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 '러-우 전쟁' 추월...정부, 4월 위기설 선긋기
발전용 LNG 의존도 49%…전기료 인상 압박 우려도
“비축유는 임시방편”...미·호주 중심 공급망 재편 촉구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EPA/연합뉴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며 국내 산업계가 공급망 마비 위기에 직면했다. 전례 없는 속도로 치솟는 유가에 이어 세계 가스 공급의 보루인 카타르마저 타격을 입으면서 원유에서 액화천연가스(LNG)로 전이된 충격이 제조업 전반의 가동 중단 우려로 확산되고 있다.
2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중동 노선 해운 운임은 지난 20일 기준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3324달러를 기록하며 5주 연속 상승했다. 이는 전쟁 직전 대비 150% 넘게 폭등한 수치로, 유럽이나 미국 노선 상승 폭의 10배를 웃돈다. 유가 역시 두바이유가 최근 배럴당 166달러까지 오르는 등 한 달 만에 2배 이상 치솟으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에너지 충격의 축이 LNG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의 카타르 라스라판 가스 시설 타격으로 세계 2위 LNG 수출국인 카타르가 최장 5년간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쟁 직전 걸프 지역에서 출발한 마지막 LNG 운반선들이 열흘 내 도착을 마치면 이후 본격적인 공급 공백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더라도 글로벌 석유·가스 시장이 최소 4개월간 공급 부족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국내 카타르산 LNG 비중(약 14%)이 낮고 수입선이 다변화돼 수급 자체는 관리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4월까지는 비축유와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확보한 2400만 배럴의 도입분으로 버틸 수 있다며 ‘4월 위기설’에도 선을 그었다. 반면 업계에서는 LNG의 물리적 저장 한계와 높은 현물 시장 의존도가 공급망의 작은 균열만으로도 가격 폭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동헌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LNG 시장은 공급 충격과 함께 단기적으로는 현물 프리미엄이 확대되고, 중기적으로는 미국, 호주 등으로 공급원 대체가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 목적의 계약 장기화가 필요한 상황으로, 천연가스는 원유보다 저장이 어렵다”고 분석했다.
LG화학 여수NCC공장. ⓒLG화학
산업연구원은 봉쇄가 3개월 이상 장기화할 경우 LNG 가격이 최대 200%까지 치솟고, 제조업 생산비는 11.8%까지 뛸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국내 전체 LNG 수입량 약 4672만톤(t)의 49%에 해당하는 2289만톤이 발전용으로 사용될 만큼, 전력 생산의 LNG 의존도는 높은 수준이다. 이는 전기요금 인상 압박과 전력 다소비 산업의 원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도미노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현장의 고충은 이미 가동 중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프타(납사) 가격이 1월 대비 배 가까이 폭등하며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한계 상황에 몰렸다. LG화학은 이날부터 여수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으며 앞서 ‘공급 불가항력’을 선언한 여천NCC 역시 프로필렌 전환 공정 가동을 멈췄다. 롯데케미칼은 재고 부족에 대응해 내달 예정됐던 대정비를 이달 27일로 앞당기는 고육지책을 내놨다. 다행히 당초 내달 초중순으로 예상됐던 나프타 수급 한계 시점은 대체 물량 확보와 정부 조치가 맞물리면서 4월 하순~5월로 늦춰졌다.
조선업계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선박 강재 절단에 쓰이는 에틸렌가스 재고가 조선사별로 길어야 한 달치에 불과해 조업 차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지난 15일 화학·조선협회 간 화상 협의를 주선해 단기 물량 공급 방안을 마련하면서 급한 불은 껐으나 근본적인 수급 불안은 여전하다. 여기에 카타르 프로젝트 관련 LNG선 27척의 인도 지연 가능성까지 더해지며 납기 관리가 변수로 떠올랐다.
방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일부 산업용 가스와 화학 원료는 LNG 생산 및 석유화학 공정과 연계된 공급 구조를 갖고 있어 에너지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관련 산업의 원료 조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에너지원 다각화와 원료 조달선 분산 전략을 병행하면서 연계 산업재를 포함한 공급망 조기경보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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