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뉴 패러다임] 엄경영 "'남·원·정' 같은 새 인물로 소득·정치 양극화 해결해야"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입력 2025.08.04 06:00  수정 2025.08.04 09:28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데일리안 인터뷰

"보수, 분열·이탈로 위기…가치들도 빼앗겨"

"8·22 전대 중요…혁신·대여투쟁력 보여야"

"양극화란 시대정신 새 패러다임으로 풀어야"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이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대한민국 보수 정치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4·4 탄핵 인용 그리고 6·3 대선 패배를 거치면서 일각에선 보수라는 우리나라 정치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단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보수 정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리고 살아나려면 어떤 패러다임으로 시대정신을 충족시켜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데일리안은 1999~2008년 국회 보좌관으로, 2009~2011년 이명박(MB) 정권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현실정치를 경험했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디오피니언 부소장을 거쳐 시대정신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엄경영 소장을 만났다.


보수 정치의 위기가 분열과 지지층의 이탈에서 부터 시작됐다고 진단한 엄경영 소장은 보수가 현 시대의 가장 큰 위기로 떠오른 소득·정치 양극화를 풀어내는 해법을 내놓는 방식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의미가 퇴색된 이념과 정파 싸움보단 민생과 정치에 집중해 새로운 인물과 가치를 생산해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보수가 살아날 길이라는 분석이다.


다음은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우리나라 보수의 위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가?

"보수 정치가 지리멸렬하게 된데는 일단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첫째는 분열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집권하면서부터 시작된 보수의 분열이다. 둘째는 분열과도 연결돼 있는 것인데 지지층의 이탈이다. 2030세대가 국민의힘에서 이탈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이 나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국민의힘의 지지기반이었던 60대가 반반으로 갈라졌다. 1980년 계엄을 경험한 세대인 60대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보수에서 이탈하게 만든 것이다. 이미 가속화된 중도층 이탈에 기존 지지층의 이탈까지, 결국 보수는 분열과 이탈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분열의 가장 큰 이유는 친윤의 기득권 집착이다. 계엄 선포로 탄핵이 됐고 대선이 치러졌다. 그런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이었음에도 김문수 국민의힘 전 대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전 대선 후보가 얻은 득표율을 합치면 49.5%나 되면서 사실상 이념이나 진영 대치 국면에선 밀리지 않았단 게 증명된 셈이다.


문제는 '한덕수 대망론'과 같은 생뚱맞은 기획을 한 친윤들이다. 그러면서 시간부족과 내부 분열이 일어나게 됐고 결국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고 본다.


친윤들의 개입 없이 대선 후보 경선을 내버려뒀다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나왔을 수도 있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후보가 됐거나, 한동훈 전 대표가 후보가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이준석 전 후보와의 단일화도 가능했을 것이고,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윤들의 기득권이 선거를 망친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의 혁신 또는 개혁 세력들의 분열 역시 위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된다고 본다. 과거 국민의힘의 전신을 보면, 한나라당 당시 보수 개혁 세력들의 연대가 있었고, 이들이 당을 구했다. 대표적인게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다. 이들 같은 혁신 소장파의 영입으로 과거 보수정당은 대안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 내 개혁·혁신 세력들을 보면 힘을 모으려고 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TK·PK를 중심으로 한 보수 지지층이 리더에게 원하는 게 세 가지 있다. 책임감·주류의식·안정감이 그것이다.


과거 보수 정당에선 혁신·개혁 세력이 연대를 통해서 구주류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책임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줬는데, 지금 혁신파들은 중구난방하면서 당원들에게 그런 걸 전혀 못 보여주고 있다. 혁신파 연대조차 안 되는데 극우를 때리고 해봤자 국민들 눈에는 그냥 또 다른 분열로밖에 안 보이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이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우리나라 보수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사실 세계적으로 보면 오히려 보수 정치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제 정세를 보더라도 보수적인 가치인 국방·안보·경제가 강조되고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국제적인 보수의 가치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계엄의 영향이 컸지만 이번 대선에 이재명 대통령이 이길 수 있었던 건 보수가 잃은 3가지 가치를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노동에 대한 몰입이다. 둘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이고, 셋째는 자영업자 대책이다. 이 세 가지가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는 핵심적인 원인이 됐다고 본다. 이 대통령은 사실상 노동자·약자·자영업자 대책에 과몰입 상태인데 세 가지를 챙기다보니까 이 대통령 본인 스스로가 중도화되고, 탈(脫)이념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대선 기간 동안 "우리가 중도보수에 가깝다"는 말까지 꺼낸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는 보수의 가치다. 노동자 대책은 조금 아니라고 해도 자영업자에게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얼마나 높았나. 하지만 윤 정부의 실패와 대선 패배 이후 보수 정치는 이 세 가지에서 너무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보수는 이 세 가지를 다 잃어버렸다고 보는게 맞을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나라 보수 정당은 이재명 대통령한테 중도보수의 가치를 일부 빼앗겼다. 예전엔 보수는 경제를 살리는 능력과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능력이라도 있단 평가를 받아왔지만 지금은 그런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의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이 오히려 태극기를 달고 다니고 '진짜 대한민국'이란 타이틀을 거는 전략을 갖고 나오면서 보수는 '애국'이란 가치마저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선점 당하고 말았다. 또 국민의힘은 지역적으론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세대적으론 70대에게만 의존하고 있다. 중도 진영 전체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이들을 되찾아올 능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회생은 어렵다."


