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재판소원 첫 사전심사 26건 무더기 각하…문턱 넘은 사건 0건
보충성·청구 기간 등 절차 요건 엄격 적용…'사실상 4심제' 실효 논란
"제도적 장치 미비된 상태서 도입…헌재, 부득이 폐쇄적 결정 내린 듯"
"적법 기준 정성적 판단 개입 가능, 특정 사건 자의적 배제 오해 여지"
김상환(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3월 심판사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뉴시스
헌법재판소가 새롭게 도입된 '재판소원' 제도의 첫 관문인 지정재판부 사전심사에서 접수된 사건 모두를 각하, 본안 심리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재판소원 시행 이후 헌재가 내놓은 첫 판단이지만 단 한 건의 사건도 전원재판부의 본안 심리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법조계에선 제도 시행 초기 무분별한 청구로 인한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함께 헌재가 견제받지 않는 사건 선택권을 행사하며 사실상 국민의 기본권 구제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4일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 평의를 통해 총 26건의 재판소원 청구를 각하했다. 이번 각하 결정의 법적 근거는 헌법재판소법 제72조다. 해당 조항에 따라 재판관 3인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는 청구된 사건이 법적 요건을 갖췄는지 먼저 검토하며 부적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전원일치로 각하한다. 구체적으로 개정 헌법재판소법 72조 3항은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 각하 사유로 ▲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은 경우 ▲ 청구기간 도과 ▲ 대리인 미선임 ▲ 재판소원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경우 ▲ 그 밖의 청구가 부적법한 경우를 들고 있다.
또한 개정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포함하면서도 모든 재판이 아닌 헌법 위반이 명백하거나 기존 헌재 결정에 반하는 경우 등으로 사유를 제한하고 있다. 헌재는 이번 평의에서 이 법적 제한을 엄격히 해석해 단순 불복 사건들을 대거 걸러냈다.
특히 헌재는 재판소원의 대상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인 '보충성'과 '청구 기간'을 엄격히 적용했다. 당초 주목받았던 납북 귀환 어부 유족의 국가배상 청구 사건은 보충성 원칙 미비로 각하됐다. 헌재는 해당 사건이 하급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를 포기해 대법원 확정판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각하 사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청구 사유 부적합(17건)'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법원의 사실인정이나 증거 평가에 대한 단순한 이의 제기는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결과에 따라 헌재가 재판소원 제도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전심사의 근거인 헌법재판소법 제72조가 헌재의 자의적인 사건 선택권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헌재가 사법부와의 갈등을 의식해 입구를 좁게 설정하면서 국민의 기본권 구제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질적으로 4심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어떤 사건을 심판할지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헌재가 쥐고 있어 이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청사. ⓒ데일리안DB
최건 변호사(법무법인 건양)는 "헌재가 4심제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운영상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도입 취지인 국민의 기본권 구제 측면에서는 기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변호사는 "제도적 장치가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되다 보니 헌재가 부득이하게 더욱 폐쇄적인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재판소원의 적법 기준에 대해 헌재의 정성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있어서 이 부분이 특정사건을 자의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는 오해가 생길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심사에서 대부분 걸러내지 않으면 사건폭증으로 헌재 기능 마비된다는 점에서 현행제도는 큰 틀에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나, 각하나 기각시 그 이유를 상세히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시행 초기라서 아무런 고려나 검토 없이 일단 넣고 보자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무분별하게 청구한 사건들이 많을 것"이라며 "초반에 사전심사를 하지 않고 홍보도 하지 않을 경우 무분별한 재판소원이 늘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소비되는 시간, 노력 등이 상당하므로 정리해 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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