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우승한 최가온이 금메달을 손에 들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리비뇨=연합뉴스
지상파 방송사의 올림픽 중계가 시작된 이래 초유의 지상파 중계 불발 등의 악재로 인해 무관심 속에 지나가는 듯했던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국민을 감격시킨 영웅이 나타났다. 바로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금메달의 주인공인 세화여고생 최가온이다.
최가온은 한국 스키(설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아시아 최초 금메달리스트,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면서 동계 올림픽 하프파이프 최연소 금메달 기록(17세 3개월)도 세웠다.
하프파이프는 국내에 훈련 시설이 매우 미비해서 거의 불모지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건 기적이다. 국내에선 인지도가 높지 않은 종목이지만 해외에선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주목 받는 종목 중의 하나다. 그래서 최가온의 금메달에 대해 해외에서도 큰 관심이 나타난다. 특히 3연패를 노렸던 이 종목의 절대 강자인 미국의 클로이 김을 제쳤기 때문에 미국 측의 관심도 크다.
그럴 정도로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놀라운 사건이라는 이야기다. 피겨 스케이팅 인프라가 미비한 상태에서 김연아 같은 스타가 나왔었는데 이번엔 피겨보다도 소외된 하프파이프에서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윤성빈이 아시아 최초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을 때도 썰매 종목 불모지에서의 기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새로운 세대에서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인재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놀랍다. 나라가 전체적으로 성장하니까 그 속에서 다양한 재능들이 꽃피는 것이다. 한국은 이로서 동계올림픽 '빙상·설상·썰매' 3개 영역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한 첫 아시아 나라가 됐다. 우리보다 훨씬 큰 중국, 일본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최가온 선수가 특히 국민에게 감격을 준 것은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펼친 분투였다. 1차 시기에 거꾸로 떨어지며 부상을 입어 경기 진행이 어려워보였다. 관계자가 기권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가온은 포기하지 않고 2차 시기에 도전했는데 다리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서 또 넘어지고 말았다. 3차 시기 때는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상태인데다, 눈까지 심하게 내려 역전이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런 속에서 90.25점으로 1위에 오르자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도 최가온의 불굴의 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한국에서 국민도 감격했다.
최가온은 2024년에 스위스 월드컵에서 훈련 중 척추골절을 당해 3번의 수술 등 1년여 간 치료와 재활에 전념했다. 그 정도면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이번 올림픽에서 3차 시기까지 투혼을 보여준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박세리 선수가 물에 빠진 공을 쳐올리는 장면이 국민에게 큰 용기를 줬었다. 이번에 최가온 선수가 도전을 거듭해 끝끝내 이뤄내는 모습도 우리 국민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될 것이다.
기업들의 역할도 컸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최가온의 척추골절 수술비 7000만원을 전액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설상 종목 불모지인 한국에서 롯데가 설상 종목에 300억원을 지원해 선수들을 뒷받침했다. 2022년부터는 스키 앤 스노보드팀을 창단해 최가온을 포함한 10대 유망주를 영입했다. CJ도 2023년부터 최가온을 후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안 그래도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추세에 한국에서 시청하기에 시간대도 안 좋은 데다 JTBC 독점 중계 문제까지 겹쳐 역대급 무관심 올림픽이 되고 있다. 이러면 그동안 노력한 선수들이 주목받지 못하게 되고, 새로운 인재 양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선수들이 주목 받는 모습을 보며 재능 있는 어린이들이 꿈을 갖게 된다. 최가온도 김연아를 보며 동계 종목을 배우기 시작했다. 또, 선수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아야 기업이나 지자체들이 실업팀 등을 만들어 비인기 종목 후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무관심 속에선 이런 일들이 어려워진다.
국부 유출도 문제다. 여러 방송사들이 함께 적당한 액수로 중계권료 협상을 하고 있었는데 JTBC가 거액을 제시하며 독점권을 따냈다는 주장이 나온다. JTBC는 이 의혹을 부인하는데 상식적으로 큰 돈을 제시했으니까 독점권을 거머쥔 것이 아닐까?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중계권 경쟁 때문에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면서 정작 국내 선수들은 독점 중계로 인한 무관심으로 소외되는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운동경기를 꼭 방송사들이 일제히 중계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부 유출을 막고 국내 선수들의 사기진작과 신진 육성을 위해선 현실적으로 여러 방송사들이 함께 중계권을 따오는 방식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렇게 중계해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면 또 많은 어린이들이 꿈과 재능을 키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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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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