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는 어떻게 브랜드가 됐나…들깨 산업을 바꾼 청년의 손 [新농사직썰-청춘농담①]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3.31 09:55  수정 2026.03.31 09:55

청년 농업인이 키운 ‘국산 들기름’의 부가가치

농진청 품종 보급에서 브랜드 실험까지

품종·가공·유통을 묶은 강원도 화천의 청년 사업가

들깨는 참깨와 더불어 우리 식탁에서 다양한 식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토종 들깨 품종 개발을 바탕으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농업의 가치와 미래 기술을 조망해 온 ‘농사직썰’이 다섯 번째 여정을 시작한다. 시즌1의 연구 성과를 시작으로 지역 기술(시즌2 월령가), 해외 진출(시즌3 케이팜), 연구 현장의 이면(시즌4 혁신의 씨앗)까지 짚어 왔다면, 시즌5는 그 기술력이 시장에서 어떻게 부가가치로 전환되는지에 주목한다.


이번 시즌의 대문은 ‘청춘농담(靑春農談)’이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고부가가치 원재료를 바탕으로 청년 농업인이 현장에서 써 내려가는 생생한 성공담을 뜻한다. 동시에 청년의 감각과 기획력이 전통 농업의 색과 밀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포착하겠다는 뜻도 담았다.


기술은 실험실에 머물 때보다 시장에서 소비자와 만날 때 더 또렷한 가치를 갖는다. 본지는 농촌진흥청이 공들여 육성한 원천 기술과 품종이 청년의 기획력과 만나 어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지 추적할 계획이다. 단순한 우수 사례 소개를 넘어 기술 기반 농업 창업 생태계가 농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떠받치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들깨는 오래된 작물이다. 그러나 시장의 언어로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상품이 된다. 농촌진흥청은 수십 년에 걸쳐 종실 수량성과 착유율, 기능성 성분, 재배 안정성을 높인 품종을 개발해 왔다. 현장에서는 그 씨앗을 기름으로, 다시 브랜드로 바꾸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연구 성과가 논문과 품종 설명서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병입 상품과 유통 모델로 이어질 때 농업의 부가가치는 달라진다. 강원 화천에서 들깨와 참깨를 재배하고 들기름·참기름을 가공·생산하는 농업회사법인 너래안과 송주희 대표는 그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송 대표는 지역 농산물 수매·가공·유통 사업을 운영하며 생산과 가공, 판매를 연결하는 농촌융복합 산업 모델을 구축해 왔다. 지역 농가와 협력해 들깨를 공동 생산하고,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다유·들샘 품종의 재배와 보급, 기름 생산과 가공 실험까지 이어 가고 있다.


◆들깨 산업의 ‘기본값’이 달라졌다


들깨 시장을 먼저 움직인 것은 토종 품종이다. 국내 들깨 품종 연구는 1920년대 품종 비교시험에서 출발해 1968년 대구종 등록을 거치며 본격화됐다.


이후 들깻잎 소비 확대에 맞춰 잎용 품종이 분화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종실용 품종의 고품질화와 기능성 강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특히 종실용에서는 재배 안정성과 종실 수량성, 착유율이 높은 다유와 들샘이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됐다.


실제 보급 현황도 이를 뒷받침한다. 농진청 ‘국내 종실들깨 품종별 재배면적’에 따르면 다유의 비중은 2022년 64.8%, 2023년 64.9%, 2024년 65.7%로 가장 높다. 들샘도 같은 기간 18.6%, 21.0%, 24.8%로 상승했다. 2024년 기준 두 품종 비중을 합치면 90.5%다. 종실들깨 시장이 사실상 두 품종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단순한 재배 통계가 아니다. 시장이 어떤 품종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다유는 2004년 육성된 품종으로 조지방 함량 45%와 안정적인 수량성이 강점이다.


들샘은 2013년 육성됐다. 조지방 함량 43%, 다수성, 연한 껍질 특성이 특징이다. 품종이 기름 생산에 적합하고 수량까지 안정적일수록 농가와 가공업체는 원료 수급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사업화의 첫 조건이 여기서 나온다.


농진청이 개발한 들깨 품종은 양적으로도 축적돼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들깨 품종은 모두 51개다. 종실용 35종, 잎들깨용 16종이다.


들기름은 오메가-3 등 다양한 기능성 성분이 풍부하다. 송주희 너레안 대표가 들기름을 추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한국은 들기름뿐 아니라 깻잎 소비도 많은 나라다. 종실용과 잎용 품종이 함께 발전해 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국이 주로 종실용 재배와 수출에 무게를 두는 것과 달리, 한국은 종실과 잎을 모두 전방위로 활용하는 식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품종 개량의 방향 역시 시장 수요와 맞닿아 있다. 종실용은 수량성과 들기름 함량, 맛, 병해 저항성뿐 아니라 알파-리놀렌산과 로즈마린산 같은 기능성 성분, 기계수확 적합성까지 겨냥하고 있다.


잎들깨용은 둥근심장형 잎, 자주색 발현, 속잎 생장성, 내병성, 고온·저온 적응성, 항산화 성분 강화가 목표다. 연구가 더 이상 ‘잘 자라는 품종’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제는 ‘시장에서 어떤 가치로 팔릴 수 있느냐’가 육종 목표 안으로 들어와 있다.