우리나라 보수를 어디서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8·22 전당대회가 중요하다.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가 모르겠지만 안철수 의원 같은 소위 혁신파가 당대표가 되면, 보수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당대표는 사실상 대구·경북이 정하는 구조다. 지난 2021년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것도, 물론 2030 남성의 강력한 지지가 있긴 했지만, 사실상 대구·경북이 추인·승인을 해줘서 된 것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지금 나와있는 혁신 후보들은 2030이나 중도층이 유입되는 이 전 대표와 같은 진지 구축이 전혀 안 돼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혹시라도 대구·경북에서 이번 만큼은 비상상황이니까 안 되겠다고 마음을 먹어 다른 선택을 해준다면 국민의힘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검 조사가 아마 연말까지 연장된 만큼 올해는 좀 힘든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전당대회를 잘 치르게 되면 그 극복의 시기를 당길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전당대회에 나온 소위 혁신파인 조경태·안철수 의원들을 보면 앞서 말한 보수 지지층이 원하는 세 가지 가치인 책임감·주류의식·안정감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좀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이번 전당대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슈는 '대여 투쟁력'이다. 사실 대여 투쟁력은 모든 야당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재명 폭주를 가만히 놔두면 안 된다는 당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단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이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최근 불거지고 있는 극우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한길 씨 문제로 국민의힘에 극우 프레임이 씌워졋고, 국민의힘 전체가 극우화 돼있다고 보여지고 있는 건 분명히 안 좋은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국민의힘이 극우화되고 있다거나, 극우 일부가 당의 주류를 형성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현상을 이분법적이나 단절적으로 보는 건 현실을 부정하는게 돼버리는 것이다.


지난 계엄과 탄핵 국면은 사실상 5대 5의 진영 싸움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의 절반 정도 20~30% 정도가 소위 극우 세력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극우 세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쫓아내자는 판단은 현실적이지 않다. 극우와의 공존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아무리 자르고 싶어도, 실제로 잘라내면 살아남을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전당대회가 더 중요하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극우의 목소리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통합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는 당대표가 올라와야 한다. 극우의 목소리 점차 낮춰서 온건·합리적인 보수가 당의 주류가 되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게 국민의힘이 살아날 길이라고 본다."


지금 시대가 보수 정치와 정당에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지금 보수 정치가 해결해야 할 두 가지의 양극화가 있다. 하나는 '소득 양극화'다.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소득 양극화를 방치했다. 자영업자·청년실업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놨다.


이에 국민의힘은 일단 소득과 부의 양극화를 보수의 관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 결국 이건 민생의 문제다. 나는 오세훈 시장이 내건 '약자와의 동행'이 꽤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류의 가치와 슬로건은 지금 이 대통령이 과몰입해 선점하고 있는 앞선 세 가지 가치와 맞닿은 것이다. 결국 이런 것들로 이 대통령과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강국으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고 있지만 그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민의힘이 보수적인 시각에서 부와 소득의 양극화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아, 이런 문제에 손을 뗀 정당이 아니며 오히려 대안을 갖고 있는 정당이란 걸 보여줘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정치 양극화'다. 국민들이 투표로 명확하게 보여줬다. TK·PK 지역구 의원들은 천년만년 의원직을 유지하고, 수도권이나 충청과 같은 중원 지역 의원들은 매번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도권 중심의 소장파를 키워내야 한다.


과거 이회창 전 총재가 참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 중 하나가 앞서 말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을 키워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경원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권영진 의원 등 소장파들도 전부 그때 들어와서 당이 키워낸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부 혁신적이고 수도권서 활약했단 것이다.


이들을 영입한 이 전 총재는 자신이 직접 집권하는덴 실패했지만,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부의 집권 기틀을 만들었다. 그때도 TK·PK 기득권이 있었지만 수도권 혁신파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에 적어도 당시 한나라당 내에선 정치 양극화란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국민의힘 내 정치 양극화가 얼마나 심하느냐. TK·PK는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고, 청년들을 끌어들일 가치조차 잃으면서 수도권 수복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하루 빨리 새 인물들을 찾아서 당의 미래를 만들고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당내 의원들도 협조할 건 협조하고, 대승적인 판단을 할 땐 해줘야 한다. 이 두 양극화 문제가 우리나라 보수 정치가 살아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 결국 민생 문제인 소득 양극화, 정무적인 문제인 정치 양극화란 시대정신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풀어내는 것이 우리나라 보수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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