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사과에 담긴 기후위기 해법 [新농사직썰-혁신의 씨앗➆]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10.15 09:22  수정 2025.10.15 09:22

노란 사과 ‘골든볼’ 대한민국 사과 지도를 바꾸다

착색 불필요·여름 수확 가능

기후변화 대응 전략 품종으로 주목

30년간 44% 줄어든 대구·경북 사과밭 희망으로 ‘우뚝’

경북 군위군에 자리 잡은 사과연구센터는 7만여평의 부지에서 기후변화 등에 대응하는 국내 사과 품종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미래 농업의 희망을 싹 틀이는 현장. 농촌진흥청 연구소의 혁신적인 발자취를 따라간다. 농촌진흥청 연구소 곳곳에 숨겨진 혁신의 씨앗들을 찾아, 대한민국 농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기획 시리즈 ‘혁신의 씨앗’을 시작한다. 신농사직썰 시즌4인 혁신의 씨앗은 기초 연구부터 실용화 단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자들의 열정과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농업 발전을 위한 주요 사업들을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데일리안에서는 ‘혁신의 씨앗’ 시리즈를 통해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뜨거운 한여름, 지난 8월 5일 오전 8시 경북 군위군의 한 사과밭에 황금빛 설렘이 영글고 있었다. 신품종 여름사과 ‘골든볼’의 첫 수확 현장이었다.


김진열 군위군수가 직접 참석한 이날 행사는 지난 2023년 봄부터 시작된 군위군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의 협력이 결실을 맺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91년 문 연 대한민국 사과 연구 중심지


경북 군위군 소보면 의흥리에 자리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센터는 대한민국 사과 산업 발전의 중심축이다. 센터는 1991년 대구사과연구소로 신설돼 2008년 사과시험장, 2015년 사과연구소, 2023년 사과연구센터로 개칭됐다.


이 센터는 사과 품종육성 및 육종기술개발, 유전자원 보존, 재배법 개선 및 생산비 절감 연구를 핵심 임무로 수행하고 있다. 또 수요 변화에 대응한 사과 신품종 개발과 환경변화 대응 재배 관리 기술 연구를 통해 현장 농가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한다.


특히 기계화 생력형 안전생산 기술 연구와 기후변화 영향평가 및 대응 연구는 고령화되는 농촌 현실과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필수적인 과제로 부상했다.


사과연구센터는 연구실 안의 성과를 농가 현장으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맞춤형 품종 보급과 재배기술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과 산업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이동혁 사과연구센터장은 “사과연구센터에서 기후변화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사과 품종 개발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생식용으로 총 31품종을 개발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사과 산업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스마트사과원 개발 연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과연구센터 저온저장고에는 센터에서 연구개발 중인 다양한 신품종을 볼 수 있다. 이 중 가장 최적화된 품종이 선택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기후변화 대응, 지역 맞춤형 전략


골든볼 프로젝트는 농촌진흥청의 큰 그림 속에서 탄생했다. 기후 온난화로 사과 주요 생산지였던 대구·경북지역의 사과 재배 면적은 1998년 경북은 2만2241ha에서 2024년 1만9208ha 줄었다. 같은 기간 강원은 427ha에서 1748ha로 늘었다. 강원도의 경우 재배 면적이 409.4% 증가한 것이다.


농진청은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해 2023년 9월 ‘지역 맞춤형 사과 품종’ 전략을 발표했다. 강원도 홍천에는 당도 15.2Brix(브릭스)의 붉은 사과 ‘컬러플’ 3ha 생산단지를, 대구 군위에는 당도 14.8Brix의 노란 여름 사과 ‘골든볼’ 5ha 전문 생산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군위군이 위도가 낮아 붉은 사과의 착색 경쟁력이 약한 지역이라는 약점을 파악해 착색이 필요 없는 골든볼로 강점을 극대화시킨 전략이었다.


농진청은 2006년부터 지역 맞춤 품종을 선정하고 전문 생산단지 조성에 힘써왔다. 전북 장수의 ‘홍로’는 2000년대 초반 조성 이후 600ha로 확대됐다.


또 경북 문경의 ‘감홍’은 2009년 74ha에서 2022년 400ha로 성장했다. 경북 김천의 ‘황옥’도 2023년 5.4ha에서 재배되며 ‘작지만 맛있는 사과’로 자리매김했다. 군위 골든볼 프로젝트는 이러한 성공 사례의 연장선이었다.


