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광풍은 코스피 5000과 코스닥 1000을 지나 꽤 오래 갈 듯
증시 활황에 옳은 소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국민의힘 모습은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해
뒤늦었지만 증시에서 먼저 어젠다를 제시하는 국민의힘 모습 기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28일 미국발 훈풍과 실적 기대감에 상승해 또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2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되어 있다. 이날 삼성전자는 전장 대비 1.82% 오른 16만2천400원에, SK하이닉스는 5.13% 오른 84만1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최근 한국경제를 보면 스릴이 넘친다. 코스피 5000(오천피)과 코스닥 1000(천스닥) 시대가 열리면서 사람들마다 주식 얘기로 정신이 없고 직장에서는 주식거래 사이트를 훔쳐보는 직원들이 넘쳐난다. 주부들까지도 나섰다. 서점이나 유튜브에는 주식 관련 콘텐츠가 인기다. 은행 예금을 빠져나온 개인 자금도 증시(證市)로 향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월 27일 현재 투자자예탁금은 100조 2826억원으로 사상 처음 100조원을 돌파했다. 빚내어 투자하는 신용거래융자도 1월 20일 현재 18조 5520억원이나 된다. 그야말로 광풍의 ‘주식 코리아’ 시대가 열렸다.
요즘 같은 불장에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란 용어가 회자하고 있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이나 잘 오르지 않은 주식을 산 사람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즘 최고의 포모는 아마 국민의힘일 것 같다. 코스피 5000시대가 현실화되면서 국민의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국민의힘은 “코스피 5000은 허황된 구호”라든가 “민주노총에 사로잡힌 정권이라 코스피 5000은 불가능하다”라며 평가절하했는데, 막상 코스피 5000시대가 닥치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논리적인 공격부터 한다. 주장을 모아보면 이렇다. ‘이재명 정부는 각종 쿠폰 등으로 시중에 돈을 많이 풀었고 갈 길을 잃은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렸다. 부동산 버블보다는 참가자가 많은 증시의 버블이 더 위험하다. 환율도 여전히 불안하다. 최근 환율을 보면 외국인들이 그다지 한국에 투자하고 싶지 않음을 보여 준다. 작년 4분기 우리나라 경제는 -0.3% 역성장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시중 물가는 상승하고, 가계부채는 급등하고 있다.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피부로 불황을 느낀다. 실물경제는 엉망인데 코스피 5000은 국민에게 착시의 시간이 될 우려가 크다.’
사실 국민의힘 주장을 하나하나 따져 보면 일리가 있다. 특히 연이은 급등장에도 상승보다 하락 종목이 많으니 양극화는 심화되고 ‘돈 놓고 돈 먹기’ 투기장이 되고 있다는 우려는 타당하다. 무엇보다 주식으로 돈을 벌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무시당한다는 지적도 지당한 얘기다.
그런 데 문제가 있다.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가장 미운 법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모처럼 자산 증가를 기대하며 주식시장에 몰입하는데 국민의힘은 개인으로서 체감하기 어려운 거시경제 지표를 들이대며 반박하니, 공감력과 설득력은 떨어지고 투자자들은 콧방귀를 뀐다. 어느 인터넷 종목 토론방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을 싫어했는데 내 재산 불려 주니 지지한다”든가 “야당은 왜 증시를 트집 잡아 내 재산 증식을 막으려 하는가”라는 소리가 나온다.
심리적으로 다른 곳에 가 있는 국민들 마음을 전혀 잡지도 파고들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보기에 답답하다. 언론이야 지속적으로 최근의 주가 폭등에 대해 위험 신호를 계속 보내야 하지만, 정당은 단순한 비판에 그칠 것이 아니라 판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한동훈 제명’을 비롯하여 심각한 내분으로 파산 지경이 된 국민의힘 인지라, 국민들 가슴에 와닿는 어젠다를 만들기에는 기대 난망(難望)이다.
원래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시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에서 끌고 가야 할 이슈였다. 그래서 코스피 5000 이슈를 놓쳤다 해도 코스닥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쥘 법했었다. 가령 코스피 5000 분위기로 들뜬 순간을 경계하면서, “서민과 밀접한 것은 코스닥이다. 벤처와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한 코스닥을 획기적으로 띄우자”면서 선수(先手)를 치는 정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낼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한 국민의힘 지지자는 “지금 코스피와 코스닥은 막 달리는데, 국민의힘만 멈춰 있는 느낌”이라며 “버블이다, 위험이다, 외치기만 했지, 대안도 로드맵도 없는 국민의힘은 국민의 감정선과 완전 어긋나 있다”고 탄식했다.