들기름 자체의 기능성도 상품성을 떠받친다. 들기름의 지방산 조성에서 알파-리놀렌산, 즉 오메가-3 비중은 60~65% 수준이다. 올리브유는 올레산 비중이 높지만 알파-리놀렌산은 1%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치아씨드유는 유사한 지방산 프로필을 보이지만 수입 의존도와 가격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국산 원료를 가까운 유통망에서 확보할 수 있는 들기름은 신선도와 접근성에서 강점을 가진다.


다만 이 시장은 아직 완성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능성 품종이 나와도 시장을 단숨에 뒤집을 정도의 압도적 격차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 단계 경쟁력은 단일 품종의 돌파력보다 안정적인 원료 생산, 가공 역량, 브랜딩의 결합에서 나와야 한다.


◆들깨의 개성을 짜내다…너래안의 토종 들깨 실험


송주희 너래안 대표는 들깨를 단순한 원료로 보지 않았다. 농진청 현장 명예연구관으로 활동한 아버지와 전문 연구진 곁에서 품종 실증 연구를 오래 지켜보며 자랐다.


그때부터 한 가지 문제의식을 품었다. 연구 성과가 현장에서 생산으로 이어져도 시장의 상품으로 완성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송 대표는 “커피처럼 들깨도 품종마다 개성과 맛이 다른데, 그 차이를 살려 상품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가 다유 들깨를 택한 배경도 분명했다. 강원 화천에서는 알이 굵고 생산량이 많은 품종도 있었지만 가을 태풍이 오면 쓰러짐 피해가 적지 않았다.


청년농업인으로 10여년을 한자리에서 들기름을 연구한 송주희 대표는 최근 소비자의 식습관 트랜드에 맞춰 들기름도 다양하게 소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송 대표는 “다유는 키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줄기가 단단해 지역 재배 환경에 더 잘 맞았다”고 설명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최종 단지를 조성하는 과정과 전국 보급용 다유 들깨를 생산한 경험도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다.


맛에서도 품종 차이는 확연했다. 송 대표는 다유 들깨에 대해 “담백하고 고소한 편이고, 덜 볶아도 더 볶아도 색이 노랗게 잘 나오면서 신선한 맛이 난다”며 “가연들깨는 향이 상대적으로 덜 선호됐고, 들향들깨는 풀 향이 강한 데 비해 고소함은 약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너래안은 이런 부분에 착안해 들향들깨와 다유 들깨를 비교하는 펀딩도 진행했다. 다만 소비자가 미세한 차이를 크게 체감하지 못하면서 대중적 확장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사업 12년 차에 접어든 그는 이제 생산 안정화를 넘어 소비 방식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간편식과 소포장 제품에 더 무게를 둘 생각이다.


송 대표는 “파우치형, 스틱형 제품에 관심이 크다”며 “올해 기능 보강 사업과 자원융복합 사업에 선정된 만큼 시설 개선과 패키징 설비 확충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소함의 결이 다르다…참기름과 들기름 이렇게 쓰세요


참기름과 들기름은 같은 깨기름으로 묶이지만 향의 결도, 성분도, 어울리는 자리도 다르다. 참기름은 볶은 참깨에서 오는 진하고 묵직한 고소함이 두드러진다.


반면 들기름은 향이 더 부드럽고 퍼지는 속도가 빠르다. 농진청은 들기름에 알파-리놀렌산, 즉 오메가-3 지방산이 60~65% 수준으로 많이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성분 덕분에 들기름은 영양적 강점이 크지만 공기와 빛에는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주방에서의 역할도 나뉜다. 참기름은 무침과 비빔, 볶음의 마침표에 가깝다. 한두 방울만 더해도 향의 중심을 또렷하게 세운다. 나물, 비빔밥, 김, 고기 양념에 잘 어울리는 이유다.


들기름은 결이 다르다. 국과 탕, 들깨가루를 넣는 찌개류, 버섯이나 채소 무침처럼 재료의 수분감과 어울릴 때 강점을 보인다. 향이 강하게 치고 올라오기보다 음식의 표면을 부드럽게 감싸며 긴 여운을 남긴다.


보관과 사용법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참기름은 리그난, 세사몰, 비타민 E 같은 항산화 성분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햇빛을 피한 서늘한 상온 보관이 적합하다.


들기름과 참기름은 쓰임새가 다르다. 오히려 식재료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들기름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반대로 들기름의 오메가-3는 빛과 열에 민감한 살아있는 영양소다. 내장 보관을 통해 외부 에너지를 차단하면, 갓 짠 들기름의 신선한 풍미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


개봉 뒤에는 오래 두기보다 비교적 빠르게 먹는 편이 낫다. 들기름에 참기름을 섞어 풍미와 보관성을 함께 보완하는 방법도 활용할 만하다.


결국 참기름은 ‘향의 선명도’가 강점이고, 들기름은 ‘영양과 부드러운 확장성’이 경쟁력이다. 같은 병입 기름이라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송 대표는 “참기름이 익숙한 고소함의 시장이라면, 들기름은 건강성과 지역 원료의 가치를 함께 설명할 수 있는 기름”이라며 “참기름은 고소하고 들기름은 구수하다. 참기름은 코로 먹고, 들기름은 입으로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참기름이 마지막 향을 끌어올리는 역할이라면, 들기름은 음식의 깊은 맛과 구수함을 채우는 재료에 가깝다”며 “들기름 아이스크림이나 들기름 막국수 같은 메뉴가 등장하는 시대다. 들기름 소비도 이제는 충분히 넓어질 수 있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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