특히 사과연구센터가 개발한 품종 가운데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12품종은 전체 사과 재배면적의 22.7%인 7567ha에서 재배되고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사과의 출하를 알리는 ‘썸머프린스’와 ‘썸머킹’, 노란 여름 사과 ‘골든볼’부터 시작해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아리원’, 추석에 열리는 ‘아리수’와 ‘이지플’, 9월 하순 열리는 ‘감로’, 가을이 한창인 시기에 그림같이 빨간색으로 선보이는 ‘컬러플’과 ‘만홍’까지, 계절마다 다채로운 품종들이 생산 농가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조중생종 품종인 ‘홍로’는 추석에 수확하는 품종이다. 우리나라 대표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아리원, 이지플, 감로는 모두 ‘홍로’와 ‘감홍’이 모·부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이 품종들은 탄저병에 약한 ‘홍로’에 비해 비교적 탄저병에 강하고,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뤄 단맛만 강한 ‘홍로’ 사과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품종이다.


아울러 ‘감홍’은 재배가 까다롭지만 맛있는 사과로 알려지면서 문경에서 지역특화 품종으로 육성해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 국내 품종의 모태가 된 골든딜리셔스. 대부분 이 품종을 시작으로 품종 개발이 이뤄졌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지자체와 연구기관의 결실…골든볼 첫 수확


올해 5ha 규모에 1만주의 골든볼 묘목이 식재된 군위군의 사과밭에서 8월 5일 첫 수확이 이뤄졌다. 평균 수확시기인 8월 10일을 앞두고 진행된 이날 행사는 2년여의 준비 과정이 가시적 성과로 나타난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저장성이 우수한 황색 조생종 품종인 골든볼은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맛과 고급스러운 풍미를 갖췄다. 상온에서도 10일 이상 유통이 가능한 장점을 지녔다.


군위군은 2026년까지 재배 면적을 20ha로 확대해 4만주를 식재할 계획이다. 오는 2030년까지는 100ha 규모로 골든볼 재배 면적을 늘린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웠다.


착색이 필요 없어 경영비와 노동비를 절감할 수 있는 골든볼의 특성은 기후변화로 저위도 적색 계통 사과의 품질경쟁력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사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꼽힌다. 최근에는 관상용 사과나무에도 관심이 높다. 사과연구센터에서는 이런 추세를 반영해 관상용 사과나무 육종도 병행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군위군의 골든볼 사업은 단순한 신품종 도입을 넘어 연구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농협, 농업인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 협력 모델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2024년 전국 농업인대학 운영평가에서 군위군농업기술센터가 최우수 기관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2025년에는 농진청 기술보급 블렌딩 협력모델 공모 사업에 선정돼 1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며 사업 기반을 더욱 공고히 했다.


지난해 12월 6일 군위군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골든볼 사과 재배 시범단지 조성 워크숍’에는 80여 명의 농업인, 전문가, 유통 관계자들이 참석해 재배기술, 품질 관리 방안, 유통 과정 등을 논의했다.


농진청은 골든볼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대경사과원예농협(구 대구경북능금농협)을 통해 재배 물량을 안정적으로 유통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 자리는 기술 교류와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됐다.


당시 김진열 군위군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저위도 적색 계통 사과의 품질경쟁력 하락으로 농민들의 어려움이 많은 때에, 착색이 필요 없는 신품종 여름사과 골든볼의 성공적인 재배단지 조성으로 군위군이 국내 제일 골든볼 생산지로서의 명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대구사과의 잃어버린 명성을 군위에서 찾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박종택 사과연구센터 연구사가 골든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미래를 여는 사과연구센터의 상생 모델


경북 군위군 소보면 사과연구센터에서 시작된 골든볼 프로젝트는 연구기관의 혁신 기술이 지역 현장에 뿌리내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들의 끈질긴 품종 개발 노력,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정책 의지, 농업인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하나로 모여 만들어낸 성과다.


이 센터장은 “사과는 우리나라 과일 재배 농가의 16.8%를 차지하고 재배 면적도 가장 넓은 작목이지만, 현재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2100년에는 재배적지가 강원도 이동될 것으로 예측된다.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보다 촘촘한 보급 체계를 만들고 유통시장도 확보해 다양한 품종을 원하는 소비자 수요에 부응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8월 첫 수확을 시작으로 군위군의 골든볼 사과밭은 점점 더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황금빛 사과 하나하나에는 기후위기 시대 대한민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혁신의 씨앗이 담겨 있다.


사과연구센터와 군위군의 협력 모델은 다른 지역, 다른 작물로 확산될 가능성을 품은 채 대구사과의 명성을 되찾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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