반대로 지금까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면 욕을 먹든 말든 빠른 속도로 국민들에게 직설적으로 파고든다. △부정적인 의견이 많더라도 분명한 수혜자가 있는 정책과 법안을 발의하고 △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공개 석상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자기 경험을 들어 부정하며 △현장을 공개 압박하며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신규 원전(原電) 건설에 부정적인 언급을 했다가 최근 기조를 변경, 원전 건설에 나서겠다고 돌아섰다. 이에 감읍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 ‘탈원전 대못’ 뽑았다”는 기사 제목을 뽑은 보수 언론들이었다. 반대로 좌파 신문들은 ‘충분한 공론화 없이 한 달 만에 신규 원전 밀어붙인 정부’라는 사설을 게재하는 등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문제는 국민의힘 주장과는 달리, 이번 증시 호황은 치명적인 변수가 없는 한 오래 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코스피는 5000을 지나 6000도 가능해 보인다. ‘단군 이래 최고의 초호황’에 진입한 반도체를 필두로 조선·방산·원자력 등에서 굵직한 글로벌 호재들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 D램 가격은 지난해 4분기 53~58% 급등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는 무려 60% 이상 오를 전망이다. AI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없어서 못 팔 정도인데, 기존 공정으로는 쏟아지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고 새로운 공정은 빨라야 내년에 완공되기 때문에 당분간 공급자 절대 우위가 계속될 전망이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널뛰었으나, 이제는 고객 맞춤형 시장으로 변하면서 제조업체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다. 지금은 선(先)주문이 밀려들어 고객사들은 1년 전부터 계약을 체결해야 할 지경이다. 그래서 이제 삼성전자 목표가를 26만원, SK하이닉스는 150만원으로 잡는 애널리스트들까지 나왔다. 기둥인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올해와 내년에 최고치를 찍을 것이라는 전망과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증시 광풍은 쉽게 꺼지지 않아 보인다.
1000을 통과한 코스닥 역시 3000도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바이오와 이차전지 중에서 세계시장의 주목을 받는 똘똘이들이 적지 않은데다, 지금은 적자투성이지만 향후 산업을 주도할 로봇업체들도 많아서다. 청와대는 코스닥 3000을 향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1월 28일 “코스닥이 코스피에 비하면 상당히 아쉬운데, 코스닥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제도를 대대적으로 근본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스피 열풍을 코스닥에도 이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국내 증시 투자를 독려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의 14.4%에서 14.9%로 0.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큰 액수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국민연금이 허용된 비중을 넘어설 때 조정하는 ‘리밸런싱’도 한시적으로 유예한다는 점이다. 한도를 넘는다고 보유 주식을 팔 때 ‘국민연금발(發) 주가 폭락’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훗날 문제가 될 소지도 있어 보이지만, 지금은 별로 안중에 없다.
국민의힘은 향후 관련 이슈도 빼앗겼다. 더불어민주당은 코스피 5000을 기회로 삼아 자사주(自社株)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조만간 본격 처리할 방침이다. 재계는 예외 조항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수정안 논의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존재감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주식투자 광풍은 1999년에도 있었다. 당시 인터넷 열풍이 시작되면서 너도나도 증시에 뛰어들었다. 현대증권에서 출시한 펀드인 ‘바이 코리아(Buy Korea)’는 시대를 상징하는 구호였다. 직접투자보다는 펀드 가입이 유행이어서 '뮤추얼 펀드'니 하는 생소한 용어가 동네 아주머니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은 “지금 주식을 사면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됩니다. 2005년엔 코스피가 6000까지 갈 거예요”라며 54일 만에 5조원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1년 뒤 IT 버블이 실체화되면서 열풍은 꺾였다.
그렇다. 언젠가는 지금의 주식 광풍이 잠잠해질 것이다. 타이밍의 문제다. 다만 정치인들이란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사람들이다. 잔칫집 앞에서 “이 잔치는 허영이 넘치는데 끝나면 비용 정산과 쓰레기 청소는 누가 하나”라고 외쳐 보라. 말은 맞지만,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증시 호황에 취해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식상하고 뻔한 분석을 버리고 감동적인 어젠다와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국민의힘 모습이 아쉽다. 다만 지금으로선 그런 기대 자체가 무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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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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