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 기절’ 아찔했던 사고, 미담으로 바꿨다
부산전서 공중볼 경합하다 충돌해 기절
동료 발 빠른 대응 속 응급처치 후 의식회복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벌어진 FC 서울과 부산 아이파크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38라운드에서는 아찔한 장면이 나왔다.
마우리시오 몰리나(32·FC 서울)가 부산 문전에서 헤딩 경합 중 상대 수비수 김응진과 머리로 충돌하며 땅에 떨어졌다. 착지하기 전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떨어지는 과정마저 안면부터 땅에 떨어지며 큰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는 바로 중단됐다. 의료 카트에 이어 구급차까지 불러야 했을 만큼 심각한 분위기였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몰리나의 가족들은 당황해 눈물까지 글썽였다.
하마터면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 선수와 팬들이 합심해 신속한 대처가 돋보였다. 서울과 부산 선수들이 모두 몰리나 곁으로 모여들며, 의식을 잃은 몰리나의 혀가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먼저 구급조치를 취하고 몸을 주물러주기도 했다.
상대팀인 부산 서포터들의 공동체 의식도 빛을 발했다. 몰리나의 상황을 지켜본 부산 서포터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선수들을 대신해 큰 목소리로 의료진에게 응급상황을 알렸다.
현장 사정으로 대처가 늦어지는 조짐을 보이자, 부산 팬들은 확성기를 동원해 신속하게 구급차가 그라운드로 진입할 수 있도록 재촉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을 빠르고 현명하게 대처해낸 부산 서포터들의 성숙한 의식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훈훈한 장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부산 서포터들은 몰리나가 다행히 의식을 되찾자, 상대 선수임에도 여러 차례 몰리나의 이름을 연호하며 경쟁의식이 강한 축구장에서 모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몰리나는 고요한과 교체됐으나 다행히 걸어서 벤치로 물러날 수 있었다. 부산 윤성효 감독을 비롯해 부산 선수들도 몰리나의 의식회복에 박수를 보냈다. 축구장에서 승부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이다.
또한 팀 동료 데얀은 골을 넣은 후 몰리나를 위한 세리머니로 감동을 안겼다. 데얀은 이날 몰리나가 쓰러지자 가장 먼저 벤치 쪽으로 위급한 사인을 보냈다. 몰리나는 의식을 찾았으나 곧바로 병원행을 거부하고 벤치에 앉아 팀의 남은 경기를 지켜봤다.
데얀이 이에 화답하듯 두 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데얀은 득점 후에는 벤치 쪽으로 달려가 몰리나와 하이파이브에 이어 포옹으로 기쁨을 나눴다. 아디와 김진규 등 다른 동료선수들도 다가와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팀원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훈훈한 모습이었다.
몰리나는 경기가 끝난 후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해프닝이 서울-부산 선수들의 뜨거운 동료의식과 부산 서포터들의 선진적 관중의식과 결합돼 감동적인 미담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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