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백 김연아vs일본’ 그리운 중흥기

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입력 2012.10.18 00:00  수정

2000년대 이후 피겨 주도한 한일전

빅3 맞대결 무산..내리막길 아쉬움

김연아-아사다 마오.

스포츠를 예술로 승화한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과 일본이 양분했다.

1990년대 대표주자 미셸 콴을 보고 자란 김연아(22·고려대)는 1999년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신 피겨여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시대 일본에서는 피겨신동 아사다 마오(22)가 등장해 김연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둘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번갈아 우승하며 선의의 대결을 펼쳤다. 진검승부는 성인 무대에서도 계속됐다. 여기에 베테랑 안도 미키, 수구리 후미에 등이 가세, 김연아는 고만고만한 일본 선수들을 상대로 ‘일당백’ 싸움을 해왔다.

사실 스포츠 한일전은 언제나 그렇듯, 국가 대 국가 경쟁의 진한 색깔을 띤다. 김연아가 지면 한국이 지는 기분이고, 아사다가 지면 일본이 뒷목 잡고 쓰러지는 모양새였다. 이 때문일까. 신이 준 재능을 타고 난 김연아를 무너뜨리기 위한 교묘한 술책도 속출했다. 매 대회마다 ‘연습방해 사건’이 발생한 것. 경쟁자들은 연습중인 김연아 코앞에서 3회전 점프를 하거나 스케이트 날을 드는 등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인의 소통 공간 유튜브에서는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김연아 경기영상들이 차례대로 삭제됐다. 유튜브 귀속 저작권이 있음에도 게시물이 사라진 것이다. 김연아 견제가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이제는 추억이 됐다. 치열했던 한일 피겨의 자존심 대결은 올 시즌에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포스트 김연아’를 꿈꾸는 유망주들은 '겨울스포츠의 꽃' 피겨그랑프리 시리즈를 통해 본격적인 경쟁을 펼친다. 올 시즌은 19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1라운드를 시작으로 12월 러시아 소치 파이널까지 김연아 키드들이 각축을 벌일 예정이다.

아사다 마오를 비롯한 베테랑급들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과거와 같은 무게감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김연아는 체력적인 문제로 12월 B급 국제대회에만 출전하기로 해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김연아를 꺾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온 안도 미키도 덩달아 참가를 포기했다.

안도 미키는 지난 7월 김연아가 현역복귀를 선언했을 때 “너의 선택을 존경한다. 다시 대회에서 만나자”며 그랑프리 시리즈 재회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김연아가 올 시즌 그랑프리 '개최국 초청'을 통한 출전의사를 내비치지 않아 안도도 의욕을 잃었다는 후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연인’ 모로조프와의 결별 후유증도 안도 미키를 깊은 심리적 슬럼프에 빠뜨렸다.

그랑프리 시리즈를 바라보는 팬들의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없다. 세월의 야속함도 문제다. 피겨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전성기로 볼 때 ‘2010 밴쿠버 올림픽’을 수놓은 피겨요정들은 대부분 절정기를 지나 비탈길 초입부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김연아는 7월 복귀선언 당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기대치를 낮추고 나 자신만을 위한 연기를 목표로 하겠다”고 말했다. 8월 아이스쇼 록산느의 탱고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5년 전 내가 어떻게 이런 안무를 소화 했었나”라며 록산느 프로그램의 빠른 전개와 빈틈없는 연기구성에 혀를 내둘렀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김연아의 독주와 일본 선수들의 추격전. ‘피겨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김연아의 통쾌한 일당백 투쟁을 지켜봤다는 사실이 얼마나 값진 추억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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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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