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혼인 관계가 깨져서 부부가 남남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이혼이 흔하다면 흔해졌지만 예전에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조선시대에는 이혼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물론 사대부가 아닌 백성들은 비교적 손쉽게 이혼을 할 수 있었다. 사대부들도 정처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할 수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탄핵 대상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결행하지 못했다. 사대부도 쉽사리 이혼을 하지 못하던 조선시대에 왕실의 종친이 무려 이혼과 재혼, 그리고 재재혼까지 감행한 사례가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제안대군이다. 사실 그는 왕이 될 운명이었다. 아버지가 바로 예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음 왕위는 큰아버지의 둘째 아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왕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다른 사람의 양자가 되어버리는 신세가 되면서 제안 대군은 왕권에서 멀어졌다. 물론 성종은 그런 제안 대군을 창덕궁의 인정전에서 열린 양로연에 초대하기도 하는 등 왕실의 일원으로 잘 대우해 줬다.
창덕궁 인정전ⓒ필자 제공
제안대군에 관해서 남아있는 기록들을 보면 하나 같이 멍청하다고 나온다. 진짜 멍청한 건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서 멍청한 척한 건지는 모르지만 초대형 사고를 친 적은 있다. 바로 이혼 문제였다. 사연도 막장이라 아마 이혼숙려캠프 같은 프로그램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면 1순위로 섭외가 되었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이혼은 극히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뚝심과 어거지로 난관을 돌파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벌인 짓을 생각하면 멍청하다는 표현도 사실은 맞지 않았다.
제안 대군의 부인이 오래 묵은 병이 있어 걸음을 걷지 못하고, 또 정신이 흐리멍덩한 증상을 얻어서 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니, 비록 침질과 뜸질과 약물의 치료가 있었으나 마침내 효험이 없게 되었다. 대비께서 연세가 이미 늙었고 또 병환이 있어 손자를 보고 싶어 했으나, 부인의 병이 또한 낫지 않으므로 마지못해서 그를 폐했으니, 이것은 대왕대비의 명령이다.
성종이 즉위한 지 10년째인 서기 1479년 10월 21일 자 실록의 기록이다. 제안 대군은 치사하고 비겁하게 아내의 병을 핑계로 이혼을 요구했고, 종친에게는 항상 잘해주던 성종은 요청을 승낙한다. 참고로 제안 대군은 1466년에 태어났으니 이때 불과 14살이었다. 이 정도로 끝났다면 그냥 종친의 땡깡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몇 년 후에 사간원 정언 정광세가 성종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한다. 제안대군이 재혼을 한 후에도 전처를 잊지 못해서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종은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면서 캐묻는다. 사실상 조사하지 말라는 뉘앙스였지만 사헌부는 굴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해서 마침내 제안대군이 전처인 김씨의 집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기서 엉뚱한 사건이 터진다. 제안대군과 재혼한 박씨가 여종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비전에서 사람을 보내서 조사를 진행했다. 처음에 여종들은 제안대군의 아내인 박씨가 자신들을 유혹해서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그걸 목격하기까지 했다는 자백도 받았다. 하지만 내관들이 추궁하자 여종들은 사실은 거짓말이라고 고한다. 조선에서는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는 것도 불법이고, 거짓으로 누명을 씌우는 것은 사형감이었다. 하지만 성종은 처벌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대왕대비와 대비가 모두 제안대군과 박씨를 이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모두 입궐했을 때 자신들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불순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핑계였다. 성종 역시 그걸 아는지 제안대군의 성품이 고집스럽고 이해도가 떨어진다면서 그냥 이혼시키자고 말한다.
하지만 성리학의 화신인 조정 대신들은 한번 이혼도 문제인데 두 번씩이나 이혼시킬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성종은 여전히 대왕대비와 대비에게 불손하게 대했다면서 이혼을 시킬 것을 지시한다. 이혼시켜야 한다는 성종과 어떻게 불손하게 대했는지 밝힌 다음에 처리해야 한다는 조정 대신들의 입씨름이 몇 달째 이어진다. 결국 어렵게 이혼을 시키고 다시 장가를 보내게 하려고 하자 제안대군이 첫 번째 부인 김씨와 다시 살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말이 요청이지 억지나 다름없어서 그를 위해 대신들과 기 싸움을 했던 성종을 화나게 만든다. 성종은 기껏 이혼시켰더니 지금 무슨 짓이냐고 화를 냈지만 제안대군은 김씨와 다시 재결합하지 못하면 평생 홀로 살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결국 성종이 승낙하면서 제안 대군은 김씨와 재 결합을 하게 된다. 요즘도 이혼한 전처와 재혼하는 일은 흔하지 않은데 이혼 자체가 희귀한 일이었던 조선 시대에는 엄청난 이슈가 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까닥하면 임금의 진노를 사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고집을 부린 걸 보면, 멍청하고 어리석다는 평판은 어느 정도 가려 들어야 할 거 같다. 전 부인 김씨와 재혼한 제안대군은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냈다. 그리고 성종이 승하하고 아들인 연산군이 즉위하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잔치를 베풀어줬는데 그때 연산군의 눈에 띈 게 바로 장녹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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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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