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결방, 부상 투혼으로 포장?

민교동 객원기자

입력 2013.09.24 09:09  수정 2013.10.23 11:58

문근영 부상 속 결방 대형 방송사고

시청자 인내에 PPL로 화답

불의여신정이 결방 ⓒ MBC

방송 사고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한국 방송사에서 길이 남을(?) 방송 사고로는 지난 1988년 8월 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앵커 강성구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남성이 스튜디오로 난입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고 외친 것. 결국 이 남성은 카메라 감독과의 육탄전 끝에 스튜디오에서 쫓겨났다.

최근에도 뉴스를 중심으로 한 방송 사고가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뉴스 앵커가 뭔가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럴 때마다 언론은 해당 방송사의 방송 사고를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내곤 한다.

한국 시청자들, 그리고 언론은 방송사의 뉴스 등 보도국 프로그램의 방송 사고에 가장 민감하며 예능국 프로그램의 방송 사고에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편이다. 그렇지만 유독 드라마의 방송 사고에 대해선 관대하다.

그렇지만 사고의 크기만 놓고 보면 드라마 방송 사고가 가장 심각하다. 최근에는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극본 이서윤 권순규·연출 박성수 정대윤)가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방송 사고를 냈다. 23일과 24일 이틀 연속 결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시청자나 언론은 이를 방송 사고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정도로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드라마는 단막극과 연속극이 있고 대부분의 드라마는 연속극이다. 일일드라마, 월화-수목 미니시리즈, 주말드라마 등이 모두 연속극이다. 연속극이란 드라마가 연속적으로 방영되는 것으로 방영 주기에 따라 일일, 주말, 주중으로 구분된다. 연속극은 연속성이 생명으로 연속성이 끊기는 결방은 가장 심각한 방송 사고다.

연속극의 가장 주된 마케팅 방식은 다음 회를 궁금케 하는 엔딩, 그리고 호기심을 배가시키는 예고편이다. 다음 회 내용을 궁금해 하는 시청자가 많을수록 연속극의 성공 확률이 커진다. 그냥 채널을 돌리다 해당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만 확보해선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없다.

다음 회를 기다리는 고정 시청자 층을 확보해야 고정적인 시청률이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시청률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연속극의 흐름이 끊기는 결방은 연속극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사안이다.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돌연 다음 회를 결방하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기본 예의를 저버린 엄청난 방송 사고다.

물론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결방이나, 해당 드라마보다 더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끄는 특집 방송을 대체 편성하는 등의 불가피한 사안에 따른 결방까지 방송사고로 볼 순 없다. 23일과 24일 방송을 결방하고 지금까지의 방송분 하이라이트를 편집해서 스페셜 방송을 내보내는 MBC 월화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는 타이틀 롤을 맡은 여주인공 문근영이 촬영 도중 사고를 당하는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결방을 선택했다. 과연 촬영 현장에서의 돌발 사고를 천재지변에 준하는 상황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이슈는 방송 사고가 아닌 해당 배우의 부상 투혼에 맞춰진다. 이번에도 그렇다. 사고는 추석 전날인 지난 18일에 발생했다. 용인 MBC 드라미아 세트장에서 '불의 여신 정이'를 촬영하던 중 사고로 떨어진 촬영 장비에 문근영이 얼굴을 맞아 눈 부위에 부상을 입은 것.

인근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문근영은 추석 당일인 19일 다시 드라마 촬영 현장에 복귀했다. 말 그대로 부상 투혼이다. 그렇지만 부상 정도는 예상보다 심각했고 결국 문근영은 다시 촬영 현장을 떠나야 했다. 타이틀 롤인 여주인공 없이 드라마 촬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질리 없고 결국 촬영 자체가 전면 중단됐다. 이로 인해 23일 방송부터 결방이 결정됐다.

한국 드라마는 사실상 생방송이다. 이번 주에 촬영한 부분을 급하게 편집해 바로 다음 주에 방영하는 형태다. 방송 직전에서야 편집본이 도착해 겨우겨우 결방 사태를 모면하는 사례도 흔할 정도다. 드라마 방영 내내 배우들은 하루 한두 시간의 쪽잠을 자면서 드라마 촬영에 매진하게 된다. 이런 척박한 촬영 현장에 염증을 느낀 배우들이 사전제작제로 촬영이 진행되는 중국 드라마에 출연하고 나면 촬영 현장만 놓고 보면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놓을 정도다.

한국 드라마도 몇 차례 사전제작제를 시도한 바 있다. 그렇지만 역시 한국 드라마는 지금의 생방송 제작제가 더 적합하다는 쪽으로 제작 환경이 굳어져가는 분위기다. 그 이유는 매회 시청자의 반응을 보며 이를 다음 회 드라마 대본에 녹여 내는 것이 시청률 상승에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드라마 제작은 이번 ‘불의 여신 정이’ 결방 사태와 같은 대형 방송 사고에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주요 출연진이 부상을 당할 경우 촬영 중단이 불가피하다. 주인공이 아닌 경우 드라마 중간에 갑자기 해당 캐릭터를 맡은 배우를 비슷한 이미지의 다른 배우로 바꾸기도 한다.

당연히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하는 방송사고지만 시청자나 언론은 이를 그냥 용인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결방이고,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의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오히려 방송사는 부상을 당한 배우의 부상 투혼을 부각시켜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약 뉴스 앵커가 갑자기 교통사고 등을 당해 메인 뉴스가 결방되는 상황에 초래될 경우 이 역시 방송 사고가 아니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오히려 연속성을 앞세운 연속극 입장에선 결방이 가장 큰 방송사고 임에도 제작 시스템의 한계를 핑계로 스페셜 방송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방송된다.

그럼에도 한국 드라마가 사전제작제를 도입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매회 시청자의 반응을 대본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다. 요즘 한국 드라마는 해외 무대에서도 각광을 받을 만큼 발전했다. 그렇다면 매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드라마의 방향성을 정해준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 발전의 가장 큰 기여자일 수 있다.

한국 드라마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일등공신 시청자들. 과연 방송국이 시청자들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보답을 하고 있을까. 방송국 입장에선 이 부분에서 분명한 대가를 시청자들에게 지불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느라고 좋은 제품을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긴 시청자들을 위해 이런 저런 좋은 제품들을 드라마 곳곳에 끼어 넣어 드라마 시청과 동시에 아이쇼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 바로 간접광고(PPL)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납치범을 아버지라고 믿고 자랐으며 천하의 악인이라 여긴 이가 친아버지라는 엄청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남성이 홀로 향한 곳은 바닷가다. 거기서 텐트를 치고 캠핑하며 고되하는 모습이 다소 뜸금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는 아웃도어 장비를 구입하고자 하는 시청자에 대한 배려다.(MBC 주말드라마 ‘스캔들 :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아버지는 같지만 각기 다른 어머니를 가진 세 형제가 해피엔딩을 위한 여행을 역시나 텐트를 치고 캠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준재벌급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은 삼형제라 최고급 호텔로 여행을 떠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그들은 캠핑을 떠났다. 이 부분도 역시 다소 뜸금 없어 보지만 이 역시 방송가의 배려다.(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

연속극을 결방하는 대형 방송 사고를 배우의 부상 투혼으로 극복하고 이를 용인해준 시청자들에겐 PPL로 화답하는 방송사, 이것이 바로 2013년 가을 한국 드라마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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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교동 기자 (minkyodong@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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