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쟁 촉발시킬 '두 국가론'
대통령실은 거리두기…"언급 피하겠다"
전문가 "DY, 관계 정체에 답답한 듯"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개별 국가로 인정하는 '두 국가론'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번엔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자, 야권에선 헌법과 배치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는 대통령실이 정 장관 개인 의견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면서, 대북 정책에 대한 이견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두 국가론'이 단순히 구호로만 이뤄질 사안이 아닌 만큼, 정부로선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15일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정 장관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이냐"라면서 경질을 요구했다. 정 장관이 또다시 '두 국가론'을 언급했을 뿐 아니라 정부 공식 입장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밝히자, 대북 정책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분출됐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두 국가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 달 전 언론 간담회 당시 "남북은 사실상의 두 국가, 국제법적 두 국가"라는 입장에서 발전해 '정부 공식 입장'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아가 이 대통령이 북한을 '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야권에선 정 장관이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야권은 이번 논란에 대해 이 대통령이 아닌 정 장관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사실상 정 장관 개인 의견이라는 취지로 입장을 내면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이 줄곧 '두 국가론'을 주장해도 대통령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다. 이에 조용술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이 거듭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자, 이제는 대통령까지 끌어들였다"고 비판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간담회를 통해 정 장관의 '두 국가론'을 가리켜 "국정감사 기간에 추가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언급은 피하겠다"면서도 "내가 전에 한 말을 상기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위 실장은 지난 9월 미국 뉴욕 현지 브리핑에서 "우리는 '두 국가'를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입장에 서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정 장관이 현재 경색된 남북 관계에 소위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두 국가론'을 펼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최전방 일대에서 가동 중인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지하며 남북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특히 '포괄적 대화'를 기반으로 한 한반도 평화 구상인 'END 이니셔티브'까지 내세웠지만, 북한은 여전히 적대심을 풀지 않고 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한반도 통일'에 걸림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사례를 들어 "국제적으로 완전히 두 개 국가로 고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결단코 통일은 불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면서, 정치권에선 '두 국가론'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반도 평화가 마련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정 장관의 '두 국가론'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현실적으로 북한의 기조에 발맞춰야 한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지난 18일 국제 한반도 포럼 개회사에서 "두 국가론을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적대성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사실상의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우리 대북 정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라는 헌법 4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지다. 정 장관이 단순히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두 국가론'을 일부 동조할 순 있어도, 정부 공식 입장으로 확정하겠다는 입장은 개헌 문제로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두 국가론'이 헌법에 배치된다고 지적했지만, 정 장관은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관계 속에서의 두 국가론을 말하는 것"이라며 북한을 법률상 국가로 승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헌법 3·4조를 들어 "'두 개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대한민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결국 '두 국가론'은 헌법 개정 논쟁은 물론, 위헌 논란까지 불거질 사안인 만큼, 대통령실 입장에선 거리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인 만큼, 민심을 설득하는 것도 과제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두 국가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을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과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두 국가론'을 공론화하자, 수석최고위원이었던 김민석 국무총리는 "남북 양쪽에 흩어진 혈육과 인연들을 영영 외국인 간의 관계로 만들자는 설익은 발상을 갑자기 툭 던질 권리는 남북 누구에게도 없다"고 반발했다.
임 전 실장은 이날 CBS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위헌 논란을 두고 "우리가 때로는 법을 지키기 위해 인내해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미래를 보고 현실을 개척해 가면서 법을 수정해야 하는 측면도 늘 있는 만큼, 유연했으면 좋겠다"며 "대부분 나라의 헌법에는 영토 조항이 없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한반도와 부속 도서라 함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고 실효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라고 하는 것도 의미 있는 해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북관계 발전법' 개정을 통해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두 국가론'이 공론화되기 위해선 한국과 북한이 '하나의 민족'인지 '두 개의 민족'인지 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북한은 한국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을 다른 민족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장관의 '두 국가론'엔 이 사안이 언급되지 않은 탓에 북한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정 장관의 '두 국가론'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일종의 화답이 아닌, 남북이 유엔에 각각 가입됐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논리로 볼 수 있다"며 "국제 정치적 또는 우리 민족 공동체 맥락에선 정 장관의 주장이 틀리지 않고, 정체된 남북 관계에 대한 답답함의 표현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동질 관계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은 한국은 사실상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해석이 가능하고, 국가 관계이기 때문에 통일 문제가 아닌 영토 점령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정 장관은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보는 것인지, 북한처럼 다른 민족으로 보는 것인지 먼저 말해야 북한도 논리적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말하면 통일부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정 장관이 현재 언급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남북 유엔 가입을 들어 대외적으론 국가 관계를 내부적으론 북한을 특수관계라는 원칙과 방향을 정립한다면, 국제 사회도 헷갈리지 않고 북한도 대응 논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원칙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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