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장치 없는 국회, 대의민주주의 위기에 직면´ 토론회
참석자들 "국회 권력 자기 잇속 챙기기에 사용 도 넘었다"
제18대 국회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2008년 5월 개원과 동시에 83일 간 ‘개점휴업’을 한 데 이어 그 해 연말, 전기톱과 망치가 등장하는 초유의 국회폭력사태로 해외뉴스에 오르내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사태, 미디어법, 세종시, 반값등록금 등 각종 현안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각종 포퓰리즘적 공약을 경쟁하듯 내놓는 등 여야는 평행선을 걸었다. 그러나 당리당략과 세비 인상 등 잇속챙기기 앞에서는 결속력을 보이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견제장치가 없는 국회가 날이 갈수록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이고 특정 이익집단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직능이기주의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적 책임의식이나 문제의식 없이 ‘이익’을 쫓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결국 입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정치적 책무를 강화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6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견제장치 없는 국회, 대의민주주의 위기에 직면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국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정치꾼의, 관료들에 의한, 이해집단을 위한 정부’로 변질됐다”며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쓴소리했다.
특히 현 교수는 “최근 야당보다 여당이 포퓰리즘 정책 생산에 더욱 적극적인데, 단지 표를 얻기 위한 행위”라며 “야당의 포퓰리즘은 정책 제안에 불과하지만 집권당의 포퓰리즘은 바로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부패정치의 온상에서 독재권력의 시녀였던 시간을 지나 국민의 대표기관이 됐지만, 불신을 받으며 스스로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다”면서 “최근 국회 법사위원회가 각 상임위와 특별위 위원장에 ‘입법원칙에 위배되는 특별법 제정을 자제해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낸 것은 국회가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자 국민의 의사가 전달되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현안은 처리하지 못해 국정혼란을 초래하면서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한다”며 “국회가 주어진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채 불신이 쌓인다면 존재가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10대 국회가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우려와 질타도 쏟아졌다.
장용근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떼를 쓰면 본인들이 받아야 할 이익보다 더 받을 수 있다는 풍토에 기승해 직능이기주의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형국”이라며 “지식과 경험, 덕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정치인이 되면서 국민 다수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하기 보단 ‘우리의 이해관계만 쟁취하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강해졌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과거에 정당한 사익 추구를 억압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 반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수위를 넘어섰다”며 “사익과 공익의 적절한 조화에 앞장서야 함에도 표를 의식해, 대를 버리고 소를 추구하는 이런 행위는 너무 떳떳하게 하고 있다”고 일침했다.
전희경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의원 스스로 자기민원의 해결사가 되어 맞춤형 입법을 양산하고 있으니, 소위 생활의 달인이 된 셈”이라며 “다른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면서 살짝 끼워넣기, 속전속결로 처리해서 논란의 여지를 차단하기, 알려져서 여론이 들끓으면 개정안을 내어 고치겠다고 말하면서 여론이 잦아들 때를 기다리기 등 ‘아전인수’ 자‘기만족’ 입법은 한계를 넘었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전 실장은 “헌정회 육성법 개정으로 국회의원의 노후연금을 국민에게 부담하라더니, 자녀학비보조 및 가족수당 신설, 비서관 증원 등으로 잇속을 챙겼다”면서 “심지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 ‘죄가 되면 아예 교도소 담장을 허물어서라도 무죄로 만들겠다’는 오만함을 보여줬다. 법을 편의적으로 바꾸려는 ‘입법권 남용’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입법기관이 된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 등을 통해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동된 지적.
현 교수는 “정책 제안시 재원확보방안을 제시하고 세입증가율 이내에서 세출 증가율을 강제하도록 해야 한다”며 “동시에 유권자들의 생각이 변할 수 있도록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용어를 개발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인지하게끔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 실장은 “국회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가 높았던 것을 이용해 몰염치한 자기잇속 챙기기와 권력남용의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해야 할 것”이라며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법안은 의무적으로 공청회개최 및 외부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하고, 국회 예산의 결정 및 집행에서 외부감사 의무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로비스트 합법화와 겸직금지 조항 강화 등을 통해 논란이 불거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책무, 법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며 “의안 심의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는 한편, 겸직금지 조항 강화, 국회의원 책무 위반시 자격 상실 등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치자금이 투명하게 드러나게 관련법을 손질해야 한다”며 “생산적인 로비스트를 합버화함으로써 선진국처럼 공익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해 아예 뇌물을 차단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