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여만에 전용열차 타고 다자외교 무대 데뷔
中열병식서 '시진핑-푸틴-김정은' 나란히 설듯
북중·북러 정상회담 예상…북중러 회담 가능성↓
美노린 신형 ICBM 개발 공식화…'핵 지위' 강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고위급 수행원들을 태운 전용열차가 중국 베이징역에 도착해 김 위원장 집권 후 5번째 방중 일정에 돌입했다.
배우자 리설주 여사와 김여정 당 부부장, 딸 주애가 동행했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이들이 탄 전용열차는 2일 오후 5시 무렵 중국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베이징역에 안착했다.
앞서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는 전날 오후 평양에서 출발해 이날 새벽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압록강 철교를 이용해 국경을 건너 선양역을 지나쳐 베이징역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위원장 일행은 중국이 초대한 귀빈이 묵는 공식 영빈관인 시내 댜오위타이(조어대·釣魚台)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앞서 3차례의 베이징 방문 당시 모두 댜오위타이에서 숙박했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이용한 것은 북한 지도자의 전통적인 방중 수단인 열차를 통해 양국 간 우의를 보여주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중 간 관계 강화와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열병식' 등의 환대와 의전 등을 고려해 수행단 규모가 커졌고, 이에 전용기 '참매 1호'보다는 열차를 이동 수단으로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앞서 중국을 4회 방문했는데 2018년 3월 첫 방중 때와 2019년 1월 네 번째 방문길에는 열차로 이동했다. 2018년 5월과 6월 방문 때는 전용기 '참매1호'를 탔다.
다만 2018년 이후 7년째 공개적으로 '참매1호'를 이용한 적이 없다. '참매 1호'가 노후해 김 위원장이 이용을 꺼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탑승한 전용 열차 '태양호'도 눈길을 끌었다. 방탄 기능과 박격포 등 무장을 고루 갖춘 하나의 '요새'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지만 일반 열차보다 무겁고 북한 내 선로 상태가 좋지 않아 빠르게 달려도 60㎞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용 열차가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된 것은 지난해 7월과 8월 김 위원장이 평안북도 수해 현장을 찾았을 때가 가장 최근이다.
당시 김정은은 열차 한 칸 문을 양옆으로 완전히 개방한 채 무대를 만들어 연설한 바 있다. 문 뒤에 세워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한 대가 포착돼 열차 내부의 엄청난 규모를 짐작하게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어대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이튿날 오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병식 기념행사를 지켜볼 것으로 관측된다. 관영 중국중앙(CC)TV와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이날 전체 기념행사는 현지시간으로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부터 진행된다.
열병식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내외가 김 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외빈을 영접한 뒤 10시께부터 개막 선언과 시 주석 연설 등 본격적인 열병 행사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위원장은 열병식 참석을 계기로 다자외교 데뷔전을 치르는 데 대형 행사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각국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상국가' 이미지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반(反)서방 구도의 한 축을 담당해 외교적 고립 상태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방중을 놓고 미북정상회담 전 북중관계를 잘 관리해 미국을 자극하겠다는 분석도 있어 이번 북중 정상 회동 결과가 올해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김 위원장은 3일에 시진핑 주석과 회동 후 4일에 북한으로 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북중러 사회주의 연대 과시와 중국의 대서방 세력 과시, 북한으로서는 북중관계 개선의 수혜 등을 전망했다.
이어 김 위원장의 방문에 대해 이른바 '경중안러(경제는 중국, 안보는 러시아)' 전략에 담겨 있다며 "노동당 창건 80주년(10월 10일)과 제9차 노동당대회(내년 초)를 앞두고 내부적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중 정상은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인민대회당은 시진핑 주석이 다른 나라 정상들과 공식적으로 만날 때 이용하는 장소다. 양국 간 입장을 조율하고 북·중 관계 개선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3일 열병식에서 시진핑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에 서서 '삼각 연대'를 재현할 것"이라며 "북중 관계 복원을 통한 대외 운신 폭을 확대하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견인해 체제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방중은 최선희 외무상과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 현송월 당 부부장 등이 수행하고 있고 리설주 여사와 김여정 당 부부장이 동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김 위원장의 딸 주애의 동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번에 같이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북중·북러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북중러 정상회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국정원은 판단했다.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차 방중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김 위원장의 조우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낮게 평가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방중 직전 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연구소를 방문해 개발 계획을 공개하며 핵·미사일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방문에 대해 보도하며 "탄소섬유 복합재료를 리용한 신형 고체발동기의 최대 추진력은 1960kN(킬로뉴턴)으로서 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9'형 계렬들과 다음세대 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20'형에 리용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ICBM 시험발사는 지난해 10월 31일 '화성-19형'이 마지막이었다. '화성-19형'은 북한이 보유한 ICBM 중 가장 큰 기종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방중 전 이를 뛰어넘는 성능의 '화성-20형'을 개발하고 있음을 공개한 것이다.
기존의 화성-18형도 사거리 1만5000㎞ 이상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화성-20형을 개발할 경우 사거리를 확장하거나 탄두 중량을 늘려 파괴력을 키우는 능력을 갖출 것으로 관측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대추진력 1960kN이라고 구체적 수치를 처음으로 밝혔는데, 이 추진력은 지구 표면에서 중력가속도(9.8 m/s²)를 기준으로 하면, 약 200t의 물체를 공중에 띄울 수 있는 힘에 해당한다"며 "보잉 747 여객기 한 대 엔진(250~280kN) 정도의 약 7~8개 분량, 스페이스X 팰컨9 로켓 1단 엔진(Merlin 1D, 약 845 kN) 2개 이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군사전문기자 출신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이 백두산 엔진(액체)보다 강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고체엔진 탑재 화성-20 신형 ICBM 개발계획을 공개한 것은 북중러 정상이 만나는 중국 열병식 참가를 앞두고 미국과 대결 연대에 참가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탄도미사일 제작을 위한 탄소섬유개발 기술을 완성함으로써 미사일 개발과 생산 능력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탄소섬유를 제작하기 위한 원료와 탄소함유율 98%인 노즐 제작을 위한 탄소섬유는 러시아로 부터 직접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이번 미사일연구소 방문은 1일 전용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떠나기 직전에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그는 지난달 31일에도 새로 조업한 중요 군수기업소를 방문해 미사일 자동화 생산공정을 점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11년 집권 이후 중국 열병식 참석을 계기로 다자외교 데뷔전을 치르기 때문에 연일 국방 현장을 현지 지도한 것은 미국을 사정권으로 두는 플랫폼을 갖춘 '핵보유국' 지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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