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재판 지원형 AI 시범사업 착수…행정보조 넘어 법리 검토까지 가능
양질 판례·논문 학습한 AI, 유사 사건 쟁점과 결과 예측…절차 효율화 기대
"판단까지 기계 맡길 수 없다" 법조계 아직 신중론…정확성·책임 한계 지적
현장 실무에선 "과중한 사건 부담 줄일 기술적 대안 될 것" 긍정적 반응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데일리안 DB
사법부가 인공지능(AI)을 변론 기록과 분쟁예측 단계에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법리 검토와 판결 과정에서도 AI가 일정 역할을 담당하게 될지 주목된다. 단순 행정보조를 넘어 판단의 영역으로 기술이 확장될 경우 판사의 재량과 법리해석 권한을 어디까지 유지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재판 지원형 AI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법리 검토 자동화'를 포함한 시범사업 계획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는 대량의 판례·법조문·논문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사사건의 주요 쟁점과 판결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스템으로, 실제 판사가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장 자문기구인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는 지난 9월26일 제5차 회의에서 "재판과 사법행정 시스템에 AI 기술을 도입하면서 절차적 관점, 실체적 관점, 이용자 접근성 관점을 구분하고 각 관점에서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기본 모듈을 중심으로 (AI 기술의 활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절차적 관점은 재판 변론 자동기록화, 온라인분쟁 해결(ODR) 등을 의미한다. 실체적 관점은 분쟁 예측 AI 등을, 이용자 접근성의 경우 사용자와 대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챗봇 등을 뜻한다.
나아가 위원회는 최근 제6차 회의에서 사법부 AI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입법부·행정부와 협력해 관련 법령을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위원회는 사법부 AI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민의 사법 접근성 제고와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공공 인프라임을 강조하며 개인정보보호법·저작권법 등 현행 법령을 준수하면서 판결문과 소송기록 등 양질의 학습데이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AI 개발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확충과 안전성 확보, 가명처리 등 데이터 관리 체계 강화도 함께 요청했다.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전경.ⓒ데일리안 DB
이 같은 기술이 판단 보조를 넘어 판단 대체로 비화할 가능성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아직 신중론이 제기된다. 주요 로펌에서도 내부적으로 'AI 법리 분석 도구'를 시험 적용하고 있으나 대부분 '최종 판단은 인간이 내린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판사 출신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AI가 제시한 법리 판단이 표면상 합리적이라도 사회적 맥락이나 판결의 파급력은 기계가 감안하기 어렵다"며 "재판은 단순히 데이터 비교가 아니라 가치 판단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AI가 법률 문서를 작성할 때 허위 판례나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사례가 실제로 늘고 있다"며 "정확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면 검토나 판결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AI는 입력된 명령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인간의 감정·상황 판단이 필요한 양형 요소를 반영하기 어려운 까닭에 판결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AI는 스스로 자료를 생성하기 때문에 출처의 객관성 검증이 어렵고 나중엔 'AI 대 AI의 싸움'이 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가 분석한 판례 데이터가 선례 맹신의 구조적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AI의 예측 모델은 평균적 판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과거 다수결적 판결 경향을 그대로 학습할 경우 소수자 권리나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실무 현장에서는 AI의 법리 분석 기능이 재판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현직 판사는 "매년 수백 건 이상의 사건을 판사가 처리하는 현실에서 AI가 법리 요약, 쟁점 도출, 기존 판례 정리 등을 지원하면 품질과 속도 모두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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