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에 독창적인 색깔을 입힌 창작 초연작들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며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라이선스 작품이 주도하는 시장 구조 속에서도, 한국적인 소재와 보편적인 감동을 결합한 새로운 작품들이 제작 편수와 작품의 질적 측면에서 눈에 띄게 약진하는 양상이다. 이는 K-컬처의 글로벌 위상 강화와 맞물려 국내 뮤지컬 산업이 단순한 양적 성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평가된다.
'전우치' 공연 장면 ⓒ서울예술단
최근 막을 내린 초연작들과 개막을 앞둔 신작들의 목록은 현재 창작 시장의 역동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던 ‘쉐도우’와 ‘전우치’ ‘조선의 복서’ 등이 잇달아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하반기에는 더욱 다양한 주제와 규모의 창작 뮤지컬들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특히 한국적 미감과 서사를 활용한 신작들이 눈에 띈다.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복 입은 남자’(12월 2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조선시대에도 웨딩 플래너가 있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 ‘청사초롱 불밝혀라’(11월 19일 국립정동극장), 인류 최초의 유인 달 탐사선인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세 명의 우주인 중 한 명인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를 1인극 형식으로 담은 ‘비하인드 더 문’(11월 11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등이 개막한다.
이처럼 역사적 인물, 전통 문화, 현대적 고민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소재의 활용은 창작진들이 한국 뮤지컬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통할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창작 초연작에 대한 꾸준한 제작 열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한 ‘문예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에서 공연된 뮤지컬 총 2083편 중 창작 초연 뮤지컬은 78편으로 집계되었다. 전년인 2022년에는 47편이었다. 창작 뮤지컬의 제작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보다도 활발한 수준이다. 브로드웨이 리그에 따르면 2024~2025시즌(2024년 5월20일~2025년 5월25일)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창작 뮤지컬은 21편에 불과하며 이 중 5편은 리바이벌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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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이 힘을 얻는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컬처 열풍이 결정적인 기폭제가 됐다. 음악,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위상을 확보하면서, 뮤지컬 또한 그 파도에 올라타 해외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해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작품성과 보편적인 공감 능력을 인정받은 사례는 국내 창작자들에게 큰 동기를 부여했다. 이는 한국적인 서사나 정서를 담은 작품이라도, 잘 만들어진다면 언어와 국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성공 방정식을 제시한 셈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현재 국내 뮤지컬계는 라이선스 중심의 성장 모델을 가져가는 동시에 한국 뮤지컬만의 정체성을 지켜내며 글로벌 시장을 향한 본격적인 도약의 문턱에 서 있다”며 “우수한 창작진과 배우, 그리고 탄탄한 제작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한국 뮤지컬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 시장 진출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창작 초연작의 증가는 한국 뮤지컬 산업이 마침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명확한 신호와도 같다. K-컬처의 흐름을 타고 한국적인 소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한국 뮤지컬을 해외로 수출하고, 라이선스 수출국으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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