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 "북은 본사, 우린 파견직원"
그들만의 은어 "본사 방문"은 월북을 지칭
"당 사업은 사람 사업" 노동당 지침 유사
‘내란 예비 음모’ 등 혐의를 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무실에 대한 국정원과 검찰의 압수수색이 단행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전망이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된 경기동부연합 지하조직 회의 녹취록에선 이 의원이 조직원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을 포함한 통진당 당직자들은 통신·유류시설을 파괴하려고 모의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과거 북한에서 직접 지령을 받은 종북 지하당이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지하혁명조직인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이뤄진 통진당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런 내용의 녹취록이 나온 만큼 군사반란 수준의 혐의를 받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의원은 구 민혁당 하부조직인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이다.
국정원은 지난 3년간 이 의원에 대한 내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확보한 녹취록엔 이 의원이 의원 당선 후 경기동부연합 지하조직 회의에 참석해 핵심 조직원 100여명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는 지시와 “국내 주요시설에 대한 타격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검찰은 통진당의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과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을 체포했다. 홍 부위원장의 경우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이적동조)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애초 영장청구 단계에서부터 포함이 안됐다. 하지만 이 의원은 압수수색이 벌어지자마자 변장을 한 채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고, 현재까지 소재 파악이 안되고 있다.
이 의원은 선거기획광고 대행사인 CN커뮤니케이션즈의 전신인 CNP전략그룹을 설립한 후 경기동부연합 내에서 재정적으로 전권을 쥐고 조직의 최고 실세가 된 인물이다. 국정원은 이 의원이 이런 재정력을 바탕으로 경기동부연합 지하조직을 이끌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초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경기동부연합은 사실상 민혁당 산하 경기남부위원회를 지칭하는 것이란 주장도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현 통진당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통진당 비례대표 2번을 단 이 의원은 다수의 통진당원들에게 생소한 인물이었다. 당시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정선거 의혹마저 일어 내분이 심화된 일도 있다.
민혁당은 북한의 직파간첩 윤택림이 ‘강철서신’의 주인공인 김영환과 함께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후 1992년에 만들어졌다. 이후 김영환 씨는 북한의 실체에 실망해서 그가 지도하던 민혁당 전북위원회를 집단적으로 전향시켰다. 그러나 서울대 법대생 하영옥이 지도하던 경기남부위원회와 영남위원회는 전향을 거부했다.
하영옥의 비전향 조직이 이후 실존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하지만 경기동부연합에 정통한 한 운동권 출신 인사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국정원이 압수수색을 위해 발부받은 영장에 적시된 것처럼 이들이 총기 준비를 지시하는 말을 하고, 국가 기간시설을 파괴를 언급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은 북한 당국을 ‘본사’로, 조직원들을 ‘파견직원’으로 부르고, 월북하면 ‘본사 방문했다’고 말하면서 북한과의 무전교신을 ‘본사와 연락했다'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특히 “경기동부연합 조직원들은 1990년대까지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입당식을 치렀으며 입당식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복창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민족해방과 통일전선 전술로 조선노동당의 사업 목표와 일맥상통했고, 이를 위해 남한 민중봉기를 최상의 민족해방 수단으로 꼽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 통진당 내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으면서 불붙기 시작한 종북 논란은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부정 발언으로 정점을 찍은 일도 있다.
이와 관련해 1981년 연세대 심리학과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3년 교내시위를 주도했던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1990년대 이후 신좌익의 주도하에 결성됐던 ‘민혁당’ ‘중부지역당’ ‘구국전위’ ‘일심회’ 등 지하혁명조직이 연루된 간첩사건이 다수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가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법원 판결을 취합해 펴낸 ‘남한의 지하혁명조직과 북한’이라는 부제를 단 ‘진보의 그늘’에 따르면, 19대 총선에서 통진당 공천을 받은 A씨는 1999년 9월 구청장 신분으로 ‘영남위원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징역2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그는 1992년 3월 ‘반제청년동맹’을 모태로 하는 ‘영남위원회’를 결성한 뒤 부산·울산지역에서 대학가, 노동·재야 단체를 상대로 지하활동을 벌였다.
영남위원회 사건에는 박경순 통진당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도 연루돼 있으며, 당시 대법원은 영남위원회 총책이던 박 씨에게 이적단체 구성죄를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A후보는 중부지역당 출신으로 밝혀진 적도 있다. 중부지역당은 북한 권력 서열 22위로 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다가 대남공작원으로 활동한 이선실이 1990년 직접 기획한 조직으로 당시 북한은 ‘1995년 적화통일 실현’을 위해 거액의 공작금과 함께 최고위급 공작원을 남파해 지하당과 간첩조직을 확산시키는 작업에 열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정희 통진당 전 대표는 그동안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통진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경기동부연합 민노당사업 방침’이라는 문건이 공개돼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이 문건의 서두에 있는 '당사업은 사람과의 사업이다. 이것이 우리 사상의 좌표이며 원칙이다'라는 말은 북한 노동당 지침 서두의 '조선노동당은 사람과의 사업을 당사업의 기본으로 한다'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문건은 2005년 3월 진보넷 블로그에 게재된 것으로 이 전 대표의 “경기동부연합은 10년 전 해체”라는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것이기도 했다.
경기동부연합의 민노당사업 방침 문건에선 '올바른 사상, 노선, 실천적 대중사업 전개력을 가진 실력 있는 간부 일꾼’을 강조하면서 ‘총선 투쟁을 통한 제3당화, 10석의 국회의원 배출, 5만 당원화’ ‘최근 이라크 파병 관련 농성과 단식투쟁을 최고위원회 결의와 노력으로 끌어가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의 압수수색은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우위영 전 대변인, 김홍열 경기도당위원장, 김근래 경기도당부위원장, 홍순석 경기도당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 박민정 전 중앙당 청년위원장의 사무실 7곳과 자택 11곳에 대해 진행됐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이씨 등이) 지난 5월 서울 모처에서 당원 1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비밀회합을 했고 경기남부지역의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했다’는 범죄사실을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통진당 당원이자 경기진보연대 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이상호 씨의 경우 지난 1월 국정원 직원의 미행사실을 알고 항의하다 시비가 붙어서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했다’며 고소했고 이후 국정원 측이 맞고소하면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압수수색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이동식전자장치(UBS), 휴대전화, 차량 등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현장에서는 삭제된 전자 기록물을 분석하는 디지털포렌식 작업도 함께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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