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사연 많은 국회내 특별한 인연은?

김수정 기자

입력 2013.09.22 10:12  수정 2013.09.22 10:17

'바다이야기' 수사로 얽힌 경대수-김진태

방북 평양학생축전으로 얽힌 조명철-임수경

올해 상반기 정치권은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여야 모두 정국 주도권을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갈등은 물론이고, 같은 당 내에서도 새 지도부 개편으로 미묘한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앙숙’처럼 서로를 헐뜯고, 경쟁하는 이들도 한 때는 막역했던 선후배이자 동료였다. 특히, 국회 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법조’ 출신의 의원들의 경우 그 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19대 국회 법조계 출신 의원들 중 눈에 띄는 인연은 경대수(사법연수원 11기), 김진태(18기) 새누리당의 만남이다. 같은 당 소속의 두 사람은 초선의원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법대 졸업 이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검사 출신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단순한 선후배 사이 같지만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2006년 전국을 뒤흔든 사행성 게임비리 ‘바다이야기’ 수사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다만, 사태 초기에는 ‘바다이야기’ 관련 수사의 경우 대검 중수부가, 나머지 사행성 게임 수사와 관련해서는 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가 각각 수사를 담당했었는데 이때 대검 마약·조직범죄수사 부장이 경대수 의원이었다.

그러나 돌연 경 의원이 건강상의 이유로 수사에서 하차하면서 대검 마약수사부에서 맡았던 사행성 게임 수사 역시 중수부 산하의 TF팀이 맡게 됐다.

TF팀은 수사기획관 팀장에 채동욱 현 검찰총장이 발탁됐으며 조직범죄과장에 김진태 의원이, 첨단범죄과장에 봉욱 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꾸려졌다.

특히 김 의원은 당시 경 의원 밑에서 실무과장을 엮임하고 있었는데 경 의원의 자진 사임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해당 사건을 수사했다. 그러나 ‘건강상 이유’로 수사를 포기했다는 경 의원은 실제로 사건을 지휘하던 중 한 신문이 엠바고(보도 유예 약속)를 깨고 해당 사건에 정치권 비자금이 배후에 있다는 기사를 터트리면서 검찰 수뇌부와 갈등을 겪고, 사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검찰 생활에 일종의 소외감을 느낀 경 의원은 고향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국회의원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또다시 국회에서 ‘초선의원’ 동료로 김 의원을 만나, 두 사람의 ‘묘한’ 인연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 임수경 민주당 의원,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법대에서 사법연수원, 그리고 북한까지 ‘기묘한 인연’

이 밖에도 국회 내 법조계 인연은 더 있다. 김진태 의원과 정성호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장윤석, 김기현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대 법학과 출신에 사법연수원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특히 장윤석, 김기현 의원은 모두 영남 출신으로 친이(친 이명박)계라는 공통점까지 더해져 막역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정치에 영원한 적군도 아군도 없다’는 말처럼 이들은 공교롭게 올 초 당 내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각각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격돌했다. 물론 당시에는 양 쪽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보였지만 초지일관 상대방에 대한 비판보다는 인정과 배려의 모습을 보이는 등 동료 의원들에 귀감이 됐다.

반면, 한 때는 북한에서 만날 뻔 했던 ‘인연’이 정작 국회에서 만나 ‘앙숙지간’이 된 사례도 있다. 바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과 임수경 민주당 의원이다.

이들의 첫 인연은 1989년 6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대협 대표였던 임 의원은 혼자 평양에 건너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당시 평양에 도착한 임 의원은 북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평양축전에 참가하는 동안 북한학생 위원회의 위원장 김창룡과 함께 1995년까지 조국통일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투쟁 등 8개항의 ‘남북 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조 의원은 이때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있었으며 방북했던 임 의원을 에스코트 했던 사람들이 당시 조 의원의 제자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94년 탈북에 성공한 조 의원은 이듬해부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북한 현실에 가장 정통한 북한전문가로 일해오다 19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았고, 공교롭게도 임 의원 역시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하지만 한 때 북한 땅을 함께 밟았던 두 사람은 국회 입성 이후 ‘종북 논란’ ‘탈북자 욕설 파문’ 등으로 끊임없이 대립하며 마찰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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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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