 5000년 역사의 명령이고, 현재의 의지이고 미래를 후대들에게 떠넘기지 않아야 할 도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올해 12월 26일은 시인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펴낸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라며 "이런 경사를 남과 북이 함께 누려야 되지 않겠냐. 진달래꽃 100년 공동행사를 같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냐"고 밝혔다.


무너진 남북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 장관은 "벽돌 한 장 한 장 들고 남북관계의 집을 다시 지어가자"며 의지를 다졌다.


한편 정 장관은 2004년 제31대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20년 만에 다시 장관직에 올랐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