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윤가은·장건재가 빚은 3색 앤솔로지, ‘극장의 시간들’ 베일 벗다 [D:현장]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3.03 20:40  수정 2026.03.03 20:46

누군가에겐 일터이고, 누군가에겐 첫사랑의 장소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꿈의 출발점이었던 극장.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맞아 탄생한 ‘극장의 시간들’은 그 공간을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불러낸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3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광화문에서는 영화 ‘극장의 시간들’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 배우 김대명, 원슈타인, 이수경, 홍사빈, 고아성, 장혜진, 김연교가 참석했다.


‘극장의 시간들’은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 영화로, 함께 웃고 울고 꿈꾸며 언제나 변치 않는 친구가 되어준 극장과 영화에게 보내는 시네마 러브레터다.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했다.


첫 에피소드는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로 2000년 광화문을 배경으로 우연히 만나 신기한 침팬지 이야기에 빠져드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뤘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영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어린이 배우들과 감독의 이야기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은 오랜만에 광화문의 극장에서 재회한 중년 여성들의 꿈 같은 하루를 그렸다.


‘침팬지’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이번 작업의 출발점에 대해 “씨네큐브 25주년이라고 해서 극장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게 됐지만, 캠페인이나 홍보 목적은 아니었다. 기념의 의미였다. 극장이 나오면 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찍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침팬지와 관련된 일이 있었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침팬지 이야기와 극장, 영화라는 게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어떤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에필로그에 실제 씨네큐브 영사 기사를 담은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단편을 찍고 나니 앞에 표지처럼 무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씨네큐브 영사 기사님을 찍고 싶었다. 표현이라기보다 기록의 의미였다. 와서 조금씩 찍었다. 완결을 내야 하니 젊은 영사 기사님에게 필름 상영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다큐멘터리 같으면서도 영화적인 작업이 됐다”고 전했다.


윤가은 감독은 “전작 후반 작업 중에 제안을 받았다. 저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이처럼 작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며 “극장과 영화에 대한 프로젝트 안에 그 고민을 담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며 “꽉 짜인 시나리오로 진행하다가, 가장 헐겁게 현장에서 배우와 제작진이 발견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 목표를 가지고 달려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아성과의 협업은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윤 감독은 “이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언젠가 고아성과 꼭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이번이 기회 같았다. 그것 역시 이번 작업을 하게 된 중요한 목표였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한 설정에 대해 “원래는 최대한 출연하지 않고 목소리 정도로, 앵글 안에 있는 배우들과 작업하려 했다. 그런데 메타적인 설정이 생겼다. 메타의 메타가 되는 순간, 또 다른 마법 같은 순간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결국 자연스러운 게 무엇인지 질문하게 됐다. 영화라는 인위적인 장치로 자연스러운 장면을 포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었다. 끝까지 보고 나면 ‘이건 만들어지지 않은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이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말했다.


장건재 감독은 “이 프로젝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반드시 씨네큐브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지만, 극장이 무대가 됐으면 좋겠고, 그 극장이 씨네큐브라면 더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씨네큐브는 저 역시 아끼는 극장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공간”이라며 “극장이 작동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상상해봤다. 일하는 사람들, 오랜만에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만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극장은 영화 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곳이지만, 영화를 찍는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새로운 공간에 가고 사람을 만나는 건 저에게 공부다. 무심히 오가던 공간이 작업을 하고 나면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번 작업 역시 의미 있는 공부였다”고 덧붙였다.


‘침팬지’에는 김대명, 원슈타인, 이수경, 홍사빈이 출연했다. 김대명은 “이 작품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렜다. 개인적으로 이종필 감독과 친구다. 2000년대 초반 종로와 광화문에 대한 기억을 많이 나눴다”며 “독립영화극장과 카페,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슈타인은 “감독님이 김대명 선배와 닮은 사람을 찾다가 어떤 팬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저를 캐스팅했다고 들었다”며 “이야기 속 인물이 겪는 감정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으면서도, 제 경험과 비슷한 지점이 있어 끌렸다.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촬영했다”고 전했다.


이수경은 “감독님의 팬이었다. 원슈타인, 홍사빈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즐겁게 찍었다”고 말했다. 홍사빈은 “제대 후 일주일도 안 됐을 때 촬영했다.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며 “극장은 답신 없는 애인 같다. 내가 고백해도 답이 없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자연스럽게’로 윤가은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춘 고아성은 “이종필 감독, 장건재 감독과 모두 작업해봤다. 요즘 말로 하면 이 자리가 ‘세계관 붕괴’처럼 어색하다”고 웃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윤가은 감독님의 팬이었다. 저는 아역 배우 출신이라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보면 온전히 보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윤 감독의 현장은 정말 특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카메라 밖에서라도 참여해보고 싶었다”고 ‘자연스럽게’에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장혜진과 김연교는 ‘영화적 순간’으로 호흡을 맞췄다. 극장 청소 노동자 역을 맡은 장혜진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극장을 운영하셨다. 극장은 제게 낯선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었다. 어릴 때 극장에서 이모님이 정겹고 흥겹게 청소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기억을 토대로 접근했다”고 전했다.


김연교는 극장 매니저 세정 역에 대해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인물이라고 느꼈다. 감독님이 세정을 통해 생의 에너지를 말씀해주셨다. 아침마다 러닝을 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가까이 두고 싶어 극장에서 일하는 아이다. 그 에너지를 제 안에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연교는 “씨네큐브에 와서 실제로 견학하며 표를 끊고 안내하는 과정을 배웠다. 매니저들이 일하는 시간 사이의 순간을 어떻게 채우는지 관찰하며 연구했다”고 전했다.


극장 위기론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이종필 감독은 “제가 할 줄 아는 건 영화 만들기 뿐이다. 주변 국가들을 보면 위기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소멸된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늘 위기를 말한다. 그 위기 의식을 계속 느끼며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희망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가은 감독은 “물적·인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부족하다고 해서 나쁜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며 “이 시간이 영화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장건재 감독은 “위기를 말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마지막으로 극장과 영화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김연교는 “삶이 원하는 대로만 흐르지 않지만,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제가 이 영화에 참여한 순간도 영화 같았다”며 “하루하루가 영화처럼 느껴진다. 오래오래 소중하게 함께하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고아성은 “2006년 ‘괴물’이 첫 영화였다. 극장에서 제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전율이 있었다”며 “올해 20년째인데, 이번 작품에서 아역 배우들이 자기 얼굴을 보는 순간을 지켜보는 게 뜻 깊었다. 극장은 제 오랜 얼굴”이라고 말했다.


원슈타인은 “배우로서 촬영한 건 처음이라 아직은 관객의 입장에 더 가깝다”며 “영화는 음악처럼 파고들수록 배우게 되고 제 생각을 바꿔주는 선생님 같은 존재”라고 전했다.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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