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역’ 퍼펙트 타자 압도한 류현진 스틸컷

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입력 2013.03.30 07:04  수정

강타자 푸홀스 상대로 역 볼배합

스트라이크존에서 떠오른 포심 압권

류현진이 푸홀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이었다.

1구 낙차 큰 커브→2구 낙차 큰 커브→3구 체인지업 유인구→그 다음 공은 라이징 패스트볼. 바로 허를 찌른 류현진의 볼 배합에 세 차례나 내셔널리그 MVP에 올랐던 강타자 알버트 푸홀스는 덕아웃으로 발길을 돌렸다.

29일(이하 한국시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의 백미였다. 이 한 장면은 류현진이 단순한 덩치 큰 괴물이 아닌 영리한 괴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입증한 스틸컷이나 다름없었다.

류현진의 투구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푸홀스에 대한 소개에서 시작해야 한다. 푸홀스는 그야말로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될 수 있는 현역 최고의 타자다. 세 차례(2005, 2008, 2009)나 내셔널리그 MVP에 올랐고, 특히 2009시즌에는 만장일치 수상이기도 했다.

토니 라 루사 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은 푸홀스를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스탠 뮤지얼과 같은 레벨의 역대 최고 타자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 말 그대로 현역은 물론 역대로도 '완벽한 타자'라는 의미다.

따라서 무결점 타자인 푸홀스를 완벽하게 돌려세운 건 구위도 구위지만 역으로 간 볼 배합이 주효했다. 푸홀스는 패스트볼에 강한 스윙 메커니즘을 보유한 타자다.

한화 김태균처럼 스트라이드를 전혀 하지 않는 노 스트라이드 타법, 즉 자유족을 움직이지 않고 바로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다. 이런 유형의 타자는 빠른 공에 상당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류현진은 푸홀스가 노리는 부분을 절묘하게 피해갔다.

류현진은 첫 타석의 푸홀스에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구사, 빗맞은 투수 앞 땅볼을 유도했다. 푸홀스에겐 이 체인지업이 머릿속에 강하게 입력되어 있었을 터. 다저스의 안방마님 A.J 엘리스와 류현진도 이 공을 기억했다.

다음 타석에선 역으로, 역으로, 또 역으로 갔다. 초구는 체인지업이 아닌 낙차 큰 커브였다. 류현진은 한화 시절 우타자를 상대할 땐 체인지업과 직구 두 구질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느린 커브는 간간히 사용했을 뿐 사용 빈도가 낮은 구질이었다.

하지만 이전 타석에서 체인지업을 사용했기 때문에 낙차 큰 커브로 타이밍을 뺐었다. 2구 역시 역으로 갔다. 강타자를 상대로 한 구종을 두 번 연속, 그것도 동일한 로케이션에 사용한다는 건 일종의 '도발' 행위다. 푸홀스와 같은 타자에게 그런 도발은 장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2구도 연속으로 낙차 큰 커브를 푸홀스에게서 가장 먼 쪽인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존에 걸쳤다. 3구째는 푸홀스가 당했던 그 체인지업. 체인지업은 정확하게 낮게 제구된 유인구였다. 역시 대타자 푸홀스는 두 번 속지 않았다.

4구는 다시 역이었다. 푸홀스가 노리던 패스트볼이 오히려 덫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가 아닌 유인구로, 눈앞에서 바로 솟구쳐 오르는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류현진의 손끝에서 완벽하게 백스핀이 걸린 공은 날아갈수록 떠올랐다.

95마일(약 153km/h)의 강속구도 어렵지 않게 담장을 넘기는 푸홀스가 류현진의 91마일(약 146km/h)의 유인구에 속았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우선 역으로 간 볼배합의 승리다. 이전 타석에서 보여준 낙차 큰 변화구와 체인지업의 방향이다. 이전 세 개의 공 모두 종으로 떨어뜨린 뒤 솟구치는 구질을 구사, 마치 스트라이크인 것 같은 착시현상을 푸홀스에게 줬다.

그 다음으로는 스피드의 차이다. 느린 커브를 뒤에 던지는 빠른 공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 빨라 보인다. 앞선 타석에서 두 번의 역으로 가는 커브에 당한 푸홀스의 머릿속에는 커브의 궤적과 속도가 강하게 입력돼 있었다. 이와는 정반대의 유인구에 강타자 푸홀스의 간결한 스윙도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푸홀스의 타석에서 류현진이 보여준 극단적인 볼 배합과 로케이션은 사실 웬만한 투수들이 선택하기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직구를 노리던 타자에게 생뚱맞은 느린 커브와 체인지업을 던졌고, 정작 들어온 직구는 스트라이크존을 교묘하게 비켜간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류현진은 종속이 좋은 투수, 즉 볼끝이 살아있는 투수다. 볼끝은 백스핀의 수와 정비례하는데 류현진 포심의 상승 무브먼트는 31.96cm에 이른다. 이는 다저스의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27.69cm)보다 더 솟구쳐 오른다는 의미다. 현역 최고의 좌완으로 꼽히는 C.C 사바시아나 클리프 리도 류현진의 상승 무브먼트엔 못 미친다. 바로 류현진의 91마일짜리 평범한 포심 유인구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퍼펙트한 타자 푸홀스를 잡은 더 퍼펙트한 유인구가 된 이유다.

류현진의 올 시즌은 푸홀스전 두 타석으로 예단하긴 힘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퍼펙트한 타자 중 하나를 한국에서 건너온 겁 없는 신인이 삼진으로 돌려세운 부분은 더욱 퍼펙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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