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플라자] 민주주의와 도적의 경계선: 사법의 저울을 흔드는 '유랑형 권력'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04 07:30  수정 2026.03.04 07:30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기고

법 왜곡죄 고소 반복, 사법부 수평 잃어

시민들 복잡한 정책 앞 '무지' 선택

권력 절제 외면하면 피해 국민으로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 시간) 한 호텔에서 열린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대통령과 국빈만찬에서 답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국가의 기원 중 가장 냉정한 설명은 '유랑형 도적(流浪型 盜賊)과 정주형 도적(定住型 盜賊)' 설이다.


다시 돌아올 곳이 아니기에 마을을 초토화하고 약탈하던 도적이 "힘들게 떠돌지 말고 머물며 거두어들이자"라고 마음먹는 순간, 국가는 시작됐다는 통찰이다.


마을을 불태우고 모조리 빼앗고 떠나면 다음에 거둘 것이 없다. 그래서 도적은 계산을 바꿨다. 초토화 약탈 대신 세금을 걷고, 억압의 질서를 만들었다. 그 결과 믿을만한 측근과 약탈품을 나누고 자리를 주며 수탈의 구조를 만들었다. 세금체계를 만들어 관리하고, 저항을 제압할 공권력을 조직했으며, 그 질서를 정당화할 사법 체계를 세웠다.


도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떠돌다 머문 '유랑형'에서 '정주형'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이 서늘한 비유는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Mancur Olson)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저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역학'(Dictatorship, Democracy, and Development, 1993)과 '지배력과 번영'(Power and Prosperity, 2000)에서 국가 권력을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 모델로 설명했다. 유랑형 도적(Roving Bandit)이 단기적 약탈에 치중해 터전을 황폐화한다면, 정주형 도적은 울타리를 치고 주민의 생산을 보호한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몫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올슨은 이를 '포괄적 이익(Encompassing Interest)'이라 불렀다. 통치자가 공동체의 번영에 관심을 가질 때 자신의 이익도 극대화된다는 역설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풍경은 이 명제를 실감하게 한다.


정주형 권력은 자신을 지탱한 네트워크를 우선적으로 신뢰하며 전리품을 배분한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인사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배우 명계남 씨가 차관급인 황해도지사에 임명된 것은 상징적이다. 진영 내 기여도에 따른 보상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외교 경력이 전무한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의 유엔 주재 대사 기용이나, 각 기관 핵심 요직에 자신의 송사를 도왔던 변호인단 출신들을 전면 배치한 것은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성의표시의 정점이었다.


정부는 능력주의를 강조하지만, 대중의 눈에는 공적 자리를 사적 보상 수단으로 전락시킨 '자리 나눠먹기'로 비칠 뿐이다. 이는 국가 시스템을 포괄적 이익을 위한 공공재가 아닌, 사적 네트워크를 위한 전유물로 만드는 행위다.


사법 체계에 대한 공격은 더 노골적이다.


거대 여당이 밀어붙이는 이른바 '사법 3법'은 정주형 도적의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저버린 행태다. 정주형 권력이 오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공들여 만든 사법 체계는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공동의 저울'이다. 이 저울의 수평이 유지돼야 권력도 시민도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입법은 당장의 안위와 특정 세력 보호를 위해 '저울의 축' 자체를 흔들고 있다.


법에 문외한인 필자조차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극명한 예를 든다면, 이 사법 3법의 시행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판에 공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대법관 수를 급격히 늘려 판결의 인적 토대를 바꾸는 것이 재판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승복 혹은 납득을 가져올 수 있는가?


또한 보수와 진보 어떤 진영이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론을 낸 재판관을 법 왜곡죄로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사법부의 저울은 이미 그 수평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재판소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복이 이어진다면, 우리 사법 시스템은 끝없는 도돌이표 재판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굳이 윤 전 대통령의 재판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법리가 아닌 정치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법정에서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정의가 구현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올슨은 정주형 권력조차 미래를 보는 안목을 상실할 때 사회는 쇠퇴한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권력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사법적 토대를 고민하지 않는 듯 보인다. 임기 내에 자신들의 리스크를 방어하고 사법 시스템을 영향력 아래 두는 데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이는 합리적 통치가 아니라, 한 시대를 휩쓸고 지나가려는 떠돌이 권력의 조급함을 연상시킨다. 시스템을 도구화하여 퇴로를 확보하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


시민들은 정책의 복잡함 앞에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를 선택하기 쉽다.


바쁜 일상을 사는 개인이 복잡한 정책적, 법리적 쟁점을 일일이 공부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이해와 관심을 벗어난 쟁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권력은 이 틈을 파고든다. 개혁이라는 수사로 입법의 본질을 가리고 독주한다.


권력이 스스로 절제하기를 외면하고 사법의 저울을 정략화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치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터전을 파괴하지 않는 권력이다.


설사 현대 정치가 도적의 얼굴을 감추고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불태우고 지나가는 유랑형 도적이 아니었으면 한다. 그나마 내일의 수확을 위해 씨앗을 남겨두는 지혜로운 정주형 권력이길 바란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사법 시스템은 공동체의 유산이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약탈의 논리로 되돌아간다.


현 집권 세력은 휩쓸고 지나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유랑으로 끝날 것인가.


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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