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시진핑·푸틴, 내달 '중국 열병식'서 만난다…다자 외교무대 첫 등장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5.08.29 04:10  수정 2025.08.29 04:10

김정은, 시진핑 초청으로 6년만에 파격 방중

안방서 '反서방' 中…북중러 3각관계 주목

베일 벗는 '金외교'…APEC 트럼프 만남 관심

시진핑 중국 주석·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자칭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기념행사 열병식에 참석할 예정인 가운데 이번 행사에 세계 권위주의 국가지도자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 위원장의 중국 열병식 참석은 다자 외교무대 '데뷔'로 반(反) 서방 연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反서방 세력 결집 나서는 中…외교 보폭 '성큼'

조선중앙통신은 28일 김 위원장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습근평(시진핑) 동지의 초청에 따라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승리 80돐 기념행사에 참석하시기 위하여 곧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시게 된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중국 측도 김 위원장을 포함한 외국 국가 원수와 정부 수뇌 26명이 행사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중국 측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베트남과 라오스·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몽골·파키스탄·네팔·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벨라루스·이란 등의 정상이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한국의 우원식 국회의장 등 각국 고위급도 참석자 명단에 올랐다.


참석자 명단에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거나 인권·언론 자유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국가 지도자들이 대거 포함돼 반(反) 서방 세력 결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전승절 열병식 군사 퍼레이드 예행연습 ⓒ연합뉴스

특히 25년간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러우 전쟁을 계기로 중국과 전략적 밀착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소련 해체 직후인 1994년부터 32년째 집권 중인 알렉산데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데 장기 집권 아래 러시아의 침공을 지원 중이다. 이슬람 신정일치(이슬람 성직자 통치론) 체제 국가인 이란도 최고지도자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과의 안보 협력을 지속해 왔다.


옛 소련권 국가 정상들도 이번 행사에 참석한다. 천연가스 매장 세계 4위 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은 세습 독재 등으로 악명 높은 국가로 불리는데 천연가스 등을 앞세워 중국과의 에너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 못지않게 현재 장기 집권 중인 타지키스탄도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이 30년 넘게 집권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은 2001년 중국 주도로 창설된 안보·경제 협력체 '상하이 협력기구(SCO)'의 창립 멤버로 이번 만남에서 강도 높은 단결과 협력이 예상된다.


SCO는 2001년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6개국으로 출범한 정치·경제·안보 분야 다자 협력체다. 이후 인도·파키스탄·이란·벨라루스 등 반서방 성향 국가들이 참여해 현재 10개 정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 외교부는 SCO에 대해 "새로운 유형의 국제 관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세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시 주석도 지난 5월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 중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SCO의 방향성에 대해 "다른 회원국들과 함께 SCO의 국제적 영향력을 지속해서 강화하고, 다극적 세계 질서 구축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네팔과 파키스탄·몽골·베트남 등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시아 국가 정상들도 참석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외교 보폭을 넓히고 있다.

북중러 정상 어깨 나란히…APEC 때 트럼프 만날까

중국은 내달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연설과 함께 자국산 신형·현역 무기를 과시하는 열병식이 진행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행사에서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위치에서 함께 톈안먼 광장 성루에 설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이 중국 방문이 확정되면 2019년 이후 6년 만이다.


다자외교 행사에 참석한 전례가 없는 김 위원장이 중국 전승절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러우 전쟁을 계기로 병력과 무기를 지원한 러시아와 군사동맹 수준의 조약을 맺으며 결탁을 과시해 온 북한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북중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현재까지 다자 무대에 선 적이 없어 이번 데뷔 무대가 외교가에선 주목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열병식 등을 비롯해 다자 외교무대에 많이 참석했으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아들인 김 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통일부에 따르면 김일석 주석은 여러 번 다자무대에 참석했다. 세부적으로 △중국 정부수립 5·10주년 기념행사(1954·1959) △소련 10월 혁명 40주년 기념행사(1957) △소련 공산당 제21·22차 대회(1959·1961) △인도네시아 반둥회의 10주년 기념행사(1965) 등에 참석했다.


김정일은 10·20대 때 반둥회의 10주년 기념행사 등에 아버지인 김일석 주석을 따라가기도 했으나 집권 후로는 다자 행사를 기피했다. 김 위원장 역시 2018년 3월 방중 이래 싱가포르·베트남·러시아를 방문했지만 모두 양자관계 차원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는 유일 영도체계를 강조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1인자인 최고지도자가 주인공이어야 하기 때문에 다자 무대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대러 관계에 집중해왔던 김 위원장이 이번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미국과의 경쟁 구도를 일으키며 화려하게 데뷔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미일 협력의 강화 흐름에 북중러 협력으로 맞불을 놓는 모양새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중러 삼각 구도가 부각되면서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북 관계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한다"며 "우리는 남북 간 대화와 협력에 열려 있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러우 종전에 대한 협상이 시작된 점을 고려해 북한도 러우 전쟁 이후에 대비할 필요가 발생했다"면서 "러우 전쟁 이후에도 북러간 협력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겠지만, 북한으로서는 지금까지의 '특수'가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북중 관계의 복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행사에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만남은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규정한 만큼 우리 측과의 대화를 일체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측에서 사전에 우리 측과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조치할 가능성이 크다.


정 부소장은 "북한에서 핵 보유가 김정은의 최대 업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북한에게 '비핵화'를 요구하는 한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을 계기로 미북 정상 만남이 추진될 가능성도 주목된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대통령실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북미 대화의) 공간이나 방식, 시기 등을 확정할 단계는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당장은 아니지만 대미,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력 제고 가능이 판단된다"며 "트럼프 대통령 자극을 통해 의제 관철 유리 국면 조성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 대통령 방미성공에 자극을 받아 전승절 참석계기가 된 것 같다"며 "김 위원장도 고립을 풀고 공개외교활동 시동을 건 만큼 이 움직임이 경주 (APEC) 참석 혹은 북미회담으로 연결되기 위한 우리 주도의 주변국 평화외교 전개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김정은 열차'로 불리는 북한 최고지도자 전용 1호 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방중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가 운항 추적기 등을 통해 항로가 쉽게 노출되고 외부 공격에 취약한 점을 고려해 이동 시간이 길지만 신변 안전 관리 등에서 유리한 열차를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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